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문제는 영리화된 의료 시스템이야!
의대 증원 여부를 놓고 한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지금까지 18년 동안 의대 증원이 1명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차 의대 증원의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고, 다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450명 정도를 증원하려 했으나, 의사 집단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되지 못했다.
현 정부에서 애초에 2000명 증원하고자 했으나, 현재 1450명 정도로 축소 조정했고, 의사 집단은 그마저 원천 무효한 다음에야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인구 100명 당 의사 2.4명, 일본은 2.5명…차이는?
의사 수는 어느정도가 적정한 것일까? 의사의 수는 인구에 비례하여 일정 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의료체제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2.4명, 일본은 2.5명이다. 그런데 이 수치만 가지고 의사 수가 충분하다, 부족하다 여부는 말할 수가 없다. 일본은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의사 수 증원을 가지고, 지금 한국처럼, 난리법석을 떨지 않는 것이 그러하다.
일본과 한국의 의사 수치가 객관적으로 보면 비슷한데도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것은 의료제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모든 것을 의사와 병원이 중심이 되는 의료가 아니라, 발병 이전의 예방(치료가 아닌 보건의 개념), 혹은 발병 이후라도 반드시 병원이나 약물 등이 아니라 재택(즉 自家, 혹은 개호介護)의 자연치유를 제도화하고 있다.
그 차이는 건강보험의 혜택을 적용하는 범위와 방법에서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병원과 의사의 손을 통하지 않으면, 개인이 부담하는 건강보험의 혜택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예방의학(혹은 보건)과 재택, 혹은 개호(介護) 치료가 가능하며, 여기에 건강보험 혹은 개호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가 있다. 병원, 의사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치유가 가능하고 또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가 있다.
유럽은 물론이고 동양에서도, OECD 통계에 따르면, 대만이나 일본에는 있는 1차 의료가 한국에는 없다. 1차 의료란, 약물(2차 의료), 수술(3차 의료)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반드시 병원이나 의사의 손을 통하지 않고도 치료하는 의료이다. 이때 의사의 역할이란, 주치의가 병이 있거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견서를 쓰는 정도이고, 그것으로 건강보험(혹은 개호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무상으로 누구나 병원을 무료로 이용하는 의료체제 하에서 영국에서는 1차 의료가 대세이다. 감기에 걸려서 병원을 찾아가도 약을 처방하는 대신, 의사는 이러저러한 자연치유의 방법들을 조언한다. 약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의술의 원칙으로서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는 모든 약을 독약으로 규정하고, 곧 죽을 형편이 아니면 가능한 한 약을 쓰지 말고 식이요법(다이어트)으로 치유하라고 가르쳤다.
기본권으로서 무료로 제공되는 영국의 의료는 당연히 상업자본화 될 수가 없다. 환자는 병원을 무료로 이용하니 의료보험회사 배 불릴 일이 없고, 의사는 국가에서 일정한 보수를 받을 뿐이니 과잉 및 중복진료를 할 필요가 없으며, 약물을 주입하지 않는 1차 의료가 대세를 이루니 병원과 제약회사 간 주고받는 검은 돈(리베이트)의 관행도 끼어들 틈이 없다.
일본의 개호보험
한편, 일본의 개호보험은 2000년에 도입된 것인데, 별개로 운영되는 보험으로 사회보험과 공적 부조방식을 함께 취한 방식(50% 공비, 50% 피보험자의 보험료로 충당)이다. 제1호 피보험자(65세 이상), 제2호 피보험자(40-64세)로 나뉘는데, 제2 피보험자는 노화에 기인하는 질병(특정 질병)으로 인정되면 개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국도 일본을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 명복으로 건강보험의 1/10을 징수한다. 그런데 노인 혹은 노인 질병을 위한 한국과 일본의 보험은 운영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개호 급여, 개호 예방급여, 시정촌(市井村) 특별급여로 구분되고, 개호 급여는 재택, 시설, 지역밀착형 요양서비스로 구분된다. 또 개호 예방급여는 개호 예방서비스, 개호 예방지원으로 구분되고, 방문 개호 등은 지역지원사업으로 실시된다.
한국에는 없는 제도로서, 일본의 개호보험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질병에 이르기 전의 예방의료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 둘째, 반드시 시설을 통하지 않더라도, 재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환자가 병원이나 의사의 손을 거치거나 약물을 주입하지 않고 자연치유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음을 뜻한다. 즉 탈의사, 탈병원(요양원 시설 포함), 탈의료를 뜻하는 것이니, 의료의 개념이 발병 후의 치료가 아니라 발병 전의 예방으로, 즉 치료에서 보건으로 전환됨을 뜻한다.
한국의 건강보험 혹은 장기요양보험에는 예방의료, 즉 병원 아닌 재택의 서비스 개념이 없다. 의사나 병원을 통하지 않고서는 건강보험의 혜택 자체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병원을 가면, 기본적으로 다소간 약물을 주입받게 된다. 이런 의료체제는 환자 중심에서 의사, 병원 중심으로 그 중심(重心)을 바꾸어버리는 주객전도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노인은 병원, 요양원 등 시설을 통하지 않으면 건강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부득이 요양시설에 입소하게 되고, 입소 후의 형편은 요양원의 처치에 일임하는 수밖에 없게 되고, 거기서 발생하는 바, 환자에 대한 비인도적 처사는 대중매체의 보도를 통해 우리도 간간이 알고 있다.
만일 한국도 일본 같이 재택 서비스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서도 개호보험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다면, 구태여 자식들도 거동 불편한 부모를 시설로 보내야 할 필요가 없다. 형편에 따라, 집에서 간호사를 불러 요양하게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병원과 의사가 절대적 권력 행사하는 한국
여기에서 병원과 의사가 행사하는 권력의 정도 또한 한국과 일본 간에는 큰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병원과 의사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한다. 그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개인은 건강보험료를 납입하고도 보험의 혜택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방의료 및 재택 치유가 인정되는 일본에서는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도 대처하는 방식이 한국과 사뭇 달랐다. 한국이 이른바 ‘K(코리아)방역’으로 환자를 병원에 수용하고 그 동선을 쫓느라 난리를 치고, 백신(예방약)을 맞도록 강요할 때, 일본은 자연치유의 방법을 택했다. 백신 또한 주입을 강요하기 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맡겼다.
‘K방역’과 일본의 자연치유는 약물 주입 여부에서 큰 차이가 난다. 백신을 맞도록 강요하는 전자는 전염병의 확산 방지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그 약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염려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코로나에 걸려 죽은 이뿐 아니라, 백신을 주입하고 일정 기간 이내에 죽은 이 또한 적지 않다. 백신 부작용으로 죽은 이는, 정작 코로나로 죽은 것이 아니라, 코로나에 걸리기도 전 약물 부작용으로 죽은 것이므로, 코로나 사망자 수 통계에 잡히지도 않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적어도 사회적인 강요로 인한 백신 주입 이후 죽은 억울한 이는 없다고 하겠다.
한편, 전적으로 환자를 장악한 의사의 경우,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 너머에서는 실적에 따라 달라지는, 건강보험에서 받는 수가(酬價)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안 해도 될 약물도 쓰고 수술도 하는 등, 과잉 및 중복 진료의 발생 가능성 또한 전혀 배제하지 못한다. 의사에게뿐 아니라, 주지하듯이, 환자 측에게까지도 과잉진료에 편승하여 과도한 ‘의료쇼핑’을 부추기게 되는 것이다.
재택 자연치유의 혜택이 제도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불필요한 병원, 약물, 수술을 부추기게 되고, 이런 관행이 건강보험의 재정을 필요 이상으로 갉아먹게 만든다. 또 의사 인력 수급 관련하여서도, 의사를 불필요하게 혹사하고 과중 노동으로 그들을 밀어넣음으로써, 자연히 환자에 대한 의사의 주의 의무를 소홀시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병원과 의사의 손을 통해서만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의사로 하여금 환자 위에 그들을 군림하게 하고, 환자에게 최선이 되는 측면의 치료가 아니라, 가능한 한, 건강보험 수가를 더 받아 수익을 증대시키는 방향의 치료를 권장하게 되는 결과를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환자는 의사의 손아귀에서 돈벌이 도구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된다. 건강보험 수가뿐 아니라, 병원이 제약회사와 맺은 카르텔로 인한 수수료 또한, 필요 이상의 약물을 환자에게 주입할 동기를 야기시킬 경우도 배제할 수가 없다.
한국 의사들은 치료 회수(행위별 수가에 따라 건강보험에서 수가를 받는다. 지난 문재인 정부하에서 ‘문재인케어(치료)’는 비급여 항목(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을 모두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고자 시도했으나, 이 시도는 의사 측 반대로 실패로 끝났다. 의사들이 반대한 이유는 수익 관련한 원인에 있었다. 건강보험에서 일정한 수가를 정해서 정부에서 지불하는 급여 항목의 수가가 기존 수가 대비 60%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발생하는 감소분을 비급여 항목에서 메꾸어야 하는데, 비급여 항목까지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면, 손해액을 메꿀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회자한다. 일정한 수가의 급여 항목과 달리 비급여 항목은 지역 구성원의 빈부 등 자질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재인케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의사 및 병원 측의 수익 추구는 비급여 항목뿐 아니라 급여 항목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의료행위를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도록 하려면,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바꾸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의사 및 병원 중심의 의료체제 구도를 탈피하고, 일본과 같이 재택 치료, 자연치유에도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하도록 제도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겠다. 즉 탈병원, 탈의사, 탈의료를 실천함으로써, 예방의학 측면으로서의 보건, 약물 주입 없는 자연치유 영역을 확장시켜 가야한다는 뜻이다.
치료 회수에 따른 행위별 수가제가 주를 이루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의료보험조합을 통해 진료비 및 처방 의약품을 총액(보수)제로 하며, GDP 10% 정도를 국민의료비로 지출한다. 총액제 혹은 포괄수가제는 병명에 따라 미리 책정된 일정액의 진료비를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제도로, 진료비 과잉을 예방하는 효과를 낳는다. 참고로, 2000년 전후 시기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의료비는 GDP 대비 4.0, 미국은 13.5로 비교된다.
동시에 독일의 의사는 공공병원뿐 아니라 개인 개업의도 봉급에 준하는 보수룰 받는다. 그 이상으로 환자를 받아 수익을 낼 수는 있으나, 그 과잉의 수익은 거의 세금으로 환수되므로 환자를 많이 받을 필요가 없게 된다. 이같이 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독일의 의사들은 과중 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 개업의는 오전에만 진료하고 오후에는 병원 문을 닫고 여가를 즐긴다고 한다. 또 어차피 보수가 일정하므로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도 반발하지 않는다. 일전에는 기천 명의 의사를 증원했으나 독일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연출되는 것 같은 의사들의 저항이라고는 없었다.
의사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나치게 상업화된 의료 구조를 탈피해야
의사 수가 얼마나 필요한가? 증원해야 하나, 마나를 논하기 전에, 먼저 한국 의사와 병원이 가진 지나친 수익 추구, 상업자본 중심의 의료구조를 탈피할 필요가 있다. 탈병원, 탈의사, 탈의료 체제에서는 의사 수에만 목을 맬 필요가 없게 된다.
영국, 프랑스, 그리스 등 유럽 여러나라에서는 (국립) 병원을 무료로 이용한다. 주거, 교육, 의료 등 3가지는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이 국비로, 무료로 운영되는 곳에서는 의료가 돈벌이 수단화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의사는 일정한 봉급을 받는 월급쟁이가 된다. 돈 벌고 싶은 이는 의료계 아닌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 의사의 수익은, OECD 통계에 의하면, 최고 수준에 달하고, 더우기 정년도 없는 바에야, 의사직은 인재들이 선호하여, 최고 수재들이 몰리는 곳이 되었다.
환자 위에 군림하는 한국 의사들은 흔히 책임보험을 넣지 않는다. 종합병원도 마찬가지이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진료한 의사가 자신의 진료가 무과실이라는 점을 입증(무과실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환자에게 의사 측의 과실을 입증(과실입증)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의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자기 자신은 물론 기타 의사의 진료에 대해서도 의견서를 내지 않는다. 의사들이 카르텔을 맺어 헌법에 보장하는 환자의 알 권리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하에 출범한 한국의료조정중재원(의료조정중재원)은 의사 측 입증책임을 면해주는 대신 이에 갈음할 감정서를 발부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이곳은 의료과실에 대한 감정뿐 아니라 조정, 중재를 모두 한 손에 장악하고 있는 국가의 독점기구이다. 유일무이한 1개 감정서를 받아든 환자에게는 물론 그 감정서가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를 비교해볼 기관이란 없다. 이처럼 독점적인 감정서를 발부하는 열악하 곳이라고는 한국밖에 없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그렇지 않다. 전문 지식을 가진 의사들은 누구나 자기 양심과 소신에 따라 감정서를 발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의사들이, 한편으로, 돈이 아까워 의사 책임보험(혹은 공제조합을 운영할 수도 있다)은 들지 않으면서, 오히려, 의료사고로 아우성치는 환자들 때문에 진료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하며, 형사면책특례 입법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뿐 아니다. 목하 전개되고 있듯이, 의사 단체는 의대 증원에 결사코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18년 동안 의사 수를 1명도 늘리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파업을 해 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들이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다며 연민과 양해를 구걸한다. 다른 직업보다 평균 3배 정도 일을 많이 한다는 설이 회자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런 현상 자체가 병리적 현상이다. 의사가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한, 그만큼 환자에 대한 처치는 소홀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도 마찬가지이다. 병원에서 주는 박봉으로, 시키는 대로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 한, 간호사는 절대 환자에 대해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다. 현재 간호사는 개인 개업을 할 수 없고, 병원을 통해서만 환자와 접촉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병원 혹은 의사들이 간호사를 관리한다는 것인데, 이 관리라는 명분은 병원이 박봉으로 간호 인력을 착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간호원을 일괄적으로 병원과 의사들의 관리하에 묶어두는 제도는 간호원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위헌적인 제도이다.
실로 의사가 간호사를 관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무책임한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 등 사람 몸을 상대하는 모든 의료 직역이 과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이들은 저마다 책임보험을 들어야 한다. 의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영국에서는 의사, 간호사 등 온갖 의료 직역인에 대해 국가에서 책임보험을 들어준다.
의료인 책임보험 가입은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동시에, 환자와 의사 간 분쟁을 보험회사를 통해 조정함으로써, 의사가 진료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런 영국의 의료제도는, 오히려 책임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채, 되레 의사 형사면책특레 입법을 요구하는 한국의 (종합)병원 및 의사 들과 비교할 때 천양지차가 있다.
흔히 미국은 자유주의에 입각한 의료제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유럽식의 사회주의(병원 무료 이용), 혹은 한국식의 사회국가주의(국가에서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제도 운영)와 달리, 사보험이 주축을 이룬다. 사보험은 보험의 보장 정도에 따라 5개 종류가 있으며, 각자의 형편에 따라 알맞은 보장을 자유로 선택한다. 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사보험으로 운영되는 체제에서는 의사의 과잉진료 관행이 개재할 기회는 많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미국에서는 노인(케디케어), 극빈자 및 장애인(메디케이드), 어린이 등은 경상진료 등에서 병원을 무료로 이용하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다. 현재 미국에서 시행되는 오바마케어로 인해 보험미가입자가 전체 인구 1/6(4500만 정도)에서 2400만 정도로 줄었다. 이들 보험미가입자는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나, 그런 측면은 한국에서도 없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없는 비급여 항목에서는 빈자는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경우에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료는 자유주의라고 해도 유럽의 사회주의 의료체제와 유사한 요소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노인, 극빈자 및 장애인, 어린이에게 무료로 병원을 이용하도록 하는 점이다. 뿐 아니라, 미국은 각 주(State)에서 독립적으로 의료정책을 수립하므로, 그 방향이 서로 다르다. 영국에서도 행정구역과 별도로 전국을 몇 개의 의료지역으로 구분하고, 지역구마다 독립적인 의료정책을 수립 시행한다. 의사 수나 필수 의료 등 필요한 분야는 지역에서 고유한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할 수가 있다. 이 같은 의료의 지역화는 전국에서 획일적인 의료정책을 강요함으로써 질곡을 더하는 한국의 실정과는 차이가 있다.
의술은 환자에 대한 주의 의무를 요한다. 주의 의무는 의술의 생명이다. 인술(仁術)로서의 의술은 과학이 아니다. 사람마다 몸의 구성이 다 같지 않기 때문에, 같은 약이 누구에게서나 같은 작용을 낳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환자 개개인을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인술이란, 환자가 많아 바빠서 ‘3분 진료’로 끝내며, 의사가 과중한 노동에 시달릴 때, 가능한 한 많은 환자를 받아 행위별 수가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할 때 실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연재는 공공선 거버넌스(원장 강치원)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편집자)
[최자영 한국외국어대 겸임교수, 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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