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전기차 폐배터리가 로봇과 만나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폐배터리가 단순히 재활용되는 수준을 넘어 전기차에 이어 로봇에서 ‘제2의 생명’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단순히 환경보호라는 명분을 넘어 로봇 산업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에너지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도시광산’ 폐배터리, 로봇서 재사용
전기차 배터리 수명은 약 10년이다. 2015~2017년에 판매된 1세대 전기차 배터리 수명 종료 시기가 다가오면서 수많은 폐배터리가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글로벌 폐배터리 발생량은 지난해 44GWh(기가와트시)에서 2040년 3339GWh로 증가할 전망이다.
폐배터리는 과거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골칫덩이 쓰레기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리튬과 니켈,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을 캘 수 있는 ‘도시광산’으로 분류된다.
해체하지 않더라도 초기 용량의 70~80% 수준의 배터리 성능을 유지하고 있어 다른 분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전기차가 원하는 에너지 출력은 낼 수 없지만 다른 사용처에서 충분히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에서 분리된 폐배터리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분야로 로봇 산업을 꼽는다. 전기차는 시속 100km가 넘는 고속주행과 급가속을 위해 순간적으로 엄청난 출력을 보여야 한다.

반면 물류창고용 자율주행로봇이나 식당에서 쓰이는 서비스로봇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며 안정적으로 낮은 전력을 소모하는 구조다. 전기차 기준에서는 출력 미달 판정을 받은 배터리라도 일반 로봇에는 충분한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로봇 제작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배터리 비용은 로봇 보급이 확산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신품 대비 경제성이 뛰어난 폐배터리를 재사용하면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폐배터리 재활용은 로봇 렌탈 및 서비스 비용 하락으로 이어질 전망”이라며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물류센터나 소상공인의 로봇 도입 문턱을 대폭 낮추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터리 3사, 폐배터리 활용한 ‘BaaS’ 눈독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폐배터리를 활용한 로봇 배터리 구독 서비스(BaaS) 시장에 눈독을 들인다.
이 서비스는 배터리가 로봇 구매 및 유지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로봇 기업이 배터리를 직접 소유하는 대신, 3사와 같은 전문 기업으로부터 재사용 배터리를 구독(대여)해 사용하고 수명이 다하면 반납하는 방식이다. 로봇 기업은 초기 투자비를 줄이고 배터리 관리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국내 3사 중 BaaS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SK온이다. SK온 관계자는 “배터리 렌탈과 충전, 재활용, 재사용 등 배터리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자원 선순환 체계 구축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확대중”이라고 전했다.
SK온은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최적의 충전 조건을 제시해 수명을 보호한다. 전기차 배터리로 사용이 완료되면 성능 평가를 통해 로봇이나 전기자전거 등으로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재가공해 판매한다. 아울러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을 대상으로 렌탈 서비스도 추진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구독·운영관리·데이터 기반 서비스 모델로 산업 구조를 확장 중이다. 로봇 제조사 및 서비스 제공자가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폐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신규 플랫폼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폐배터리와 로봇의 만남은 자원 재활용을 넘어 에너지와 모빌리티 산업이 융합하는 순환경제의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전기차라는 1차 생애를 마친 배터리가 로봇 심장으로 부활하는 과정은 제조원가 저감과 환경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고체나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에 이어 폐배터리 재사용 시장도 선점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배터리 생산을 넘어 생애주기 전반을 관장하는 플랫폼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가 찾아왔다.
유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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