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경기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0-18은, 과정으로도 그냥 넘기기 어려운 숫자다. 더 무서운 건 “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무너졌는지가 너무 선명하게 남았다는 점이다. 한화가 일본 오키나와에서 지바 롯데를 상대로 0-18 완패를 당한 이 경기는, 시즌 준비의 ‘점검’이 아니라 불안의 ‘증폭기’처럼 보였다.

처음 3이닝까지만 보면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선발 윌켈 에르난데스가 최고 152km 직구를 앞세워 2이닝 무실점, 뒤이어 나온 엄상백도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았다. 스코어 0-0, 겉으로는 팽팽했다. 그런데 야구는 늘 “잠깐 버틴다”와 “끝까지 버틴다” 사이에서 갈린다. 한화는 그 경계선이 4회에 있었다.
4회 윤산흠이 올라오자마자 흐름이 꺾였다. 솔로 홈런을 맞고, 연속 안타와 볼넷이 겹치며 ⅔이닝 5실점. 여기서 문제는 단순 실점이 아니라 아웃카운트를 잡는 방법이 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공이 높아지고, 볼이 늘고, 맞으면 길게 갔다. “한 번 흔들린다”가 아니라 “안정적으로 흔들린다”는 말이 더 정확할 정도로, 다음 투수에게 상황을 넘겨주는 방식이 최악으로 흘렀다.

조동욱이 올라왔지만 진화는커녕 불이 더 커졌다. ⅓이닝 동안 6피안타 1볼넷 5실점. 빠르게 끊어야 할 타이밍에서 오히려 더 맞았다. 타자들이 노리는 구역이 보이는 듯했고, 한 번 맞기 시작하니 라인드라이브가 연달아 나왔다. 점수는 순식간에 0-10. 연습경기라서 교체가 쉽다지만, 연습경기라서 더 치명적인 것도 있다. “어떤 카드가 위험한지”가 상대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대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5회는 사실상 재난이었다. 김종수가 1이닝 8실점. 홈런이 섞였고, 장타가 이어졌고, 주자가 쌓이자 더 흔들렸다. 투수 한 명이 얻어맞는 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한화는 이 경기에서 불펜이 ‘연쇄 붕괴’를 일으켰다. 한 명이 무너지면 다음이 막아야 하는데, 다음이 또 무너졌다. 그러면 결국 팀 전체가 “오늘은 여기까지”가 된다. 7이닝으로 끝난 이유가 경기 시간 때문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더 길게 했다면 점수가 어디까지 갔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타선은 더 답답했다. 단순히 “0점”이 아니라, 찬스를 잡고 스스로 끊었다는 점이 불길하다. 1회 오재원이 안타로 출루했는데 바로 병살로 끝났다. 3회엔 심우준 안타로 찬스가 열리고, 페라자가 안타로 2사 만루까지 만들었는데 강백호가 포수 땅볼로 막혔다. 6회에도 페라자 안타, 강백호 진루타, 채은성 안타로 1사 1·3루를 만들고도 병살로 끝. 이렇게 되면 투수들이 무너질 때 “버틸 시간”이 없다. 실점을 해도 공격이 한 번 숨을 돌려줘야 하는데, 그 숨통이 막힌다.
물론 밝은 장면도 있었다. 신인 오재원은 1번 중견수로 나와 3타수 1안타, 연습경기 4경기 연속 안타 흐름을 이어갔다. 페라자는 3타수 2안타로 유일한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한지윤은 2루타로 장타를 남겼다. 6회 박준영이 1이닝 무실점, 7회 김서현도 실점 없이 막은 것도 “끝이 바닥은 아니다”라는 신호다. 하지만 오늘 같은 경기에서 팬들이 더 크게 느끼는 건 희망이 아니라 질문이다. “좋은 장면 몇 개로 이 불안을 덮을 수 있나?”라는 질문.

김경문 감독이 최근 오재원에게 “1군에서 쓸 수 있다”는 합격 판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 말이 더 빛나려면, 팀이 흔들릴 때도 경기 흐름을 붙잡아 줄 ‘기본 구조’가 있어야 한다. 지금 한화가 가진 가장 큰 우려는, 주전 경쟁이 아니라 뒷문과 중간이 ‘어느 날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다. 시즌은 길고, 연전은 반복된다. 불펜이 흔들리는 날은 반드시 온다. 문제는 그날이 “2~3점짜리 흔들림”인지, “오늘처럼 경기 자체가 끝나는 흔들림”인지다.
연습경기라서 괜찮다고 말하면 마음은 편해진다. 하지만 연습경기라서 더 불편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변명할 시간이 아니라, 손볼 시간이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오늘 0-18은 ‘경기 결과’가 아니라 ‘경고장’이다. 그리고 이 경고장은 꽤 크고, 꽤 구체적이다. 다음 경기에서 한화가 보여줘야 할 건 승리보다도, 최소한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방식이다. 그게 없으면, 시즌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불안은 그대로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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