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춘마까지의 여정(긴글주의요망)
4월부터 춘천 마라톤까지의 여정
4-5월
3-4 년 이상 크로스핏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부상있으면 쉬었지만 그래도 아예 놓지는 않았어요.
2월 경에 스쿼트 335 파운드 데드리프트 피알 385파운드 찍고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갔습니다.
디스크 협착이 심해져서 더 이상 크로스핏 와드 동작이 힘들어졌고 건강때문에 하는건데 무리가되는게 싫어서
허리에 주사 꼽으면서 조금 더 해보다가 바로 스탑 하였습니다.
낙담하며 쉬던 중 기안84 의 마라톤 완주 영상을 유툽에서 반복적으로 보게되었습니다.
볼때마다 감동적이었어요.
마침 주변에 마라톤을 몇 년간 해온 친한 선배 형님이 계셔서 달리기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 선배 형이 몸담고있는 바나나 스포츠라는 유료 회원제 러닝크루에 등록했습니다.
마라톤 엘리트 출신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일주일에 수 토 두 타임 한시간 반 정도 봐주시는 모임입니다.
처음부터 배운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서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그렇게 러닝에 깊게 빠져있지는 않았어요. 건강한 몸 만들기가 우선이라고 생각했죠.
기본적으로 달리기 좋은 몸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86키로에 근육 돼지형 스팸인간의 몸이었고(크로스핏 오래하면 응당 그렇게됩니다ㅜㅜ)
한 발 한 발 이 무거웠습니다.
허리는 협착이 남아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리가 저릿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단 달리기가 편하지 않은 상태라고 파악되어 달리기 위한 몸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마침 동네에 달리기 학원을 표방한 재활 센터(시니어 운동센터같은 느낌의)가 있더라구요.
3개월 등록했습니다.
운동 강도는 매우 낮았지만 스트레칭과 밸런스 운동 위주였고 허리디스크에 협착이 있는 상태라서
성에 안차지만 다시 기능을 살리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낮은 강도의 운동 하면서도 다리가 저릴때도 있었고 허리에 통증도 있었습니다.
바벨과 덤벨은 잡을 생각도 안했고 trx 밴드 운동과 맨몸 운동(풀업 푸시업 불가리안스플릿스쿼트) 위주로
점진적으로 기능을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곳 코치들이 마침 몸의 협응과 기능에 대한 이해가 좀 높은 편이어서 세심하게 봐주셨어요.
스트레칭도 자세와 정렬, 폼롤러의 사용 등등 하나 하나 배워갔습니다.
한시간 운동하면 몸을 푸는 시간을 이십분 이상 가져갔던거같아요.
이렇게 세 달정도 몸을 만들어 가니 슬슬 달리기 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몸무게도 점점 키로수가 줄어갔어요. 가벼워지니 더 빨라지고 스트레칭과 보강운동을 병행하니 추가적인 부상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무게가 있는 상태에서 힐트레이닝과 인터벌 훈련은 과한 의욕으로 인해 무릎 장경인대염과 약한 신스프린트 정강이부상을 불러오긴 했어요. 그래도 체외 충격파 치료와 관련 스트레칭을 통해서 2주 이상 끌고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아프면 병원에 바로 가야해요. 그리고 아프면 아무것도 안해야합니다. 그게 최선입니다. 계속 치료하고 스트레칭하고 보강운동하고 달리기하고 아프면 또 병원가는 루틴을 반복했습니다.
*달리기 부상은 한 곳이 아프면 아픈상태에서 밸런스가 무너지기 때문에 추가 운동시에 다른 관절이나 근육에 필연적으로 연쇄 부상을 일으킵니다. 아예 아픔을 무시하고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거 아니면 아예 쉬는 편이 훨씬 결과적으로 장기부상으로 가지 않더라구요.
6월
3개월간 보강운동과 스트레칭으로 인대와 근육 등 몸이 좀 강해졌어요.
몸무게도 6월 말엔 79kg 으로 7 kg 이상 감량 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 마일리지도 4월 5월엔 100km 도 뛰지 못했었는데 6월 들어 부쩍늘어 140Km 를 달릴 수 있었어요.
살빠지고 치명적이었던 허리 부하가 줄어 다리 저림도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때부터 20 km 이상 장거리 훈련을 섞어보기 시작했어요. 몸에 부하가 어느정도 오는지 계속 체크하면서 점진적으로 거리를 늘리려고 했습니다. 물론 의욕 과다로 뛰고 나서 2-3 일 못뛰기도 했지요. 그래도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7-9 월
몸이 어느정도 올라오고 달리기를 계속 지속하며 월 마일리지 200km 씩 달리기 시작했어요.
여름엔 근육 부상확률이 낮아서 좋았어요. 새벽에 나가 몸 대충 풀고 뛰어도 크게 무리가 없어서 마일리지를 수월하게 늘릴 수 있었어요.
훈련은 남산 북측 순환로에서도 종종 뛰었고 올림픽공원이나 한강, 한양대 트랙에서도 뛰었어요.
달리기 훈련 프로그램은 바나나 스포츠에서 꾸준하게 제공받았기에 부상 없으면 무지성으로 스케줄대로 진행했어요. 열정적으로 임하니 코치님과 감독님 그리고 크루 내에서도 알아 봐주시는 분들이 생겼고 같이 러닝 관련 대화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상관리 스트레칭 보강운동은 여전히 동네 러닝학원? 에서 배우고있었지만 이미 너무 낮은 강도와 지리한 반복으로 매너리즘에 빠졌어요. 3개월 이상은 할 필요 없는 센터였습니다. 가격도 그룹 피티 형식이라 비쌌고. 그래도 정때문에 10 월까지는 계속 나갔어요. 부상 확률이 그래서 더 낮아지긴 했던거같아요.
9월 막바지부터 대회에 하나씩 나가보려 했습니다.
대회의 분위기를 익히고 스스로를 테스트하며 10K 하프 대회 기록을 토대로 풀코스의 예상 페이스를 계산해보려했어요.
9/22 동대문 마라톤 10k 41:30 으로 생각보다 호성적이 나왔습니다.
더운 여름에 200 km 씩 마일리지를 먹은게 그래도 몸을 만들어줬다고생각해요.
10월
꾸준하게 훈련을 하되 많은 km 를 달릴 순 없었어요. 춘천 마라톤이 달 말에 있어서 최대한 부상 없이 꾸준하게 훈련하는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물론 춘마 2주 전인 서울레이스 하프는 무조건 빡뛰할 생각이었습니다. 한참 몸에 자신이 있었고 풀코스 예상 기록을 최대한 높여보고 싶었어요.
10/13
서울레이스 하프 는 1:29 :27 을 달성했어요. 정말 컨디션이 좋았고. 전반부 8km 까지 병목 아니었으면 1 분이상 더땡길수 있었지 않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지요. 그러나 요때부터 ㅎ 발바닥에 텐션감이 좀 생겨버렸어요. 족저근막염은 사실 한번 생기면 회복도 느리고 관리도 힘들어서 최대한 피하고 싶었는데 이미 좀 기미가 보였어요.
2주 남은 춘마에서 최고의 컨디션이고 싶었는데 한번 생긴 족저의 텐션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그로인해 밸런스가좀 무너진 상태에서 훈련을 하게되었어요. 아예 쉬는게 낫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해보지만 첫 대회를 앞둔 초조함은 훈련을 하지 않고는 쉽게 달래지지 않았어요. 남산언덕도 뛰고 1주일 전 컨디션체크한다고 10km 빡뛰도 했어요. 결국 그 다음날 조깅하다 족저근막염 오른쪽 다리의 햄스트링이 올라와버렸습니다. ㅎㅎ
10/27 춘천마라톤 당일
한번 올라온 햄스트링의 텐션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어요. 일주일을 거의 통으로 쉬었는데도 춘천 마라톤 대회 당일 아침까지도 허벅지 뒤쪽에 손이 갈 정도였으니까요. 그 동안 훈련하면서 한번도 쥐 난적 없었는데 대회 중에 쥐가 날 수도 있겠다고 동반하는 러너 선배님들께 미리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회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대회만 보고 왔는데 포기 할 수는 없었어요. 마지막 뛰기 전에 달리기를 이끌어준 선배 형님에게 4월부터 여기까지 덕분에 잘 왔다고 말씀드리는데 눈물이 살짝 돌았어요. 이때 수분이 좀 날라가서 쥐가 나지 않았나 싶어요 ㅋ.
레이스 목표는 싱글이었어요 310 안쪽으로 오는 것이었고 목표 페이스는 1키로당 430 초반이었습니다. 첫 출전이라 F 조였지만 뭐 어차피 만 명 제낀다는 포부로 임해서 좋았어요. 그 동안 계속 추격하는 레이스를 했기 때문에 익숙했어요.
27 km 까지는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점점 햄스트링이 조여오는게 느껴졌고 춘천 마라톤의 유명한 댐을 올라가는 언덕에서 멈출수 밖에 없었습니다. 햄스트링은 너무 커서 쥐를 잡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짜증나고 성질났어요 여기서 포기해야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경치는 참 마음과 다르게 정말 고요하면서 멋지더라구요. 멍하니 한 30 초간 호수를 바라보고서있으니 자원봉사자님이 다리에 파스를 뿌려주셨어요. 걷다 뛰시라고 멈추지 말라고 하셔서 눈물 꾹 참고 걷고 풀고 뛰고 했습니다.
언덕을 다 올라가서 이제 괜찮으려나 하며 다시 페이스를 올렸어요 그러자 역시나 또 쥐가 나요. 두 번째 쥐가나니 갑자기 웃음이 났어요. ㅎㅎ 이젠 그냥 즐기면 되겠구나. 펀런을 하자. 내려놓자. 이런 생각이 들었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죽어도 dnf 는 안할거였으니까요. 그 이후로는 쥐가 한 5 회 이상 난거같아요. 오른 다리에만 나다가 결국 왼다리 과사용으로 왼발도 나더라구요 ㅎㅎ 그래도 계속 풀면서 웃었어요. 뭐 좋다 이거야 어차피 플랜 a 목표 페이스는 무너졌었으니까요. 그래도 플랜 b 는 3시간 30 분으로 아직 가능성이 보였어요. 첫 풀에 330 은 원래 제 9 월 의 목표였다는걸 다시 생각해냈어요. 그래서 키로 당 500 내로만 계속 뛰자고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어요.
제가 쥐나서 멈출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난 자원봉사자님들이 계속 파스를 뿌려주시고 멈추지 말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얼굴도 기억이 안나지만 그 고마움 가슴속에 오래 있을거 같아요.
결국 끝까지 해피하게 달릴 수 있었고 결과는 3시간 22 분 아쉬우면서도 만족스러운 레이스였습니다.
6 개월, 달리기의 매력에 점점 빠져온 시간이었던거 같아요. 갈수록 힘들어지는 생업과 가족의 투병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풀 마라톤 완주라는 개인적인 큰 목표 하나를 보고 스스로 무너짐 없이 꾸준하게 올 수 있었어요.
기록을 목표로 달리기도 물론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꾸준하게 달릴 수 있던 이유는 기록이 아니에요.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의 병이나 상처가 심해질 때 달리기를 통해서 잔잔한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현생의 괴로움의 연쇄속에서 스스로 인생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달리기에서 많이 얻었습니다.
올 한해 힘든 일들 많았지만 지금도 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내 인생 사는 힘을 많이 기른거같아요.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기 싫었고 그저 스포츠로만 대하고싶었는데 너무 진심이라서 많은 의미가 결부가 되네요. 이 글을 마지막으로다시 내년 동아마라톤 싱글을 목표로 열심히 훈련하고 현생도 최선을 다해서 살려구요.
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런갤에서 정말 정보도 많이 얻고 위로도 받아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