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우등 졸업, 미국 항공우주 박사..현대차 사표 내고 개발한 것

사물인터넷 기반 오프라인 데이터 수집, 분석 솔루션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메이즈의 송기선 대표. /더비비드

서울대 우등 졸업, 미국 유학파 출신의 박사, 대기업 책임연구원. 메이즈 송기선 대표(40)는 한국인이 선망하는 타이틀을 죄다 가졌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높은 소득을 누리며 꽃밭을 누빌 법도 한데 미래가 불투명한 미로를 택했다. 미로의 이름은 ‘창업’이다.

자신처럼 미로를 헤매는 이들을 돕고 싶었다. 넘치는 정보를 추려 올바른 길로 향하는 이정표를 제시하면 의미 있겠다 싶었다. 오프라인 공간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솔루션을 구상한 계기다. 송 대표를 만나 미로 탈출법을 들었다.

◇창업가가 되기로 한 박사

미국 유학 시절 모습. (왼쪽부터) 박사 학위 논문 심사를 끝낸 후 촬영한 사진, 조지아 공대 총장과 함께 촬영한 사진. 가운데 인물이 총장, 오른쪽 인물이 송 대표다. /송기선 대표 제공

17년간 항공우주공학을 공부했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지멘스, 토요타 등 유명 기업에서 박사급 엔지니어로 인턴도 했죠.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학술적으로도 많은 성과를 내서 지도 교수가 교수 임용을 고려해보라 권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시기라 귀국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으로 취업했지만 오래 다니진 않았다. 다른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40대가 되기 전에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공부도 적성에 맞았지만,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영원히 공부만 할 것 같았거든요. 앞으로의 20년, 30년은 다른데 에너지를 쏟고 싶었죠. 경험도 쌓고 창업 자금도 모을 겸 현대자동차를 다니다가 결심이 섰을 때 퇴사했습니다.”

◇오프라인 카페 정보 제공 솔루션으로 촐발

처음에는 오프라인 카페 정보 공유 서비스로 출발했다. /더비비드

사명을 ‘메이즈’(maze)라고 지었다. 영어로 미로라는 의미다.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는 게 미로의 특징이잖아요. 결국 돌고 돌아 출구로 향하는 게 우리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미용실에 가도, 맛집을 가도 우리는 기약없이 마냥 기다려야 합니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수시로 물어봐야 하죠.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면. 보다 많은 시간을 아끼면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장소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까.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동네 카페’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상공인들이 장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동네 카페가 우르르 폐업했죠. 위치를 기반으로 특정 카페의 현황, 성비, 방문객들의 성향, 분위기, 인기 메뉴 등의 정보를 파악해 개인의 취향에 맞는 카페를 추천하는 애플리케이션 어메이즈(AMAZE)를 론칭했습니다. 동네 카페 방문 경험을 제고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10번 갈 사람들을 동네 카페로 갈 수 있도록요. 약 30곳의 가맹 카페를 모았습니다.”

◇개인정보 침해하지 않으면서 현장 데이터 수집하는 법

라이브 리뷰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들. /메이즈

카페도 결국 ‘공간’이었다. 무대를 넓혀 공간 전반을 아우르기로 했다. “오프라인 데이터의 활용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빅데이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온라인 데이터에 국한된다는 한계점이 있었어요. 물론 온라인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현장감이 떨어집니다. 예컨대, 카드로 식사비를 결제했을 경우 온라인 데이터로는 카드 번호와 상호명, 금액, 결제시간까지는 알 수 있지만 해당 결제건의 성비와 구체적인 메뉴, 체류 시간 같은 정보는 알 수 없어요.”

오프라인 데이터에 ‘완전한 개인화’의 단서가 있다고 판단했다. “공간의 특징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그 속의 사람들이 규정합니다. 누가 많이 오는 지, 어떤 자리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는지 등의 정보가 해당 공간에 대한 리뷰이자 콘텐츠죠. 이런 행동 정보야말로 양질의 데이터라고 생각했어요. 행동을 기반으로 매출 증대 전략이나 비효율 감소 방안을 짤 수도 있으니까요.”

사물인터넷 기반의 데이터 수집, 분석 솔루션 개발에 들어갔다. “공간 비즈니스가 성장하면서 공간 분석에 대한 수요도 증가 추세입니다. 시중에 CCTV에 녹화한 영상을 분석하는 솔루션은 많습니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법에 걸리고, 즉시성이 떨어진다는 한계점이 있어요. 법규를 준수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했어요. 촬영 영상을 저장하지 않고 매 프레임마다 상황을 추론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을 구상했죠.”

CCTV 의존도를 없애는 게 급선무였다. 단가가 낮은 기기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 “발품을 팔아서 적합한 싱글보드 컴퓨터(SBC)를 확보했습니다. 장비 가격을 최대한 낮춰야 사업성이 나거든요. 소프트웨어 성능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소비자는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요구하니까요.”

◇분야 막론 다양한 기업에서 러브콜

라이브 리뷰 실 적용 사례들. /메이즈

사물인터넷 기반의 오프라인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솔루션 ‘라이브 리뷰’(Live Review)를 론칭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동일인 여부 확인 기술도 개발했다. “작은 장비를 통해 익명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합니다. 개인 신원이 아닌 행동의 특성으로 동일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도 구축했어요. 같은 사람이 다른 날짜, 다른 공간에 나타났을 때 동일 인물로 식별할 수 있죠. 개인정보를 수집할 필요 없이 개인화 마케팅이 가능한 겁니다. 클라이언트의 희망사항에 따라 데이터를 가공할 수 있도록 맞춤형 대시보드도 제공합니다. 데이터 분석 역량이 있는 클라이언트에게는 API 방식으로 솔루션을 납품합니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브랜드가 라이브 리뷰의 문을 두드렸다. “팝업 스토어 기획사, 무인 카페, 팝업 스토어를 진행 중인 대기업, 도서 유통사 등과 협업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식당도 저희를 찾았어요. 메뉴, 이벤트, 인테리어가 같은데도 매장 간 매출이 크게 차이나는 이유를 파악하고 싶었대요. ‘공간’을 아우르는 모든 종류의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이토록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단기간에 쌓을 줄은 몰랐습니다.”

라이브 리뷰로 동일인의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의 행동 패턴도 파악할 수 있다. /메이즈

기업은 라이브 리뷰를 통해 비용은 줄이면서 보다 정확하게 방문자 분석을 할 수 있다. “큰 오프라인 행사를 열 경우 기업은 아르바이트생을 고려해서 방문자 수를 파악합니다. 적잖은 비용이 들죠. 라이브 리뷰를 활용하면 방문객들의 체류시간, 동선, 연령대, 성별, 표정, 사람이 몰린 구역 등의 정보를 훨씬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촬영해서 바로 분석하고,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없죠. 그렇게 팝업스토어 방문객 1만5000명의 분석 데이터를 확보한 클라이언트도 있습니다.”

◇다가올 정보에 답이 있습니다

디데이 참여 당시 모습. /메이즈

창업 초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21년 하남도시공사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2022년 DMC이노베이션 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신용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부 등 다양한 기관의 지원 사업에도 선정됐다. 지난 3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집행하지 않고, 요청이 들어오는 협업 위주로 진행했음에도 2023년 6억원의 매출을 냈다.

올해 500곳 이상의 매장에 솔루션을 설치하는 게 목표다. “최대한 많은 파트너를 만나려 해요. 원하는 데이터가 확실한 클라이언트를 중심으로 모집하고 있어요. 동시에 회사를 지켜줄 장치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3건의 특허를 등록했는데요.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특허를 출원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데이터 수집이 주류가 됐을 때 저희 기술을 우회하고서는 그 기술을 사업화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들고 싶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우등생인 송 대표에게도 창업은 어려웠다고 한다. /더비비드

지나간 정보가 아니라 다가올 정보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내비게이션도, 지하철이나 버스 알림 서비스도 지난 정보를 알려주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도로의 상황, 앞으로 올 대중교통에 대한 정보를 줘야 의사판단에 도움이 되죠. 공간 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겐 그 정보가 절실할 겁니다. 사람들이 수고를 감수하지 않고도 현명하게 의사 판단을 하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요.”

1등만 했던 우등생에게도 창업은 배배 꼬인 미로처럼 어려웠다. 그만큼 성취감은 더 크다. “인생을 창업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울대를 우등으로 졸업했고,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어요. 해외에서도 자력으로 인턴 문을 뚫었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재직했죠. 노력을 투입하면 어느 정도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울타리 속 삶이었어요. 그런데 창업 후 겸손해졌습니다. 그동안 쓴 논문이 40편이 조금 안 되는데 정부 지원사업에서 50번 이상 떨어졌거든요. 지금도 누군가의 지갑을 열기 위해 매일 같이 현장을 누비고 있고요. 월급날이면 피가 마르죠. 그럼에도 팀원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습니다. 이 멤버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