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년 무명, 두 아들 홀로 키우며 맞은 현실의 벽”
배우 박호산은 1972년생으로,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한 뒤 1996년 연극 무대에서 데뷔했다.
이후 20년 넘게 대학로에서 연극과 뮤지컬,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며 ‘연기 내공’을 쌓아왔지만, 오랜 기간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지 못한 무명 배우였다.
23살의 이른 나이에 첫사랑과 결혼했으나 9년 만에 이혼,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가장이 됐다. 연극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워 원룸에서 세 식구가 함께 살며, 생계를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용직을 전전했다.
곤돌라를 타고 55층 초고층 빌딩 유리창을 닦는 일까지 하며, 현실의 벽을 온몸으로 버텨냈다.

“생활고와 무명,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연기”
박호산은 전기, 목수 일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용직을 섭렵했다.
건설 현장 인부, 식당 서빙, 주차장 관리, 심지어 55층 빌딩 유리닦이까지 도전했다. 고층 빌딩 외벽에서 곤돌라에 매달려 유리를 닦을 때, 바람에 흔들리는 공포보다도 건물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였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쌀밥에 국 정도 먹으며 버텼다”고 회상했다.

“마흔 즈음, 인생의 전환점…재혼과 셋째 아들”
마흔이 되던 해, 박호산은 본명 박정환에서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박호산’으로 활동명을 바꾸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2012년에는 연극배우 겸 극작가 김동화와 재혼, 셋째 아들 박단우를 얻었다. 두 아들은 이미 장성해 장남은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차남 박준호는 래퍼 ‘풀릭’으로 활동 중이다.
막내 단우는 2019년 SBS ‘영재발굴단’에 상위 0.5% 영어 영재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세 아들 모두 각자의 길에서 잘 성장하고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대중적 인기…우연이 만든 인생 역전”
박호산의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작품은 2017년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다.
‘문래동 카이스트’ 강철두 역을 맡아 혀짧은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일약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이후 ‘나의 아저씨’에서는 오달수의 하차로 박상훈 역을 맡아, 삼형제 중 맏형의 인간미와 현실감을 보여주며 또 한 번 호평받았다.
‘펜트하우스’ 역시 허성태의 출연 불발로 유동필 역을 맡게 된 우연이었지만, 준비된 배우에게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재혼 13년차, 가족과 연기, 그리고 인생의 여유”
박호산은 현재 재혼 13년차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아내 김동화와 함께 세 아들을 두고 있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을 찾고 있으며, 박호산 역시 연극, 드라마, 영화 등에서 다작 배우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예능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 출연해 “사람이 판단력이 흐려지면 결혼하고, 인내력이 떨어지면 이혼하고, 기억력이 떨어지면 재혼한다더라”는 농담으로 인생의 여유를 드러내기도 했다.

“연극 무대의 본질, 그리고 배우로서의 신념”
박호산은 여전히 연극 무대를 ‘자신의 본질’로 여긴다. “공연밥을 먹어야 작품 전체를 보는 힘이 길러진다”며, 1년에 한 번은 꼭 연극 무대에 오른다.
2023년에는 예술의전당 ‘오셀로’에서 주인공을 맡아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무대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는 “연기는 표현이 아니라 이해”라며,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깊은 공감과 책임감을 강조한다.

“무명과 생활고, 그리고 꿈을 잃지 않은 준비된 배우”
박호산의 인생은 무명, 생활고, 이혼, 재혼,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책임까지 숱한 굴곡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무명 시절이 길어져도 꿈을 잃지 않았다. 인생의 기똥찬 순간, 그걸 향해 계속 달려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연극, 드라마, 영화, 예능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작 배우로서, 그리고 세 아들의 아버지로서, 박호산은 오늘도 자신만의 인생 무대를 빛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