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의 요가 스승, 한주훈 선생님께 배운 요가와 글쓰기의 길

이효리가 찾은 스승, 내가 만난 요가

한주훈 요가원, 이효리의 스승님으로 알려진 분이며 제주시 아라동에 '한주훈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의 요가 강사들이 몰려들지만 실제로는 매우 소박한 곳이다

가수 이효리가 서울 연희동에 요가원을 열었다는 소식이 SNS를 타고 빠르게 전파됐고, 수업 티켓팅은 초광속 매진이었다. 그의 스승은 바로 제주도에서 하타요가를 가르치는 한주훈 선생님으로 알려져있다. 이미 요가인들 사이에서 한주훈 선생님은 전설같은 존재였다.

5년 전 제주 여행에서 꼭 가보리라 마음 먹었던 곳은 바로 ‘한주훈 요가원’이었다. 무림의 고수같은 한주훈 선생님의 명성은 익히 알려져 있었기에 나도 언젠가 수련의 깊이가 깊어지면 꼭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다’라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아침 수련을 참가하게 되었다.

한주훈 요가원에서,침묵 같은 문장들

제주의 여행길 끝자락, 요가원 근처 숙소를 구했다. 대동호텔의 창가에 앉아 커튼을 걷어냈다. 짙은 구름 사이로 아침 햇살이 천천히 땅을 쓰다듬고 있었다. 요가매트도 필요 없고, 별도 예약도 없는 수업. 아침 9시,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미 공간은 사람들로 차오르고 있었다. 말없이 줄지어 앉은 사람들. 누구도 눈에 띄게 꾸미지 않았고, 누구도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다만 묵묵히, 마치 예불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고요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옆자리 사람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더니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이곳이 요가 스튜디오가 아니라 하나의 ‘수행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업은 결가부좌로 시작되었다. 다리를 포개고 앉는 그 자세 하나로부터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고요한 시간 속에서 자세는 점점 의식이 되었고, 의식은 다시 몸의 세밀한 떨림으로 돌아왔다. “움직이지 말고, 그 안에 머물러 보자!” 선생님의 낮은 구령이 공간에 울렸다. 가만히, 침묵 속에서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땀이 맺히고 이마가 조여왔다. 하지만 그 견딤 끝에서 문득 느껴졌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진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한주훈 선생님의 수업은 동작을 완성하는 요가 그 이상이다. 때로는 유쾌한 농담처럼 흘러나오는 철학적 단상, 때로는 수행 체험담 같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어릴 때 인도 길가에서 요가 동작을 하고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모자에 동전을 던져주곤 했지. 그걸로 하루하루 살았어.”
웃음이 터질 법한 이야기에 누구도 크게 웃지 않았다. 모두가 그의 말에서 한 가닥 수행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는 듯했다.

엎드려서 가슴을 들어올리는 코브라 자세를 유지하던 시간은, 말 그대로 견딤이었다. 허리는 타들어가고, 어깨는 굳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자세를 유지하고 나서 전굴 자세를 취하니, 몸이 전보다 더 깊숙이 접혔다. 마치 오랜 굳은살이 스르르 녹아내린 것처럼. 몸이 하는 만큼 마음도 따라 내려앉았다. 요가는 단순한 유연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내면의 태도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요가는 매일의 정직함이고, 글쓰기는 그 흔적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수련생이 현역 요가 강사처럼 보였다. 이름도 어렵고 몸도 고된 ‘에카파다 시르사아사나’ 같은 동작들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이들. 나는 고관절이 열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고, 다리를 조금만 올려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흘끔거리지 않았다. 모두가 각자의 호흡 속에서 수련하고 있었고, 이방인 같은 나조차 그 진지한 수행의 원 속에 조용히 포함되어 있었다.

2시간이 넘는 수업 동안, 휴대폰 소리 하나 울리지 않았고, 누군가 흐트러지는 기척조차 없었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다들 묵묵히 몸을 움직였다. 가르침은 단순했다. “한 걸음씩, 매일 정직하게.” 화려한 포즈나 과시적인 표현 대신, 수련의 깊이는 정직함으로 측정되었다. 요가의 신이 정말 있다면, 그런 꾸준함을 사랑할 것이다.

두 시간의 수련을 마치면, 한주훈 선생님이 직접 보이차를 내려 주신다. 차를 마시는 것도 수련의 일부

제주에서 시작된 고요한 수련

사바아사나(송장자세) 대신 아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옆으로 누웠다. 공간이 좁아서였는지도 모르지만, 그 자세는 이상하게 따스했다. 오래도록 잊고 지낸 어머니의 품을 떠올리게 했다. 마음 한 자락이 부드럽게 풀렸다. 요가원 수업이 끝나고 근처 국수집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조용히,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헤어졌다. 그 어떤 설명도, 인증샷도 없이. 그 조용한 해산 속에서, 나는 참된 ‘배움’이란 것이 얼마나 조용히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인생에서 가장 깊은 울림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배울 때 비로소 온다. 요가란 결국,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몸과 마음을 향한 작지만 꾸준한 걸음일 것이다. 이 체험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제주에서 가장 잘한 일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 요가원이었으리라는 것.

글쓰기와 요가, 몸으로 쓰는 문장



그날의 요가는 생각보다 훨씬 고요하고 격렬했다. 자세 하나에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했고, 그 침묵 안에서 몸의 떨림과 마음의 동요를 온전히 마주해야 했다. 몸이 한 자세에 머물 때마다, 내면의 무수한 언어들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힘든가', '지금 포기해도 될까', '이 자세는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모든 질문은 결국 글쓰기를 할 때 내가 마주하는 질문들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글쓰기와 같다. 글을 쓸 때면 문장을 쓰다가 멈추고, 문장을 고치고 또 지우기를 반복한다.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마음 안에서는 미세한 떨림과 진동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문장은 전굴처럼 나를 안으로 접게 만들고, 어떤 문장은 코브라 자세처럼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든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웅크리고 싶은 사바아사나의 순간이 오기도 한다.

요가는 내게 글을 쓰는 새로운 방식을 가르쳐주었다. 더디고 정직하게, 매일 한 걸음씩. 한주훈 선생님의 말처럼, "요가는 누가 잘하는지가 아니라, 누가 오래 하는가"에 관한 것이고, 글쓰기 또한 그러하다. 요란한 표현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관찰과 진실된 감각이다. 요가에서 호흡을 따라가듯, 글쓰기에서도 언어의 호흡을 따라가야 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 침묵과 여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요가를 하고 난 아침에는, 글도 조금 더 맑아진다. 몸을 움직인 만큼 마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가벼워질수록 단어 하나에도 숨결이 실린다. 마치 아침의 숨결처럼, 조용하고 투명한 문장이 피어난다. 때로는 쓸 말이 없을 때, 매트를 펴고 자세 하나에 집중하면,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문장이 안에서 걸어 나올 때도 있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나의 부분 부분을 더듬어 가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를 인정하고 바라보는 일. 요가 또한 그렇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의 동작, 지금 가능한 만큼의 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정직함과 직면이 글쓰기를 깊게 만든다.

요가와 글쓰기는 나를 훈련시키는 두 개의 방식이다. 하나는 몸을 통해 마음에 다가가고, 다른 하나는 마음을 통해 몸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둘은 겹쳐진다. 요가를 하며 떠오른 하나의 감정이 문장으로 피어나고, 글을 쓰며 움켜쥔 한 문장이 다시 매트 위에서 풀어진다. 요가와 글쓰기는 모두 나라는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도구다.

하나는 몸으로 쓰는 시, 다른 하나는 마음으로 하는 절이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좋아서 시작한 인터뷰로 인해 '사람'이라는 자산을 얻었다. 최근 『글쓰기로 먹고살 수 있나요』를 출간하였고, 실제로 28년째 글쓰기와 관련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

또한 타로상담과 책이 있는 명상 공간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blog.naver.com/sora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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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해당 글의 저작권은 '세상의 모든 문화'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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