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영화 '부고니아'

그동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독창적이고 때로는 난해하기까지 한 작품 세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왔던 한 필자는 이번에 그의 신작 '부고니아'를 보고 완전히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분명 실력있는 영화 감독이지만 개인적으로 '더 랍스터' 이후 작품들은 다소 난해 하면서도 특유의 영상미와 파격적인 설정으로만 모호한 이야기를 묻혀가려는 모습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때문에 필자는 요르고스 란티모스를 과대평가 받은 감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부고니아'는 그의 전작엣 그나마 장점을 느껴졌던 부조리함에 대한 고발과 파격적인 면모가 깊은 울림과 예상을 뛰어넘는 완성도로 다가와 그를 다시보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들은 종종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 즉 절제된 감정 표현과 부조리한 설정, 날카로운 블랙 코미디로 인해 주류 관객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는 종종 그의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어졌으나, '부고니아'는 이러한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만한 요소가 상당했다. 이번 작품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한 상태에 대한 기묘한 은유'를 보여주는 방식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고 생각한다.

'부고니아'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설을 믿는 두 청년이 대기업 CEO를 외계인으로 착각하고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는 2003년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영어 리메이크작으로, 한국 영화의 독창적인 세계관이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재탄생했는지 보여준다. 설정과 배우들의 분장만 놓고 봤을때, 과거 할리우드에서 지겹게 봐온 루저 캐릭터들이 나오는 B급 코미디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란티모스 감독은 이러한 설정속에 매우 진중한 메시지와 B급 유머의 코드를 잘 섞은 개성적인 SF 코미디 드라마를 완성한다. 한 마디로 톤 조절을 의도에 맞게 잘한 작품이란 점이다.

영화는 단순한 SF 스릴러를 넘어, 권력, 음모론, 인간 본성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탐구한다.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장준환 감독의 전작 '지구를 지켜라!'의 파격적인 설정과 만나 '부고니아'에서는 오히려 '강렬함과 모호함의 층위'를 더하며 작품의 매력을 배가시킨점이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모호함'인데, 주인공 테디(제시 플레먼스)의 행동이 '선의의 옳은 일인지, 미친 자의 미친 짓인지' 관객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지점이 꽤 인상 깊었다.

원작의 신하균이 연기한 병구의 행동도 바로 그러한 모호한 지점을 끌고간 점이 흥미로웠는데, '지구를 지켜라!'가 병구의 행동에 감정적으로 다가섰다면, '부고니아'는 테디의 행동을 중점적 위치에서 바라보며 이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호함은 현재도 미국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외계인 음모론, 지구 평평론을 넘어,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요소가 된다. 관객들은 누가 선이고 악인지,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며, 이는 결국 미국 사회를 비롯한 이 세계의 다양한 갈등적 요소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점에서 보면 '부고니아'는 난해하면서도 부족한 내러티브를 영상미로 때우려 했던 란티모스의 전작들과 달리 좀 더 분명하면서도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점이 다양한 작품이었다.

여기에 그동안 전작에서 그의 개성과도 같았던 묘사, 영상미도 영화의 주제관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줘 더욱 개성있게 다가왔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관한 묘사는 이전에 그가 보여준 상상력과 영상미의 개성을 잘 보여준 동시에 원작과는 180도 전혀 다른 정서의 여운을 남기는 장면들을 남겨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게 한다.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의 연기다. 엠마 스톤이 연기하는 CEO 미셸과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하는 테디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는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특히 엠마 스톤의 연기가 압권인데, 차분하고 통제된 모습에서 점차 변화하는 모습이 꽤 인상깊다. 제시 플레먼스 역시 '느긋한 자신감'부터 '분노와 동정심, 연대의 감정'까지 이끌어내는 연기로 호평 받을만 했다.

그럼에도 '부고니아'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팬들 사이에는 호불호를 불러올수 있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그의 강렬했던 개성이 다소 약해졌기에 전작보다 더 별로라는 느낌도 있을테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한층 더 성숙해진 연출력과 개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의 연출과 예술성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측면을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된다.
영화 '부고니아'는 11월 5일 개봉한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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