전속력으로 달리다 화물열차와 '쾅'…피로 물든 인도 철로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2023. 6. 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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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만의 최악 열차 사고
최소 275명 사망, 1200명 부상
"사람이 신호 실수 3중 탈선"
英식민지 시절 철도 시스템
구식 신호·노후로 잦은 사고
각국 정상 애도…韓피해 없어
지난 2일 오후(현지시간) 인도 동부 오디샤주에서 발생한 열차 삼중 충돌 현장. 전속력으로 달리던 초록색 여객열차가 파란색 화물열차와 부딪치며 위로 튕겨 올라와 있다. 신화연합뉴스

인도 동부 오디샤주에서 지난 2일 오후(현지시간) 열차 탈선·충돌 사고가 발생해 최소 275명이 숨지고 약 1200명이 부상을 당했다.

4일 AP통신과 NDTV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2일 오후 7시께 오디샤주 주도 부바네스와르에서 약 170㎞ 떨어진 발라소르 지역 바항가 바자르역 인근에서 열차 세 대가 잇달아 충돌했다. 승객 2200여 명을 태우고 전속력으로 달리던 여객열차가 정차해 있던 화물열차와 부딪치면서 객차들이 화물차 위로 넘어졌고, 뒤이어 다른 여객열차와 2차 충돌하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1995년 뉴델리 인근에서 열차 두 대가 충돌해 358명이 사망한 사고 이후 28년 만에 최악의 사고라고 전했다.

예비조사 결과 사고 원인으로는 철도 진입 관련 신호장애가 지목됐다. 아디트 쿠마르 차우다리 사우스 이스턴 철도 홍보책임자는 NYT에 "예비조사에서 신호장애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확인했다"며 "열차가 본선으로 가야 하는데 (화물열차가 있던) 순환선에 대한 신호가 주어졌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을 방문한 한 관계자는 타임스오브인디아에 "신호와 관련해 사람이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인도 당국이 인적 오류나 신호장애가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3일(현지시간) 오디샤주(州) 발라소르 인근 병원에서 열차 충돌 사고 생존자들을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미타브 샤르마 철도부 대변인은 "사고 열차 중 한 대에서 객차 10∼12량이 먼저 탈선하면서 인접 선로로 넘어졌고, 해당 선로를 이용해 반대편에서 오던 다른 여객열차가 이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두 번째 열차에서 객차 3량가량이 탈선했다. 철도 당국은 사고가 난 여객열차가 서부 벵갈루루에서 동북부 하우라로 가던 '하우라 슈퍼패스트 익스프레스'와 동북부 샬리마르에서 남부 첸나이로 가던 '코로만델 익스프레스'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사상자 중 한국인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구조대원들은 밤새 구겨지고 뒤틀린 열차 안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문과 창문을 부수며 구조활동을 벌였다. 사고 열차에 갇혔던 부상 승객을 모두 구조하며 수색 작업은 종료됐지만 중상자가 많아 희생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단슈 사랑기 오디샤주 소방국장은 사망자 수가 380명에 달할 수 있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현장에는 구급차와 소방차 등 200여 대와 구조대원 1200명이 투입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3일 사고 현장을 방문해 구호활동을 점검하고 병원을 방문했다. 모디 총리는 기자들에게 "사고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고통을 느낀다"면서 "책임이 있는 사람은 엄중히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이번 사고가 모디 총리의 대표 공약 중 하나인 인도의 오래된 인프라스트럭처를 현대화하려는 노력에 타격을 줬다고 보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철도가 주요 장거리 이용 수단으로, 매일 1200만명이 열차 1만4000대를 이용해 6만4000㎞를 이용하는데 구식 신호장비와 노후한 차량, 안전관리 부실로 열차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AP통신은 "이번 사고는 영국 식민지 시대 철도망의 현대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시점에 발생했다"고 전했다.

실제 인구 14억2000만명을 거느린 인도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조성되기 시작한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복잡한 철도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북쪽 히말라야산맥에서 남쪽 해변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철도 설비는 수십 년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왔다. 지난해 현지 당국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열차 관련 각종 사고 사망자는 10만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인도에서 철도 사고 2017건 중 탈선이 69%를 차지해 293명이 사망했다. 참사가 발생한 동해안 노선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됐는데도 석탄·석유 운송을 도맡다시피 할 정도로 가장 붐비는 구간으로 알려졌다. 160여 년 역사를 지닌 복잡하고 노후한 철도 시스템이 미처 다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간 지속돼온 안전 문제가 다시금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오디샤주는 3일을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세계 각국의 애도 물결도 이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드라우파디 무르무 인도 대통령과 모디 총리에게 각각 위로전을 보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는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과 슬픔을 함께하며 부상자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베단트 파텔 미국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지금 우리 마음은 인도 국민과 함께하고 있다"며 슬퍼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도 애도 성명을 냈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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