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타니가 인간이 아니라는 가설이 제기된다… 하나하나가 예술, 55-55가 쉬워 보이다니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메이저리그에서 16년을 뛰며 아시아 야수로는 스즈키 이치로와 더불어 쌍벽을 이룰 만한 기록을 쌓은 추신수(42·SSG)는 최근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50홈런-50도루 클럽의 문을 활짝 연 오타니 쇼헤이(31·LA 다저스)를 두고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선수라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추신수가 느끼는 체감이다. 팬들이 느끼는 것보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인 그라운드의 동료들이 인정하는 선수다.
보통 홈런과 도루는 상반된 영역이다. 홈런은 장타자들의 영역이다. 아무래도 체격이 크고, 몸이 힘을 쓰는 데 특화되어 있다. 반대로 도루는 더 민첩한 선수들의 영역이다. 그러다 보니 장타까지 갖춘 선수는 드물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잡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같은 당대의 최고 운동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40홈런-40도루 대업을 쓸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오타니는 한술을 더 떠 50홈런과 50도루를 모두 달성한 역사상 첫 선수가 됐다.
스타성도 충분하다. 오타니가 지금까지 걸어온 스토리가 하나하나 다 예술이다. 40-40을 달성할 때, 시즌 40호 홈런을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만들었다. 48홈런-49도루로 50-50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지난 20일(한국시간) 마이애미와 원정 경기에서는 하루 6안타(3홈런) 10타점 2도루 대활약으로 아홉수를 그냥 깨부쉈다. 어차피 잔여 경기 수를 고려했을 때 60-60은 어렵다고 보면 마음이 한 번 풀어질 법도 한데 50-50을 달성한 이후 모든 경기에서 홈런 혹은 도루를 추가하며 자신의 기록을 연장하고 있다.
오타니는 23일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경기에서도 영웅 같은 활약으로 60-60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이날 오타니는 선발 1번 지명타자로 출전해 5타수 4안타(1홈런) 1타점 2득점 2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6-5 역전승에 큰 기여를 했다. 오타니는 이날 1홈런-2도루 추가로 시즌 53홈런-55도루를 기록했다. 이제 다저스의 잔여경기는 6경기다. 지금 이 페이스라고 하면 역사상 첫 55홈런-55도루는 쉽고, 60-60에도 도전할 수 있는 양상이다. 50-50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55-55도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이것조차 쉬워보이는 게 만드는 게 오타니의 위대한 업적이다.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은 확정했지만 아직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은 확정하지 못한 다저스였다. 2위 샌디에이고가 연승을 타며 다저스를 3경기 차이로 추격하고 있었다. 25일부터 홈에서 샌디에이고와 마지막 3연전이 남은 만큼 다저스도 안심할 수 없었다. 이날 다저스는 오타니 쇼헤이(지명타자)-무키 베츠(우익수)-프레디 프리먼(1루수)-테오스카 에르난데스(좌익수)-윌 스미스(포수)-개빈 럭스(2루수)-토미 에드먼(중견수)-미겔 로하스(유격수)-키케 에르난데스(3루수) 순으로 타순을 짰다. 선발로는 어깨 부상에서 돌아와 복귀 후 나쁘지 않은 투구로 포스트시즌 기대감을 모으고 있는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나섰다.
하지만 야마모토가 1회부터 흔들리면서 다저스가 위기에 몰렸다. 야마모토는 1회부터 볼이 많아졌고 커맨드를 관리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 고전했다. 1사 후 에제키엘 토바와 라이언 맥맨에게 연속 안타를 맞았고 이후 폭투까지 나오며 1사 2,3루에 몰렸다. 여기서 마이클 토글리아에게 볼넷을 내줘 만루에 몰렸고 브랜단 로저스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고 선취점을 내줬다. 이어 샘 힐리어드에게 볼넷을 내줘 사정없이 흔들린 야마모토는 놀란 존스의 1루 땅볼 때 1점을 더 내줬다. 1회에만 3실점하고 초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오타니는 1회 첫 타석부터 좌전 안타를 치며 최근 좋은 타격감을 이어 나갔다. 이어 무키 베츠도 안타를 치며 다저스가 추격의 기틀을 마련하는 듯했다. 하지만 프레디 프리먼의 병살타로 기회가 날아갔다. 2회에도 토미 에드먼의 병살타가 나왔다. 그리고 3회 1사 후 브랜단 로저스에게 2루티를 맞은 것에 이어 2사 후 놀란 존스에게 다시 좌전 적시타를 허용하며 0-4까지 뒤졌다.
오타니는 3회 두 번째 타석 1사 1루에서 잘 맞은 우전 안타를 치며 일찌감치 멀티히트 경기를 완성했다. 그 사이 1루 주자 키케 에르난데스가 3루에 갔다. 주자가 양 코너에 있는 상황에서 완벽한 오타니의 도루 찬스였다. 올해 이 상황에서 도루 실패가 거의 없는 오타니는 기어이 발로 2루를 훔치며 시즌 54번째 도루를 완성했다. 이어 무키 베츠가 비어 있는 1루를 채우며 1사 만루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도 프레디 프리먼이 병살타를 치며 4회까지만 병살타 세 개로 무득점에 그쳤다.
다저스는 부진했던 야마모토를 3이닝만 던지게 한 뒤 4회부터 불펜 가동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이날 경기를 잡겠다는 의지였다. 그런 다저스는 0-4로 뒤진 4회 선두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의 솔로포로 1점을 만회했다. 하지만 추가점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6회 오히려 1점을 더 내주며 1-5로 끌려갔다. 오타니도 5회 세 번째 타석에서는 1루 땅볼에 그쳤다.
하지만 1-5로 뒤진 7회부터 반격이 시작됐다. 1사 후 미겔 로하스가 볼넷을 골랐고, 키케 에르난데스가 좌월 2점 홈런을 터뜨리면서 2점차로 추격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오타니는 우전 안타로 3안타 경기를 완성한 뒤 곧바로 2루를 훔쳐 시즌 55번째 도루를 기록했다. 무키 베츠가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이전에 병살타를 두 개나 친 프레디 프리먼이 속죄의 적시타를 치면서 1점차까지 추격했다.
그리고 운명의 9회에서 다저스의 MVP 듀오가 빛났다. 선두 타자로 들어선 오타니가 중월 동점 솔로포를 터뜨리며 극적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것이다. 시즌 53번째 홈런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다저스타디움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고, 오타니도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 여운이 끝나기도 전, 이번에는 무키 베츠가 다시 타구를 좌측 담장 너머로 날려보내며 다저스가 극적인 6-5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이날 샌디에이고도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4-2로 역전승한 상황이었는데 다저스도 역전승하며 3경기 차이가 유지됐다. 만약 다저스가 올해 지구 선두를 지킨다면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남을 만한 경기였다. 올 시즌 기록 행진에 있어 유독 의미 있는 홈런이 많은 오타니는 이날도 동점 솔로포로 자신의 스타성을 과시했다.
경기 후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대단한 이닝이었다. 중요한 시리즈를 앞두고 기분이 좋아진다”면서 “이제 오타니는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타니처럼 푹 빠져본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끝내기 솔로포를 친 무키 베츠 또한 “오타니의 홈런이 엄청났다. 오타니의 홈런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줬다. 그래서 내가 다행히도 좋은 스윙을 할 수 있었다”면서 승리의 공을 오타니에게 돌렸다.
이날 경기는 오타니가 홈런과 도루를 한 경기에 동시 달성한 올 시즌 15번째 경기였다. 이 기록은 1986년 리키 핸더슨(13경기)이 가지고 있었는데 오타니가 이를 이미 넘어섰다. 이날 홈런은 오타니의 올 시즌 다저스타디움 28번째 홈런이었다. 이 또한 한 시즌 다저스타디움 최다 홈런이었던 2019년 코디 벨린저의 27개를 넘어선 것이었다.
오타니의 시즌 타율도 최근 맹타 속에 3할을 회복해 0.301이 됐고, OPS(출루율+장타율)는 1.023으로 더 높아졌다. 이날 오타니가 5타수 4안타를 기록한 것은 물론 무키 베츠도 끝내기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프레디 프리먼은 병살타 두 개를 딛고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고 테오스카 에르난데스 또한 1안타 1타점, 키케 에르난데스는 2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홈런만 네 방이 터져 나오며 다저스가 기사회생했다.
반대로 포스트시즌에서 중요한 몫을 해야 할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이날 3이닝 5피안타 4실점으로 부진했다. 이제 남은 등판은 한 번이다. 조 켈리, 라이언 브레이저가 1이닝 무실점으로 분전했고 9회 등판한 블레이크 트라이넨이 1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를 챙겼다. 다저스는 24일 하루를 쉬고 25일 샌디에이고를 홈으로 불러들여 올 시즌 지구 우승 확정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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