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매출로 월세 냈죠"...데뷔 전 판매왕으로 잘 나갔던 스타들은 누구?

보험, 자동차, 화장품 등 각 분야의 판매왕들이 말하는 세일즈의 비법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바로 '고객관리' 바로 '사람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객에게 신뢰를 얻고 마음을 흔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면에서 세일즈의 비법과 연예인들의 인기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도 한데요. 그래서일까요?  지금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타들이 데뷔 전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판매왕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니 흥미롭습니다.

여대 스키동호회 600벌 단체주문까지
월급 700만 원 스키복 판매왕 김명민

연기본좌로 불리는 배우 김명민의 판매왕 이력은 다소 특이합니다. 판매 분야 가운데도 어렵기도 유명한 스키복 판매를 맡은 것인데요. 겨울철 특수상품인데다 대중적인 상품이 아니어서 고객을 확보하는 것부터가 어려웠지요. 하지만 김명민의 사업수완은 남달랐습니다. 이태원의 한 스키용품 매장에서 알바생으로 일을 시작한 김명민은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은 물론 상명여대, 성신여대 등 인근 여대 스키동호회에 직접 찾아가 일종의 '방문판매'까지 시도했는데요.

적극적인 고객유치 결과 김명민은 한 시즌에만 총 5곳의 스키동호회와 거래를 성사시켜 600벌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덕분에 당시 기본급이 60만 원이었던 김명민의 월급은 인센티브를 포함해 700만 원까지 올랐지요. 다만 다소 과감한 판매방식 때문에 경찰서에 간 경험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날도 이태원을 길에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따라붙어 "스키복 장만하세요"라며 호객행위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 행인은 사복을 입고 퇴근하는 파출소장이었고 김명민은 그 자리에서 경찰서로 끌려간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스키복 판매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김명민은 이후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는데요. 당시 김명민이 일하던 매장의 사장님이 동업까지 제안할 정도였다고 하니 경찰서에 가는 일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사장님이 되었을까요? 김명민의 명품연기를 볼 수 있게 해준 파출소장님께 감사해야겠네요.

연습생 탈락하고 IPTV 팔았다
월 500 벌었지만 불행했다는 초아

방송활동을 중단해 아쉬움을 주고 있는 AOA의 전 멤버 초아 역시 데뷔 전 판매왕으로 유명합니다. 20살이던 당시 초아는 연습생에서 탈락한 후 가수의 꿈을 지켜가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초아가 경험한 다양한 아르바이트 가운데 IPTV 묶음상품 판촉 일을 할 당시 실적이 좋아서 해당 지역의 판매왕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초아는 한 예능에 출연해 "중부영업팀에서 판매 1위를 했다"라고 전했는데요. 실적이 좋았던 비결에 대해서는 "고객이 두 시간 동안 물어보면 두 시간 동안 친절하게 설명해드렸다"라며 성실한 방식으로 영업했다고 밝혔습니다. 덕분에 초아는 한 달에 500만 원을 벌었고 1년 동안 생활비를 쓰고도 2천만 원을 모을 수 있었지요.

다만 초아는 당시에 대해 "돈을 많이 벌었지만 돈을 많이 번다고 행복한 게 아니었다"라고 전했는데요. 돈보다는 가수의 꿈을 소망했던 스무 살 초아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부분이지요. 하지만 간절히 바랐던 가수가 되었음에도 초아는 행복을 찾지 못한 모습인데요. AOA를 탈퇴하면서 초아는 "불면증과 우울증을 치료하고자 2년 전부터 스케줄을 줄였다"라며 "불면증과 우울증을 치료하고자 약도 먹어보고 스케줄을 줄여왔지만 피곤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모든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라고 전했습니다.

꽃보다 남자 촬영하면서도
찜질방 매점 운영했다는 이시영

배우 이시영 역시 데뷔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과정에서 특별한 이력을 쌓은 배우인데요. 당시 이시영은 배우를 준비했지만 잘되지 않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엔 나이가 많았던 탓에 자연스럽게 자영업에 도전했습니다.

이시영이 도전한 사업은 다름 아닌 찜질방 매점운영. 원래는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려고 시작했지만 당시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신 바람에 이시영 혼자 꾸려가야 했지요. 간식거리부터 속옷과 생활용품까지 매점에서 판매한 품목은 매우 다양했는데요. 특히 이시영은 동덕여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원단회사에서 일하던 경험을 살려 남대문시장에서 직접 물건을 사입해 판매할 정도로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고, 덕분에 매출은 매우 높았습니다.

다만 여탕 내부에 있는 매점의 특성상 CCTV 설치가 불가해 도둑과 실랑이를 벌이는 날이 많았는데요. 현장에서 범인을 잡아도 도둑이 물건을 버리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거나 심지어 때리는 경우까지 있어서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네요. 이후 드라마 '꽃보다남자'에 캐스팅된 이시영은 촬영을 하면서도 한동안 매점 운영을 병행하다가 배우로 자리 잡은 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월세벌고 1년 만 아파트 마련

하루에 월세벌고 1년 만 아파트 마련
여대 앞 꽃미남 분식집 윤상현

데뷔 전 자영업으로 대박을 친 또 한 명의 스타는 바로 배우 윤상현입니다. 생활력이 강한 편이라는 윤상현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고 25층 고층 아파트에 페인트칠을 하며 번 돈을 모아 20대 후반에 분식집을 내게 되었는데요. 경인여대 근처에 가게를 오픈한 윤상현은 여대 인근이라는 점을 고려해 서빙하는 직원을 모두 꽃미남들로 뽑았지요.

윤상현의 전략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당시 27살이던 윤상현은 '한국의 기무라 다쿠야'라는 별칭에 걸맞은 꽃미모 그 자체였고 사장부터 직원까지 꽃미남이 가득한 가게에 여대생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요. 윤상현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윤상현이 운영한 분식집의 음식 맛은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스스로 맛보기에도 맛이 없는 볶음밥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여대생 손님들은 맛있게 잘 먹더라는 것입니다.

음식 수준은 다소 부족했을지 몰라도 윤상현 분식집의 서비스 수준만큼은 최고 수준이었는데요. 꽃미남 사장 윤상현이 직접 테이블마다 가서 대화를 나누고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고 하네요. 단골손님의 생일날에는 직접 케이크를 사서 축하해주기도 했다고 하니 가게는 팬미팅 못지않은 열기였을 듯합니다. 덕분에 분식집은 늘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고 테이블이 6개밖에 되지 않았던 탓에 관상용으로 마련해 놓은 테라스에도 손님들이 들어차 도로변의 먼지를 마시며 음식을 먹는 손님도 있을 정도였지요.

정확한 상권 분석과 판매 전략, 무엇보다 타고난 꽃미모 덕분에 소위 대박을 친 윤상현은 테이블 6개짜리 분식집 운영으로 하루 매출만 30~40만 원을 꾸준히 벌었는데요. 이는 당시 윤상현이 살던 집의 월세를 낼 정도였고, 해당 분식집을 운영한지 단 1년 만에 윤상현은 아파트를 마련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다만 이후 우연히 온라인 음악동호회에 올린 사진을 보고 연예기획사에서 연락해오면서 윤상현은 뒤늦게 연예계에 입문했는데요. 경인여대 학생들의 동네스타에서 대한민국 진짜 스타가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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