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가 미래"... 명품을 일상으로 만드는 이종현 트렌비 대표 [人더스트리]
명품 거래 플랫폼 트렌비는 명품이라는 카테고리의 고유한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소비층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가 꺼낸 자구책이 중고거래다. 명품 수요 안에서 선순환을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목적이다. 사업 기반을 다지고 나면 이후 더욱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고객의 연령대를 10~20대까지로도 넓힐 수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트렌비 오피스에서 만난 이종현(39) 대표는 이 사업이 명품 플랫폼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중고사업의 성장세는 그의 믿음을 뒷받침한다. 이 대표는 “사업을 본격 육성한 지난해 초만 해도 중고상품 거래액 비중은 10%대였으나 현재 30%까지 올라왔다”며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4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말이면 중고사업의 거래액과 수익이 전체의 절반 이상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렌비에 따르면 새 상품의 주구매층은 40대지만 중고상품은 30대다. 주목할 점은 중고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게 또 20대라는 것. 트렌비 안에서 MZ세대의 유입으로 구색이 풍부해지면 다시 30~40대의 구매확대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 대표는 “중고거래는 새 상품 대비 가격이 저렴해 젊은 층을 유인할 수 있다”며 “중고사업에 집중하는 것은 그들이 중고거래에 익숙하다는 점도 한몫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매를 결정할 때 ‘그냥 샤넬백을 사야겠다’가 아니라 ‘구찌백을 팔고 사야지’라는 마인드를 공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새 상품 시장이 성숙할수록 중고 시장으로 유입되는 물량도 덩달아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서 중고명품 시장은 전체의 15~20%를 차지하지만, 한국은 아직 8% 수준에 그친다. 2~3배 차이만큼 성장 가능성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장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선구자로서 입지를 다지기에도 유리하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 명품 시장의 성숙도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며 “1인당 명품 소비액은 전 세계 1위”라고 말했다. 또 “그들이 구매한 물량이 중고 시장으로 유입될 시기”라며 “아직 국내 시장에 의미 있는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에 경쟁이 덜 치열하다”고 덧붙였다.
트렌비는 중고사업을 지탱하기 위해 올해 초 오프라인 진출을 결심했다. 입점 업체가 가진 기존 매장을 활용해 ‘리모트(원격) 소싱’하는 방식이다. 지난 3월 본격 오픈한 뒤 6월까지 중고매입위탁센터를 31개로 늘렸다. 일반적인 매장과 다르게 고정비 투자가 발생하지 않고 파트너십 기반으로 빠른 확장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6월에는 세탁전문 기업 크린토피아와 협업도 시작했다. 고객이 중고상품을 크린토피아 매장에서 트렌비에 판매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고거래의 생명은 ‘신뢰’다. 값비싼 명품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트렌비가 인공지능(AI) 감정평가사 ‘클로이’를 도입한 배경이다. 지난해 말 선보인 클로이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세를 책정한다. 사람과 달리 즉각적이고 객관적인 피드백이 장점이다. 공격적인 오프라인센터 확장도 클로이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 대표는 “가격 책정이 빠를수록 고객의 상품위탁 비중이 달라진다”며 “오프라인 파트너사들에 클로이를 제공하고 파트너사들은 손쉽게 가격을 책정해 고객 상담이나 매입, 위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트렌비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올해 6월 IMM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등의 투자사들로부터 시리즈E 투자를 유치하며 동력을 얻었다. 이 대표는 본질에 집중하려 한다. 트렌비를 좋은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이 과정을 즐기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그는 “조직원 모두가 최선을 다해 함께 즐겁게 일하고 결과를 만든 다음, 지금을 ‘아 정말 재밌었지‘라고 회상하고 싶다“며 “트렌비를 좋은 회사로 만들고 턴어라운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