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기소한 검사 한 명이라도 제대로 처벌하면 함부로 하겠나”
아마 검찰이 생긴 이래 가장 다이내믹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 시절 심장부에서 ‘검찰’을 겪었던 한동수 전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을 2024년 2월20일 서울 서초동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기자분들을 만날 때면 제가 왜 취재에 응해야 하나 생각이 들어요. 정보를 가져가시고 취재원만 부담이 가는 구조인 거 같고…. 기자분들은 왜 용기가 없으실까 생각도 들고….”
2019년 10월 취임해 33개월 동안 최전선에서 검찰개혁을 추진했지만, 결국 고립무원 속에서 버티다 부서졌다. 반면 2020년 4월 채널에이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감사했던 한동훈 당시 검사장은 현재 여당 대표가 됐다. 같은 해 11월 판사 사찰 문건 등과 관련해 징계를 주도했던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현재 대통령이다. 검찰은 ‘용검’(정치권력이 이용하는 검찰)에서 ‘정치권력 자체’로 급변했다. 그와 검찰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 특수부 후배들 있으면 올려주고”
―양승태·이재용 1심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정치권으로 가 있는 수사 책임자들은 책임지지 않는 모양새입니다.“(삼성 이재용 불법승계 사건을 수사·기소한) 이복현 검사는 금융감독원장으로 가 있죠. 정의와 공정을 생각하는 분이, 무책임하죠. 기소했으면 유죄를 입증하려 최선을 다해야지. 정말 원칙과 법에 따라 움직이는 건지, 그때그때 자기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건지. 그래서 ‘검찰권의 사유화’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검사는 무죄가 나와도 인사 불이익이 없나요. 검찰 인사는 정성평가로만 이뤄지나요.“사실상 100% 정성평가로 보입니다. 점잖게 표현해서 ‘정성’인데, 자기 특수부 후배들 있으면 올려주고 이런 시스템인 거 같아요. 인사의 공정성 없이…. (수사·기소한) 사건이 무죄가 나면 무죄 평정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인사에는 반영되지 않습니다. 보세요. 언론에 보도되는 모든 사건은 검찰총장에게 보고됩니다. 보고된다는 건 지시한다는 거잖아요. 보완 지시만 하는 게 아니라 전면적인 지시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무죄가 나와서 평정을 해도 총장은 당연히 빠져 있어요.”
―검찰총장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지휘하면 안 되는 건가요.“(형사소송법상 검사는) 단독적인 관청(검사 개인 이름으로 기소·불기소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는 의미)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건 말뿐이에요. 단독 관청에 하이어라키(위계화된 조직구조)를 설정해서 정점에 검찰총장을 두기 때문에 사실상 모순돼요. 결국은 검찰총장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어요. 기록을 제일 많이 보고 그 사건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수사팀 단위잖아요. 여기서 좀 복잡합니다. 그럼 차장검사는 왜 있을까요. 결국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검찰에도) 군대처럼 계급 서열을 만들어서 상명하복 관계를 만들고 총장 하나만 내 사람으로 만들면 일사불란하게 돼서 식민지를 통치하는 수단으로 만드는 구조와 닮았죠. 사실 검찰총장이 기록을 모르잖아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사건에 대해 정책적 판단을 가지고 지시하는 건 바람직한 구조가 아니겠죠.”
감찰본부 설치 규정 하나로 지난하게 싸웠지만
―검찰의 감찰본부는 어떤 곳입니까.“대검 감찰부의 과제는 검찰총장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를 만드는 것, 그리고 감찰 과정과 결과를 공개해서 그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 크게 두 가지라고 봤어요. 일반적인 얘깁니다. 미국도 참여한 유럽연합의 반부패기구인 그레코(GRECO)라는 독립된 기구에도 그런 당연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감찰을 검찰총장 지휘권의 한 영역으로 이해합니다. 감찰 규정도 비공개고요. 이 때문에 국회에서 감사원법과 비슷하게 검찰청법을 개정해보려 했지만 잘 안 됐어요.(감사원법 제2조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해서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윤석열) 총장도 감찰본부장을 참모라고 표현했죠. 그래도 ‘대검찰청 감찰본부 설치 및 운영 규정’이라는 훈령이 있어요. 여기에 ‘감찰본부장은 (고검검사급 이상 검사의 비위 조사는) 감찰 개시 사실과 그 결과만 검찰총장에게 보고한다’고 돼 있어요. 그 규정 하나 가지고 지난한 싸움을 한 거죠.”
―검찰에서 감찰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영국의 검찰감찰청이나 미국의 법무부 감찰관은 독립적으로 수사권을 가지고 감찰해서 과정과 결과를 공개합니다. 국민에게 과정을 정기적으로 리포트 형태로 공개해야 감찰 실효성이 있죠. 우리는 그냥 일정 정도 이상 징계 결과의 요지만 관보에 기재하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인사청문회를 할 때 수사·기소를 분리하면 1964년 ‘1차 인민혁명당 사건’ 때처럼 부당한 기소 지시가 이뤄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식의 논리는 어떻게 개발되는 건가요? “1차 인혁당 사건은 검찰총장이 부당하게 검사의 사건을 정치적으로 직무 이전시킨 직권남용 사건이죠. 총장이 검사의 검찰권을 뺏은 일인데, 수사·기소와 무슨 상관입니까. 검찰 조직이 그런 논리 개발에 아주 익숙합니다. 법 형식주의에 국회도 못 당하잖아요. 논거와 정보를 장악하고 그 기록을 제출하지 않아요. 정보가 비공개됨으로써 (반대쪽) 사람들이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하죠. 협상 등에서 논리가 중요하거든요. 정보 불투명성, 비공개성을 근거로 기득권을 유지합니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것과 같은 거죠. 특수활동비 같은 것만 봐도 비밀유지 수사 때문에 비공개라고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기밀유지가 필요한 경우는 극히 희박하거든요. 그냥 회식비로 쓴 경우가 많아요.”
“사평위, 감찰위는 ‘장식효과’에 불과”
―사건평정위원회(사평위) 등도 있는데, 무죄 등 무리한 기소에 대해 검사는 왜 책임지지 않을까요.“사평위가 있으니까, 대검 감찰위원회가 있으니까, 무슨 무슨 자문단이 있으니까, 마치 뭔가 잘돼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그게 어떻게 구성됐고 어떤 사건을 처리하는지 거기에 무슨 자료가 제공됐는지 공개하지 않아요. 무조건 비공개가 원칙인 조직이잖아요. 그게 바로 ‘장식 효과’입니다. 절차를 합리화하지만 이 위원회들이 공정하게 안 돌아가요.
그런데 무죄 평정은 약간의 보완장치는 될 수 있어도 한계가 많아요. 승진시키고 안 시키고 하는 무죄 평정은 근본적인 게 아니에요. 그사이 (억울하게 기소된) 사람은 죽어요. 기소돼서 재판받는 고통을 아세요?”
―근본적인 처방이 있습니까.“검사들도 아마 혼자라면 부당한 기소를 안 할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나 말고 저 검사도 있어’ 그러면서 내가 하는 걸 합리화할 수 있죠. 쉽게 자기 정당화도 하고 양심에 반한 결정도 할 수 있겠죠. 또 수사한 사람이 기소를 못하면 좋은 보직에 못 가잖아요. 무조건 기소해야 살아남는 구조죠. 그래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하는 거예요. 인지적으로 확증편향(믿고 싶지 않은 건 외면하는 성향)이나 터널비전(눈앞 상황에만 집중해 주변을 파악하지 못하는 현상)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독일 등에서는 수사한 사람이 객관적으로 기소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보고 수사·기소를 분리하죠. 여기에 독립적인 감찰 기능이 들어가 수사·기소 기록을 공개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우성씨 보복기소 사건을 담당한) 안동완 검사를 검찰 내부에선 성실하고 잘하는 검사라고 생각할 겁니다. 잘못된 기소를 한 검사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처벌하면 앞으로 함부로 기소하겠습니까.”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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