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저문 뒤, 경주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의 유적이 역사를 말한다면, 밤의 경주는 조명과 고요 속에서 감성을 속삭인다. 화려한 경관조명과 어우러진 신라 천년의 흔적들이 도시 전체를 물들인다. 빛으로 되살아난 신라의 밤, 지금 경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야경 명소 10곳을 소개한다.
① 감은사지

경주의 동쪽 끝,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감은사지는 문무왕과 신문왕의 뜻이 깃든 호국사찰의 흔적이다. 두 개의 동서삼층석탑이 수천 년 전 그 자리에 서 있던 금당과 불당을 지키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 질 무렵 이곳을 찾으면, 주위는 어둠에 잠기고 두 탑만이 조명에 의해 또렷이 부각된다. 인위적인 빛 없이 오직 석탑의 실루엣과 별빛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말 그대로 고요한 장엄함 그 자체다. 깊은 밤,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하얀 탑은 신라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하다.
사진 애호가들이 특히 선호하는 이곳은 별궤적 촬영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사찰터 주변이 비교적 인공조명이 적은 탓에 천체사진 촬영에 적합한 장소로 손꼽힌다. 어두운 밤, 맑은 날이면 그야말로 경주에서 가장 깊은 야경의 매력을 선사한다.
- 위치 : 경주시 동해안로 1248
- 관람료 : 무료
- 조명 점등 : 일몰 후 ~ 22:00
② 경주엑스포공원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은 전시, 체험, 문화 콘텐츠가 집약된 복합문화공간이자,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바뀐다. 특히 야간 콘텐츠인 ‘루미나 나이트워크’는 빛과 소리, 조형물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체험형 산책 코스로 꾸며져 있다.
‘신라를 담은 별’을 주제로 한 이 콘텐츠는 경주타워 뒷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조명 산책로로, 홀로그램과 인터랙티브 장치, 다양한 오브제가 어우러져 스토리텔링을 따라 걷게 되는 구조다. 이 체험은 단순히 보는 야경을 넘어서, 직접 걷고 참여하며 밤을 즐기는 입체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공원의 상징인 경주타워는 높이 82m, 황룡사 9층 목탑의 실루엣을 본떠 만든 전망타워다. 저녁이면 부드러운 황금빛 조명으로 타워가 물들고, 그 뒤편으로 펼쳐지는 공원의 조형물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 위치 : 경주시 경감로 614
- 이용시간 : 10:00–22:00 (루미나 입장 마감 21:00)
- 입장료 : 루미나 나이트워크 성인 5,000원 (공원 입장 포함)
③ 월정교

경주 도심을 흐르는 남천(문천) 위에 당당하게 걸쳐진 월정교는 신라의 역사와 현대 기술이 어우러진 대표 복원 프로젝트 중 하나다. 2018년 일반에 개방된 이래, 야간 조명이 어우러지는 월정교의 자태는 경주의 대표적인 인생샷 스팟으로 자리잡았다.
밤이 되면 다리의 섬세한 목조 구조를 따라 붉은빛과 황금빛이 교차하며 강물 위로 반사된다. 특히 교량 바로 앞에 설치된 징검다리를 조심스레 건너면서 월정교를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만날 수 있다.
교량 내부도 밤 10시까지 개방되어, 내부 통로를 걸으며 전통 목조건축의 디테일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2층 문루 전시실에서는 월정교 복원 과정과 유물 출토 스토리도 확인할 수 있어, 역사와 빛의 경험을 함께하는 명소다.
- 위치 : 경주시 교동 274
- 관람료 : 무료
- 조명 점등 : 일몰 후 ~ 22:00
④ 금장대

형산강의 푸른 흐름과 함께하는 누각, 금장대는 경주 도심 외곽에서 높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후기 경주 8경 중 하나로 손꼽혔던 이곳은 ‘금장낙안(金丈落雁)’이라는 이름으로도 전해지며, 강 위를 날던 기러기조차 그 경치에 취해 쉬어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2012년 중창된 금장대는 암벽 위에 세워진 전통 누각의 전형이다. 누각 아래는 강이 흐르고, 멀리 경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특히 밤이면 누각 외벽에 은은한 조명이 켜지며, 금장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주의 불빛이 장관을 이룬다.
누각 내부에 올라 야경을 감상할 수도 있으며, 형산강에 비치는 조명과 반사광의 대비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 애호가, 연인, 혼자 사색을 즐기는 이들에게 모두 추천할 만한 야경 명소다.
- 위치 : 경주시 석장동 산 38-9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06:00~22:00
⑤ 첨성대

신라의 별을 관측하던 공간, 첨성대는 밤이 되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진 이 탑은, 돌의 개수, 창문의 위치, 단수 등 수많은 천문학적 상징을 품고 있는 구조물이다.
해질 무렵 조명이 들어오면, 첨성대는 그림자와 빛이 교차하는 독특한 조형미로 살아난다. 둥근 천장을 닮은 윗부분과 정사각형의 하단부가 이루는 대비는 고대인의 하늘과 땅에 대한 이해를 형상화한 것. 야경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첨성대는 한가롭게 그 자리를 지킨다.
경내는 개방형 공간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산책하며 첨성대와 함께 경주의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주변의 잔디밭과 조명도 은은하게 어우러져 있어 도심 속에서 별을 마주하는 듯한 평온함을 안겨준다.
- 위치 : 경주시 인왕동 839-1
- 관람료 : 무료
- 조명 점등 : 일몰 후 ~ 22:00
⑥ 동궁과 월지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이곳은 본래 동궁과 월지, 신라 태자의 별궁이자 궁중 연회 장소였던 공간이다. 해가 지고 조명이 들어오면, 연못 위에 비친 복원 건물의 실루엣과 조명이 맞물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야경을 만든다.
특히 복원된 건물 3채와 주변 수목, 그리고 잔잔한 연못이 조명에 의해 이뤄내는 반영(反影)의 미학은 경주 야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사진 포인트는 연못 뒤쪽, 건물의 조명과 물 위 반사가 나란히 보이는 각도다.
밤 10시까지 조명이 이어지고, 매표는 21시 30분에 마감되니 늦은 밤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참고하자. 고요히 출렁이는 수면에 스며든 조명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감성을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 위치 : 경주시 원화로 102
- 입장료 : 성인 3,000원
- 조명 점등 : 일몰 후 ~ 22:00
⑦ 경주읍성

경주 시가지 한복판, 신라의 천년 이후를 품고 있는 경주읍성. 조선시대 경주부의 중심이었던 이 성은 오랜 세월 풍화되어 흔적만 남았지만, 최근 동쪽 성벽과 향일문 복원과 함께 화려하게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LED 경관조명은 단순한 복원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낮에는 조용한 성터지만, 해가 지고 조명이 들어오면 벽돌 하나하나에 반사되는 빛이 마치 새로운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산책길도 잘 정비되어 있어 가볍게 걷기 좋다.
이곳은 특정 입장 시간이 없고, 밤샘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늦은 시간에도 산책이 가능하다. 앞으로 북문 공신문과 북성벽까지 복원될 예정이니, 매년 조금씩 변해가는 경주읍성의 야경을 기대해도 좋다.
- 위치 : 경주시 동문로 31
- 관람료 : 무료
- 조명 점등 : 일몰 후 ~ 일출 전
⑧ 보문호반길 & 보문정

보문관광단지 내의 인공호수 보문호는 낮에도 명소지만, 밤이 되면 전혀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호수 둘레 약 7km에 이르는 보문호반길은 구간마다 경관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면서도 운치 있는 밤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우양미술관 인근에서 지하보도를 통해 호수 건너편으로 향하면 만나는 보문정은 작지만 인상적인 정자다. 은은한 조명 속에 정자와 연못, 주변 숲이 어우러져 차분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봄철이면 벚꽃이 흐드러지며 이 길의 매력은 배가되고, 여름밤의 산책로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도심 속 힐링 코스로 제격이다. 가족, 연인, 여행객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야경 코스다.
- 위치 : 보문로 424-33 / 신평동 150-1
- 조명 점등 : 일몰 후 ~ 23:00 (계절에 따라 다소 조정)
⑨ 봉황대 & 봉황로 문화의 거리

대릉원 북쪽, 조용히 솟아오른 봉황대는 단일 고분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야경과 함께라면 더욱 웅장하게 다가온다. 경사면에 자란 고목들 사이로 비춰지는 조명은 이 고분에 무게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어지는 봉황로 문화의 거리는 루미나리에 스타일의 조명으로 꾸며진 산책로다. 신라 금관, 얼굴무늬 수막새 등 신라 아이콘을 형상화한 다양한 빛 조형물이 길을 따라 펼쳐지며, 고분의 고요한 기운과 도시적 감성이 절묘하게 교차된다.
밤의 대릉원과 황리단길 사이에서 전통과 현대의 빛이 공존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구간이다. 고분과 조명, 골목이 하나로 이어지는 봉황대의 밤은 예상치 못한 감성을 선사한다.
- 위치 : 경주시 노동동 261
- 관람료 : 무료
- 조명 점등 : 일몰 후 ~ 22:00
⑩ 서출지

‘나라를 이롭게 하는 글이 솟은 연못’이라는 뜻의 서출지는 동남산 자락 통일전 옆에 자리한 작은 연못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소지왕과 신비로운 노인의 편지 이야기로도 유명한 이곳은, 전설과 자연이 어우러진 조용한 명소다.
여름이면 연꽃과 배롱나무가 흐드러지고, 밤이 되면 연못 주변을 감싸는 나무와 정자 ‘이요당’에 조명이 은은히 퍼진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이곳은 아는 사람만 찾는 진짜 야경 명소로 손꼽힌다.
소박하고 잔잔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서출지는 가장 조용한 경주의 밤을 선사한다. 가볍게 둘러보며 밤하늘 아래 물빛을 감상하고, 전설을 떠올리며 잠시 머물기 좋은 공간이다.
- 위치 : 경주시 남산1길 17
- 관람료 : 무료
- 조명 점등 : 일몰 후 ~ 22:00
낮보다 눈부신 밤, 경주의 야경은 신라의 과거를 현재로 이어주는 빛의 유산이다. 오늘 하루의 마지막을 가장 고요하고 찬란하게 마무리하고 싶다면, 경주의 밤으로 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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