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 마냥 반대 어려워”…‘팀 한동훈’ 세 규합 본격화?
윤-한 갈등 격화 속 ‘국민 눈높이’ 강조
윤 거부권 무력화 ‘캐스팅 보트’ 전략 해석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지난 7·23 전당대회에서 자신을 지원했던 의원 등과 만찬 회동을 하고,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는 나오는 걸 보면서 대응해야 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선 “관련 의혹이 뭐가 더 나올지 모르겠다”는 우려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이 고조되며 당내 입지가 좁아진 한 대표와 친한계가 ‘국민 눈높이’를 명분 삼아 본격적인 세 규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이날 저녁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지난 전당대회 당시 ‘팀 한동훈’ 텔레그램방에 참여했던 의원들, 격차해소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조경태 의원, 원외인 김종혁 최고위원 등 20여명과 3시간가량 저녁 식사를 했다. 만찬엔 계파색이 옅은 김재섭 의원도 참석했다. 이날 모임은 송석준 의원이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친한동훈계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한 대표 취임 뒤 처음이다. 만찬 시간과 장소는 비공개로 진행했는데, 애초 정했던 곳이 일부 기자들에게 알려지자 다른 곳으로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한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7일 시작되는) 국정감사가 중요하다. 국감에서 국민한테 우리가 와닿게 해보자”며 의원들을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한 대표는 “진짜 위기 상황이다. 보수가 진짜 어려운 상황”이라는 인식도 내비쳤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특히, 여권의 최대 리스크가 된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한 우려와 불만을 쏟아냈다. 한 만찬 참석자는 “국감 기간에 김 여사 관련 의혹이 뭐가 더 나올지 모르겠다, ‘김건희 특검법’에 마냥 반대하긴 어렵다, 단일대오로 뭉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번엔 막았지만 계속 뭐가 터지면 어떻게 방어할지 고민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용산이 변해야 한다. 야당이 재발의하면 지금까지처럼 당이 반대만 하기는 어렵다는 우려가 컸다”고 했다. 이에 한 대표는 “뭐가 나올지 모르니, 국감 기간에 제기되는 의혹을 지켜보고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다만 지금으로선 친한계가 김건희 특검법에 찬성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수사 대상 가운데 하나인 김 여사의 ‘4·10 총선 공천 개입 의혹’은 자칫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천 책임자였던 한 대표한테 칼날이 향할 수 있는 탓이다. 친한계 한 의원은 “김건희 특검법을 받아들이면, 대통령실은 물론 당까지 모든 빗장을 열어주게 되는 것”이라며 “당을 쑥대밭으로 만들 일이 있냐”고 했다.
이날 만찬에서 참석자들은 ‘한동훈 중심’과 ‘국민 눈높이’도 강조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당이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데 이걸 극복하려면 한 대표를 구심력으로 해서 당을 잘 끌어가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당의 모습과 방향으로 가자는 얘기가 많았다”며 “당대표와 당 전체가 그동안 따로 놀았다는 게 비정상 아니냐.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가 악화일로인 상황에서 당내 친한계 대부분이 모인 터라, 당 안팎에선 만찬이 예고될 때부터 이날 모임이 한 대표의 ‘차별화’가 가속화하고 친한계가 본격적인 세력화에 나서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지난달 한 대표가 명품 가방 수수와 관련한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요구하고,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을 거절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표출된 ‘윤-한 갈등’은 독대 재요청→대통령실 무응답→한 대표를 뺀 원내 지도부 만찬→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의 ‘한동훈 공격 사주 의혹’ 등이 이어지며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영남의 한 의원은 “당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자기를 도운 의원들을 만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시기가 좀 묘하다”며 “세력화, 차별화 등 해석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20명여명의 친한계 의원들이 모인 것은, 한 대표가 법안 재표결 때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무력화할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전략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친한계가 다수인 당 지도부와 달리 원내 지도부는 친윤석열계 중심인데다, 친한계 의원이 당내 다수는 아니어서 한 대표는 ‘원외 대표 한계론’에 시달리는 처지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는 국회 재표결 때 야당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여당 이탈표 8명’(국회의원 전원 출석 전제)을 너끈히 뛰어넘는다. 실제로 친한계가 이탈하지 않더라도 그 가능성을 ‘무기’로 쥐고 있는 한, 한 대표가 대통령실이나 친윤계와 주도권 다툼에서 일방적으로 밀릴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몇명을 무기로 대통령을 협박하려는 거냐”며 “묘한 시기에 묘한 모임”이라고 적었다.
공교롭게도 한 대표는 이날 오전 출국한 윤 대통령 부부의 아시아 3개국 순방 환송 행사에도 불참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 순방 환송·환영에 불참한 건 이례적이다. 한 대표도 비대위원장 때를 포함해 이런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건 처음인데, 그는 이날까지 1박2일 일정의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를 이유로 들었다. 한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오늘은 재보궐선거 응원하러 부산에 간다”며 “제가 하루 꼭 자고 가자고 동료 당직자들을 졸랐다. 아름다운 우리 부산에서 일박이일을 보낼 생각 하니 즐겁다”고 적었다. 윤 대통령 출국 날짜는 이미 예고돼 있었는데, 한 대표의 글대로라면 그럼에도 자신이 부산 출장 일정을 이틀로 늘린 셈이다.
친윤계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친윤계 핵심 의원은 “그 사람(한 대표)은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소수파를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거냐”며 “윤 대통령을 협박하겠다는 건데, 결국은 점점 더 고립될 뿐”이라고 말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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