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팔리는 수동 변속기 차는 단지 3대뿐

수동 변속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제 승용 모델 중 공식 판매망으로 접할 수 있는 차량은 단 3대, 모두 스포츠 모델들뿐이다. 출력 순으로 토요타의 후륜구동 쿠페 GR 86과 현대차의 4도어 전륜구동 세단 아반떼 N 그리고 최근 국내 고객들에게 인도를 진행하고 있는 후륜구동 미드십의 로터스 에미라(Emira)로 모두 넘치는 개성을 가진 모델들이다.

국내 시장에서 저조한 수동 변속기 인기로 수동 모델이 있음에도 들여오지 않는 제조사들도 있다. BMW의 고성능 모델 M도 마찬가지. M3는 일본에서 수동 변속기 모델을 판매하지만 국내에는 들이지 않는다. 참고로 M3 수동변속기는 컴페티션이 아닌 노멀 사양이라 출력이 조금 낮다.

포르쉐도 718에서 꾸준히 수동 변속기를 내놓고 있으며 911은 스페셜 모델에서만 수동 변속기를 만날 수 있다. 포드의 스포츠카 머스탱 5.0 GT도 런치 컨트롤을 위한 회전수 설정 기능이 수동 변속기에 맞춰져 있는데 모두 국내에서는 만나볼 수 없다.

공식 판매되는 수동 변속기 모델만으로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은 병행 수입을 통해 비교적 비싼 비용을 치르며 수동 변속기 모델을 손에 넣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마쯔다의 MX5로 멕시코에서 생산된 버전을 국내로 들인다. 토요타가 만든 고성능 해치백 GR 야리스를 찾는 소비자도 있어 일본에서 병행 수입이 이뤄지기도 한다. 또한 수동 변속기를 탑재한 포르쉐 911 GT3 투어링 패키지 및 911 카레라 T 모델이 들어와 자동차에 관심 있는 마니아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어려운 시장 환경에도 국내 출시된 수동 변속기 스포츠카 3대를 가지고 서킷으로 가보자. 이들 중 출고 상태 기준 로터스 에미라(EMIRA)가 가장 빠를 것으로 기대된다. 에미라에는 최고출력 450마력을 발휘하는 3.5리터 슈퍼차저(Superchager) V6 엔진이 탑재되는데 공차중량 1405kg라는 이점이 어우러져 빠른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엔진 출력 대비 가벼운 무게가 장점이 되는 것. 1톤당 출력이 약 320마력 수준으로 수치상으로도 3대 중 가장 월등하다. 또한 출고 타이어로 미쉐린의 최상급 스포츠 타이어인 파일럿 스포츠 컵 2를 선택할 수도 있다.

다음은 아반떼 N이다. 1톤당 출력이 약 189마력으로 GR 86 대비 높은 수치를 가진다. 아반떼 N으로 에미라를 따를 수는 없지만 GR86을 룸미러에 가둬놓는 것은 가능하다. 출고 타이어도 GR 86보다 높은 접지력을 갖춘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S가 장착돼 코너링 한계가 높다. 아반떼 N의 서킷 주행 기록은 GR86을 소폭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서킷 기록은 구동 방식의 영향보다는 최고출력과 공차중량 그리고 타이어의 영향이 가장 크기 때문.

GR 86은 태백 서킷에서 국내 프로 레이스 챔피언 정의철 드라이버가 1분 8초 26이라는 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동일한 서킷에서 토요타 GR 수프라가 1분 3초 77을 기록했는데 수프라의 1톤당 출력은 약 253마력으로 에미라보다 낮다. 당시 수프라에는 미쉐린 파일럿 슈퍼 스포츠 타이어가 장착됐었다. 에미라의 출고 타이어는 파일럿 스포츠 컵 2이므로 1톤당 출력을 비롯해 타이어 접지력도 수프라보다 우위를 점하므로 에미라의 태백 서킷 기록은 1분 초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로 수프라의 후륜 타이어 사이즈는 275/35R19, 에미라는 295/30R20이다.

GR 86의 1톤당 출력은 181마력으로 아반떼 N보다 낮다. 에미라는 서킷 주행이 시작되자마자 아반떼 N과 GR 86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점차 시야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후 GR 86의 시점에서는 아반떼 N이 조금씩 멀어져 간다.

오토뷰 로드테스트 팀이 계측한 0-100km/h 기록은 아반떼 N 5.46초(DCT), GR 86은 7.24초로 1.78초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된다. GR 86의 출고 타이어는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인데 아반떼 N의 4S에는 미치지 못하는 접지력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너비에서 차이가 크다. 여러모로 GR 86에게는 어려운 상황. 랩타임은 아반떼 N보다 약 1~2초가량 뒤처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무대를 일상의 정체구간으로 옮기면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클러치 페달이 가장 무거운 로터스 에미라는 오늘 차를 몰고 도로에 나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반면 아반떼 N과 GR 86은 일상 영역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 클러치 페달의 비교적 가벼운 무게감으로 정체구간에서의 주행이 수월하다. 정교한 스티어링 성능을 갖추고 좋은 조작 감각을 가진 GR86이 여기서 높은 점수를 획득할 가능성이 크다.

고속도로에서의 장거리 주행은 어떨까? 에미라에는 운전자 보조 사양으로 적응형 크루즈 컨트롤이 탑재돼 있다. 하지만 차선 유지 기능은 없이 차선 이탈 경고 기능이 제공된다. 아반떼 N은 적응형 크루즈 컨트롤은 물론 차로 유지 보조 기능을 탑재해 운전자가 보다 여유로운 여정을 즐길 수 있다. GR 86은 어떨까? 아쉽게도 일반 크루즈 컨트롤만 적용된다. 아반떼 N의 승리다.

아반떼 N은 페이스리프트를 포함해 출시가 이뤄진 2022년에 2977대, 2023년 1226대, 2024년 8월까지 724대가 팔리며 총 4827대라는 판매 실적을 냈다. 그렇다면 이 중 수동 모델의 판매량은 얼마나 될까? 승용차 기준 한국과 미국의 수동 변속기 선택 비율은 약 1%대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북미 시장에 아반떼 N 출시할 당시 수동 변속기 선택 비율을 30%로 예상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국내 판매량 숫자에 대입하면 약 1448대 정도가 수동 변속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GR 86은 2022년 82대, 2023년 100대, 2024년 8월까지 320대로 점진적으로 판매량을 올려가고 있다. 출시부터 올해 8월까지 팔린 것은 총 502대다. 로터스 에미라는 GR 86보다 판매량이 높지만 이그조틱(Exotic) 스포츠카로서 도로에 나섰을 때 그 희귀함으로 행인들과 주변 운전자들의 시선을 많이 사로잡을 예정이다.

오토뷰 | 전인호 기자 (epsilonic@autovie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