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 [비장의 무비]

김세윤 2024. 10. 1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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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었다.

처음엔 어색한 사이였지만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살가운 가족이 되어가다가 마침내 죽은 언니와도 화해하는 이야기, 그런 걸 기대하는 사람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다시 보면 된다.

3월에서 9월까지,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반년을 관객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간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 끝내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슬그머니,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볼 마음은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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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국일기〉
감독: 세타 나쓰키
출연: 아라가키 유이, 하야세 이코이

엄마가 죽었다. 아빠도 죽었다. 주차장으로 돌진한 트럭 한 대가 아사(하야세 이코이)를 고아로 만들었다. 장례식에 온 어른들이 수군댔다. 애가 불쌍해서 어쩌나, 다들 혀를 차면서도 자기가 뭘 어쩌겠다는 어른은 없었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아사, 나는··· 네 엄마가 정말로 싫었어. 죽었는데도 여전히 밉다는 게 지긋지긋해. 그래서 널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절대 너를 짓밟지 않아. 돌아갈 곳이 없다면 우리 집으로 와. 오늘 밤뿐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계속 우리 집으로 돌아와.”

말로만 듣던 ‘소설가 이모’ 마키오(아라가키 유이)였다. 언니를 죽을 만큼 싫어해서 연 끊고 살았는데, 아이를 앞에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짜증나 홧김에 아사를 데려와버렸다. 고양이를 사흘만 맡아달라는 친구의 부탁도 거절한 사람이,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같이 살자고 해도 끝까지 싫다던 마키오가, 하루아침에 사춘기 아이와 좁은 집에서 부대끼게 된 것이다.

처음엔 어색한 사이였지만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살가운 가족이 되어가다가 마침내 죽은 언니와도 화해하는 이야기, 그런 걸 기대하는 사람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다시 보면 된다. 이건 〈위국일기(違國日記)〉다. ‘어긋난 나라의 일기.’ 나란히 붙어 있지만 엄연히 다른 역사를 가진 아사와 마키오라는 나라. 가깝고도 먼 두 나라 사이엔 이런 대화가 일상이다.

“난 이모가 엄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감정은 변하잖아.”

“변하지 않아, 절대로. 언니에 대한 내 분노나 숨막힘을 넌 결코 이해하지 못해. 내가 네 초조함이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왜냐하면 너와 나는 별개의 인간이니까. 네 감정도, 내 감정도 자기만의 것이니 서로 알 수 없어.”

또 한번 어긋난 마음을 확인한 뒤 아사는 일기장에 딱 한 단어를 쓴다. ‘덩그러니.’ 그렇게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가 되어버린 아이. 늘 혼자였던 삶에 갑자기 다른 혼자가 끼어들어 당황스러운 어른. 3월에서 9월까지,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반년을 관객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들이 따로 또 같이 써 내려가는 일기가 영화가 끝날 무렵 편지가 되어 내 손 위에 내려앉는다.

그럼 나는 ‘덩그러니’를 지우고 이렇게 고쳐 쓰는 거지. ‘슬그머니.’ 여전히 서로 다른 별개의 인간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슬그머니 어깨동무하고서 TV를 보는 사이 정도는 되었으니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 끝내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슬그머니,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볼 마음은 먹었으니까. 남들 눈엔 쉬워 보여도 그들 삶엔 가장 어려운 한 걸음을 이제 막 내디뎠으니까.

같은 제목의 11권짜리 원작 만화를 〈파크〉의 감독 세타 나쓰키가 슬기롭게 각색했다. 주변 인물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연출이 이야기를 더 촘촘하게 만들었다. 아라가키 유이와 하야세 이코이, 두 배우의 매력 덕분에 내내 생기와 활력이 넘친다. 포옹 없이 악수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 영화. 사람과 사람 사이 ‘가장 아름다운 거리감’을 보여준 〈위국일기〉. 가슴에 넣고 다니면 제법 든든해질 이야기가 또 하나 늘었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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