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멀미 줄여준다는 스탠드, 쓸 만할까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사용하다 보면 속이 급격히 메스꺼워질 때가 있다. VR 멀미라고 부르는 증상이다. 보통 VR 헤드셋을 착용한 뒤 30분쯤 지나면 발생하며, 예민한 사람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구토감을 호소한다. 이런 사람도 VR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멀미를 억제하는 방법은 없을까.

​실제로 VR 멀미를 완화해 준다는 제품이 등장했다. 지난달 미국 VR 회사 뉴로싱크(NeuroSync)는 VR 멀미를 줄여주는 디지털 인터페이스 'C-인피니티(C-Infinity)'를 공개하고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를 통해 펀딩을 진행했다. 이 펀딩은 목표 금액을 달성해 2월 23일(현지시간) 마무리될 예정이다.

거대한 컨트롤러 역할, 의자처럼 기대고 팔 얹어 사용해

C-인피니티 팔걸이에 내장된 컨트롤러(왼쪽)와 전체 모습(오른쪽) (출처 : NeuroSync)

C-인피니티는 스탠드, 등받이, 팔걸이, 발판으로 구성됐다. 얼핏 보면 의자와 비슷한데 앉는 부분은 없다. 발판에 올라서서 등받이에 자연스럽게 등을 기대고, VR 헤드셋을 C-인피니티에 연결한 다음 헤드셋을 쓰고 팔걸이에 팔을 올리면 사용 준비가 끝난다. 팔걸이 끝에는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각종 버튼이 탑재됐다.

​뉴로싱크는 C-인피니티가 HTC 바이브, 메타 퀘스트, 플레이스테이션 VR, 밸브 인덱스를 비롯한 VR 헤드셋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카드보드나 기어 VR처럼 스마트폰을 장착해 VR을 시청하는 기기도 OTG 케이블로 연결하면 사용할 수 있다.

VR 멀미 일으키는 '괴리감' 줄이는 게 핵심 목표

C-인피니티는 어떤 원리로 VR 멀미를 억제할까. VR 멀미가 발생하는 원인을 알면 이해하기 쉽다. VR 콘텐츠를 볼 때 속이 메스꺼워지는 원인은 주로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VR 헤드셋의 양쪽 렌즈 사이 거리가 사용자의 눈 사이 거리와 다른 경우다. 양쪽 시야가 미세하게 어긋나면 시각 정보가 흐트러져 멀미를 유발한다. 이는 렌즈 간 거리 조절이 가능한 VR 헤드셋을 사용해 해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신체의 움직임이 화면에 늦게 반영되는 경우다. 구형 VR 헤드셋에서 자주 발생한다. 헤드셋 사양이 낮으면 신체가 움직였다는 정보를 처리하고 화면에 띄우는 속도가 느리다. 이때 발생하는 시간 차이 때문에 뇌가 괴리감을 느껴 어지럼증과 구토를 유발한다.

​세 번째는 신체가 가만히 있는데 화면만 움직이는 콘텐츠를 보는 경우다. 뇌는 신체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여기지만 눈으로 인식하는 시각 정보는 몸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고 전하니 괴리감을 느끼기 쉽다.

​네 번째는 주변에 몸을 지탱할 만한 구조물이 없는 경우다. 롤러코스터나 비행 시뮬레이터처럼 삼차원으로 급격하게 움직이는 콘텐츠를 시청하다 보면 몸이 무의식중에 움직이는데, 주변에 지탱할 만한 물건이나 벽이 없으면 균형을 잃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어지러워지기 쉽다.

​VR 멀미를 해결하려면 몸이 실제로 움직여야 하며 움직임이 화면에 곧바로 반영돼야 한다. 시야가 급격히 움직이거나 흔들려도 몸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지지하는 구조물도 필요하다.

등받이가 조이스틱 역할, 몸 비틀면 화면도 따라 움직여

C-인피니티를 사용하는 모습 (출처 : NeuroSync)

C-인피니티에 탑재된 등받이는 좌우로 몇 도 정도 움직일 수 있게 설계됐다. 등을 기댄 상태로 몸을 비틀면 등받이도 따라 움직인다. 사용자가 오른쪽을 보려고 하면 무의식중에 상체도 오른쪽으로 약간 움직이는데, 이때 등을 기댄 등받이도 따라 움직이면서 VR 헤드셋에 오른쪽으로 돌라는 신호를 전송한다. VR 헤드셋 컨트롤러에 있는 조이스틱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움직임을 반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등받이가 훨씬 빠르다. 조이스틱으로 시선을 이동하려면 조이스틱을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움직여야 시선이 원하는 만큼 이동하는지 계산해야 한다. 생각할 요소가 늘어난 만큼, 뇌가 움직임을 결정한 순간부터 실제로 조이스틱을 조작해 화면이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반면 C-인피니티는 무의식중에 상체를 뒤틀어 발생하는 움직임을 바로 헤드셋에 반영하므로 지연 시간이 줄어든다. 조이스틱보다 훨씬 직관적이며 사용자가 신경 쓸 요소도 적다. 실제로 몸을 움직인 대로 화면에 반영되므로 VR 멀미도 억제할 수 있다. 뉴로싱크는 1만 7000명 이상의 사람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더니 메스꺼움이 기존 방식보다 상당히 줄었다고 주장했다.

테스터 소감은? "효과 있지만 추천할 만한 사용자 적어"

2월 22일 해외 IT 매체 아르스테크니카(Ars Technica)는 C-인피니티 시제품을 몇 주간 사용해 본 후기를 보도했다. 매체는 뉴로싱크 주장대로 VR 멀미가 상당히 줄었지만 특정한 대상에게만 권장할 만한 제품이라고 전했다.

캐릭터를 움직이는 도중 고개를 돌려 시야만 옮긴 모습 (출처 : NeuroSync)

매체는 등받이로 시선을 이동하는 방식이 때로는 과했다고 밝혔다. 게임에서 옆을 보면서 이동할 땐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어 도움 됐지만, 간혹 게임 내 움직임이 의도했던 타이밍과 어긋날 때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등받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VR 게임도 있었는데, 컨트롤러 설정에서 등받이를 어떻게 인식시켜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팔걸이 모양 컨트롤러도 장단점이 뚜렷했다. 게임을 하는 동안 팔을 지탱해 주므로 컨트롤러를 계속 들고 있을 필요가 없어 피로가 적다. 운전이나 비행 시뮬레이터처럼 캐릭터 위치가 변하지 않는 게임을 할 땐 몸을 안정적으로 고정하기 용이하다.

손이나 컨트롤러 위치를 추적하는 VR 게임에는 적합하지 않다 (출처 : NeuroSync)

반면 컨트롤러를 들고 움직여야 하는 게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VR 게임은 대부분 컨트롤러나 손의 움직임을 추적해 게임에 반영한다. 하지만 C-인피니티 컨트롤러는 팔걸이 형태로 고정돼 이동하지 않고 손 움직임도 추적하기 어렵다. 뉴로싱크가 C-인피니티로 로블록스를 플레이하는 시연 영상에서도 팔걸이 대신 VR 헤드셋의 번들 컨트롤러를 사용하고 있다.

​아르스 테크니카는 C-인피니티를 사용해 보니 VR 게임을 할 때 발생하는 피로와 메스꺼움이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몇 가지 단점 때문에 추천할 만한 사용자는 적다고 덧붙였다. 부피가 너무 커 휴대하기 어렵고, 한 번 조립하면 접어서 보관할 수 없으며, 플레이어가 실제로 이리저리 걸어 다녀야 하는 VR 게임에는 부적합하다.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구매해도 100만 원이 넘게 든다 (출처 : NeuroSync)

매체는 결정적으로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지적했다. 킥스타터 캠페인 상세 정보에 따르면 C-인피니티 출시 가격은 1999달러(약 265만 6670원)로 책정됐다. 얼리버드 혜택에 해당할 경우 실구매가는 799달러(약 106만 1870원)까지 내려가지만 여전히 부담되는 가격이다.

​아르스 테크니카의 평가에 따르면 C-인피니티는 실제로 VR 멀미를 줄이는 데 도움 되지만 그만한 비용을 감수할 메리트는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 매체가 지적한 단점을 해소한다면 향후에는 좀 더 효율적인 제품이 등장하길 기대해 볼 만하다. 예를 들어 등받이가 고정된 스탠드 대신 센서가 내장된 조끼를 사용하면 휴대나 보관이 한결 편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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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플러스 에디터 이병찬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