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주차장서 고래고래… 유튜버가 공해 수준
“술다혜를 구속하라!”
문재인 전 대통령 딸 문다혜(41)씨가 지난 5일 음주 운전을 하고 18일 경찰에 출석하기까지 10여 일 동안 서울 용산경찰서 앞은 난장판이었다. 유튜버 10여 명이 문씨 소환 장면을 찍겠다며 경찰서에 난입했기 때문이다. 경찰서 밖으로 나가달라고 요구하는 경찰들에게 유튜버들은 “나 건들지 마, 내 카메라 건들지 마”라고 반(半)협박조로 말했다. 경찰서 여기저기서 “법 갖고 얘기해” “시청자 여러분, 취재 방해하는 경찰 좀 보십시오” 같은 유튜버들의 말이 들렸다. 경찰서 울타리 밖으로 쫓겨난 한 유튜버는 아예 승합차 위로 올라가 카메라를 들었다.
문씨가 경찰에 출석하기까지 10여 일간 용산서 인근 주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시위대를 겸하는 일부 유튜버가 아예 확성기까지 가져와 “문다혜를 구속하라”고 심야까지 외쳐댔기 때문이다. 주민 김모(52)씨는 “문다혜를 외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더라”고 했다. 지난 여름 BTS 슈가의 음주 운전 사태에 이어 문씨 파동까지 이어지자 주민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문씨 음주 운전 소식이 알려진 이후 경찰·구청 등에 소음 민원이 수십 건 접수됐다고 한다.
서울 시내 전역이 ‘공해 유튜버’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튜브로 누구나 1인 방송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취재’를 내세운 유튜버들이 각종 사건·집회 현장 등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이러한 현장에서 방송하는 유튜버들이 후원금이나 광고 수익으로 생활이 가능할 정도가 되자 ‘생계형 유튜버’들이 난립하고 있다. 지난 18일 용산서에서 만난 한 유튜버는 “‘문다혜 음주 운전’ 같은 키워드가 엄청나게 인기를 끌기 때문에 몇 시간만 고생하면 남는 장사”라고 했다.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재판에 출석할 때마다 “오늘 점심도 나가서 먹기는 글렀다”며 한숨을 내쉰다고 한다. 이 대표는 지난해부터 선거법 위반, 대장동 사건, 위증 교사 사건으로 주 1~3회 이곳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 날마다 보수·진보 시위대와 유튜버들이 아예 법원을 포위하고 “이재명 심판” “이재명 무죄”를 외치며 대치한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아예 카메라로 법원 입구를 생중계하는 유튜버들 때문에 판사들은 얼굴이 찍힐까 봐 법원 내부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광화문 일대에선 휴일·주말마다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사랑제일교회·자유통일당 집회가 열린다. 유튜버 수십 명도 몰려와 “문재인·이재명을 구속하라” “한동훈 배신자” 등 구호를 외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도 ‘유튜브 명당’으로 꼽힌다.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 퇴진 등을 주장하는 대학생진보연합이 농성장에 신고되지 않은 이불·침낭을 들여오려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는데, 이 장면조차 유튜버들이 생중계하곤 했다.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 일대도 유튜버들의 주요 활동 무대다. ‘응징 취재’를 내세우며 함정 취재·몰카 촬영·녹취 폭로 등으로 물의를 빚은 매체 서울의소리는 지난 1월부터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 2번 출구 인근을 점거한 채 ‘김건희 여사 구속 촉구’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다.
이들은 폴리스 라인 내부에 스피커와 현수막 등을 설치해 두고, 4~7시간씩 생중계를 이어간다. 현장에는 집회 참가자보다 배치된 경찰 수가 더 많다. 집회 관계자는 최근 유튜브를 방송하며 “210여 일째 서울의소리가 이 농성장을 사수하고 있습니다”라며 “안정적인 농성 진행을 위해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면 극단적 반여(反與) 시청자들이 동조하며 후원금을 주는 식이다. 위안부 집회가 열리는 종로구 주한 일본 대사관, 연예인 규탄 시위가 자주 열리는 성동구 성수동 SM 사옥 일대도 유튜버들이 선호하는 ‘조회수 잘 나오는 곳’이다.
유튜버들이 수익 창출을 위한 각종 현장에서 실시간 방송을 하는 행위를 제재할 수는 없다. 신고된 집회·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로 간주되는데, 유튜버들은 이를 생중계하며 자신들이 ‘보도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현장 경찰들에게 고성·욕설을 하거나 시위대의 흥분을 조장하는 유튜버들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과 시위대·유튜버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면 ‘긴급’ ‘속보’ ‘단독’ 등을 달아 조회 수를 올리는 구조”라며 “유튜버들은 경찰을 ‘조회 수 뽑아먹기 배경 그림’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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