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칠순에 300만원 보냈는데.." 내 칠순날 돌아온 봉투를 열고 기가 막혔다

사돈은 가깝고도 어려운 관계입니다. 자식을 맺어 준 인연이기에 경조사가 있으면 서로 성의를 다해 챙기는 것이 우리네 도리였습니다.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 준 만큼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사돈 사이의 예의라고들 합니다.올해 일흔 살인 박말순 씨는 2년 전 사돈의 칠순에 300만 원을 보냈습니다. 딸의 시댁에 섭섭하지 않게 하려고 큰마음을 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말순 씨의 칠순날, 사돈이 보내온 봉투를 열어 본 말순 씨는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딸을 위한 300만 원

말순 씨는 평생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며 외동딸 은정이를 키웠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 새벽 경매장에 나가 생선을 떼어 왔습니다. 손등은 늘 비린내가 배어 있었고 겨울이면 손가락이 갈라져 피가 났습니다.딸은 서울로 시집을 갔습니다. 시댁은 서울에서 작은 건물을 가진 넉넉한 집안이었습니다. 말순 씨는 시장에서 생선 파는 친정엄마 때문에 딸이 시댁에서 기죽을까 봐 늘 마음을 졸였습니다.2년 전 딸의 시어머니가 칠순을 맞았습니다. 말순 씨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300만 원을 봉투에 넣었습니다. 생선을 팔아 한 해 동안 모은 돈이었습니다. "사돈 칠순인데 섭섭하게 할 수는 없지." 말순 씨는 딸의 체면을 생각하며 그 봉투를 보냈습니다.딸의 상견례 날, 사돈 부인은 말순 씨의 손을 힐끗 보더니 물었습니다. "사돈은 무슨 일 하세요?" 말순 씨가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한다고 하자 사돈 부인은 "아, 그러세요" 하며 웃었습니다. 그 짧은 웃음이 말순 씨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그날 이후 말순 씨는 사돈 앞에서 늘 손을 무릎 아래로 숨겼습니다.

사돈댁의 칠순 잔치

사돈의 칠순 잔치는 서울의 고급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말순 씨는 시장 일을 하루 쉬고 가장 좋은 한복을 꺼내 입고 올라갔습니다. 호텔 연회장은 화려한 꽃장식과 수많은 하객들로 가득했습니다.말순 씨는 사돈 부부에게 봉투를 건네며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돈 부인은 봉투를 받아 들고 두께를 가늠하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이고, 사돈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말순 씨는 그 미소에 안도했습니다.잔치가 끝난 뒤 딸은 엄마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엄마, 너무 많이 하셨어. 엄마 형편에..." 말순 씨는 딸의 손을 토닥이며 웃었습니다. "괜찮다. 네가 시댁에서 편하면 그걸로 됐다."잔치가 한창일 때 말순 씨는 사돈댁 친척들이 모인 테이블 옆을 지나다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분이 은정이 친정엄마래. 시장에서 생선 판다더라." 말순 씨는 못 들은 척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날 먹은 호텔 음식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내 칠순날

그리고 2년 뒤, 말순 씨가 칠순을 맞았습니다. 딸은 엄마의 칠순만큼은 제대로 챙기고 싶다며 고향 시내의 한정식집을 예약했습니다. 말순 씨는 거창한 잔치는 싫다며 가족끼리만 조촐하게 하자고 했습니다.사돈 부부는 바쁘다며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위가 사돈의 봉투를 대신 들고 왔습니다. 말순 씨는 사돈이 오지 못한 것은 서운했지만, 봉투를 보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습니다.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말순 씨는 사돈의 봉투를 열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10만 원짜리 상품권 한 장과 작은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쪽지에는 사돈 부인의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돈 형편에 맞게 준비했습니다. 건강하세요."딸은 엄마의 칠순상을 차리며 내내 미안해했습니다. "엄마, 시부모님이 못 오셔서 미안해. 다음에 꼭 인사드리러 온대." 말순 씨는 괜찮다며 딸의 등을 두드렸습니다. 오랜만에 딸과 손주들과 둘러앉은 밥상이 그 어떤 호텔 잔치보다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쪽지에 담긴 뜻

말순 씨는 쪽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사돈 형편에 맞게라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습니다. 2년 전 300만 원을 건넸을 때 두께를 가늠하며 짓던 사돈 부인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금액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시장에서 생선 파는 사돈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이 그 쪽지 한 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말순 씨는 생선 비린내가 밴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그날 밤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딸은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말순 씨는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지만 결국 쪽지 이야기를 털어놓고 말았습니다.말순 씨는 상품권을 다시 봉투에 넣으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래, 내가 형편이 이런 걸 어쩌겠나."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손끝이 떨려 왔습니다. 금액보다 그 쪽지에 담긴 시선이 더 아팠습니다. 30년 동안 새벽 바닷바람을 맞으며 지켜 온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딸이 알게 된 시댁의 민낯

딸은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사실 그때 엄마가 보낸 300만 원 있잖아. 어머님이 그 돈 받고 친척들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생선 장사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했나 모르겠다고, 어디서 빌렸나 보다고 웃었어."딸은 그 말을 2년 동안 엄마에게 숨겨 왔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상처받을까 봐, 그리고 시댁과의 관계가 더 나빠질까 봐 혼자 삭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흐느꼈습니다.말순 씨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은정아, 엄마는 괜찮다. 그런데 너는 그 집에서 그런 소리 들으며 2년을 살았구나. 엄마가 미안하다." 모녀는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함께 울었습니다.딸은 그동안 시댁 모임에 갈 때마다 친정 이야기를 피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누가 친정엄마 안부를 물으면 그냥 잘 지내신다고만 했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창피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엄마를 함부로 말하는 게 싫어서 그랬어." 말순 씨는 딸의 그 말에 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말순 씨의 답장

며칠 뒤 말순 씨는 사돈에게 짧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받은 상품권을 그대로 넣어 돌려보냈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돈,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는 평생 생선 팔아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제 형편은 제가 잘 압니다. 다만 우리 딸만큼은 그 집에서 형편으로 판단받지 않기를 바랍니다."편지를 받은 사돈은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사위가 장모를 찾아왔습니다. 사위는 어머니가 실례를 했다며 말순 씨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내가 시댁에서 무시당하지 않도록 자신이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말순 씨는 요즘도 새벽마다 시장에 나가 생선을 팝니다. 손님들에게 생선을 손질해 주며 웃는 얼굴은 여전합니다. 다만 이제는 번 돈의 일부를 자신을 위해 따로 모읍니다. 내년 봄에는 딸과 단둘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입니다.딸도 그 뒤로 달라졌습니다. 시댁 모임에서 누군가 친정 이야기를 물으면 이제는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우리 엄마는 30년 동안 새벽 시장에서 생선 팔아서 저를 키우셨어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에요." 사위도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여 줍니다. 말순 씨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생선 비린내 밴 손을 처음으로 자랑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사돈 사이의 경조사는 금액보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어야 합니다. 말순 씨가 보낸 300만 원에는 딸을 향한 엄마의 정성이 담겨 있었지만, 사돈은 그 마음을 형편으로 재단했습니다.경조사에서 내 형편을 넘는 지출은 상대가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 더 큰 상처로 돌아옵니다. 내 형편에 맞게, 그러나 당당하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품위 있는 예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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