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車 보더니 “너, 성공했니”…흑백요리사 뺨친 색다른 ‘계급전쟁’ [세상만車]
흑수저 설움딛고 ‘車생역전’
검다고 모두 똑같은 건 아냐
흑수저는 흙수저, 백수저는 금수저라는 뜻도 은밀히 담고 있습니다. 모두 내로라하는 실력을 가진 흑수저와 백수저의 대결이지만 ‘흰색’ 위용 때문이지 흑수저보다는 백수저가 우월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반면 산전수전 다 겪고 재야의 고수가 된 흑수저가 백수저를 이겼을 때는 짜릿합니다. 흑수저에게 빙의가 돼 같이 인생역전한 것 같은 카타르시스도 맛봅니다.
흑수저처럼 흑(검정)은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치르면서 ‘극과 극’ 평가를 받고 있는 색상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색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장 원하는 색상이기도 합니다.
검정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음식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음식에서는 금기처럼 여겨지는 색상이기 때문이죠.
부패와 쓴맛을 상징하기에 입맛을 잃게 만듭니다. 음식이 썩으면 검게 변할 때가 많습니다.
검정 곰팡이가 핀 음식은 먹지 말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숯불에 검게 타거나 그을린 고기에서도 쓴맛이 납니다.
자장면, 먹물 파스타, 블랙커피처럼 검정 음식도 있고 건강에 좋은 ‘블랙 푸드’ 열풍이 불기도 했지만 이례적일 뿐입니다.
색채 심리학에서도 검정은 죽음, 암흑, 공포, 무거움, 두려움 등을 상징합니다. 부정적입니다.
오감 중 후각이나 청각보다 시각에 더 의존했기에 어둠과 상한 음식에 약했던 인류의 두려움이 유전된 영향일 수 있겠죠.
모든 빛의 스펙트럼을 흡수하는 컬러가 검정이고 색을 모두 섞다보면 궁극에는 검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음식에서는 금기로 여겨지지만 패션·인테리어·자동차 분야에서는 품격을 높여주는 색채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요즘도 패션 분야에서 고급 소재를 사용한 한정판 제품은 ‘블랙라벨’로 부릅니다.
원래는 옷에 부착된 검정 라벨을 뜻했지만 요즘은 소량 생산으로 희소성을 높이고 브랜드 가치도 뛰어나 소수 VIP고객에만 제공하는 명품을 의미합니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안정성, 강직함, 무게감, 중후함, 품격, 권위 등 이미지를 표현할 때 검은색을 사용합니다.
1886년 세계 최초 자동차로 특허를 받은 삼륜차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독일에서 첫 선을 보인 뒤 20세기 초반까지는 자동차에 색을 입히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움보다 잘 달리게 만드는 기능에 관심이 높아서죠. 1900년대 자동차를 보면 철판, 나무, 가죽, 고무 등이 가진 원래 색상이 그대로 차체 컬러를 형성했습니다.
생산대수가 많지 않은데다 수작업으로 차를 만들었기 때문에 구매자가 원하는 색으로 칠해줬습니다.
자동차에 ‘컬러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계기는 대량생산(포디즘)과 관련 있습니다. 대량생산은 ‘검정 대세’를 이끌었습니다.
‘자동차 왕’ 미국의 헨리 포드는 1913년 포드 모델T를 대량생산하면서 금속으로 된 차체 부식을 막고 거칠고 투박한 차체 표면을 가리려는 목적으로 ‘색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선택은 검은색이었습니다. 구하기도 쉽고 가장 빨리 말라 작업하기도 편했기 때문이죠. 도장 기술이 부족한 시절 생산단가를 낮추고 생산대수를 늘릴 수 있는 최적의 색상이었던 셈입니다.
검은색 모델T는 곧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경쟁 브랜드인 쉐보레가 1924년부터 7가지 외관 색상을 내놓으면서 검은색에 식상해진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1930년에는 캐딜락 라살에 투톤 컬러가 처음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색다른’ 도전에도 검은색은 존재감을 유지했습니다. 여전히 대세는 검은색이었죠. 도장 기술이 부족했던 당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색상 다변화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비싼 제품인 차에는 권위, 안정, 무게, 중후 등의 이미지를 지닌 검은색 계열이 어울린다는 인식도 한몫했습니다.
원색은 물론 분홍색 금색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도 영향을 줘 영화 ‘핑크 캐딜락’과 ‘황색의 롤스로이스’ 등이 제작됐습니다.
컬러 혁명에 자극받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출신지에 따라 선호하는 색상을 차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색은 시각적 이미지를 대표합니다. 이미지는 사람을 감성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지녔습니다.
사람의 감성과 감정은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선호하는 색이 다른 이유입니다. 각국의 자동차 회사들도 국가와 브랜드를 대표하는 색상을 선보였습니다.
은색은 차가우면서 에지(edge)를 살려주는 효과도 지녀 고성능 차에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은색은 원래 차체 재료인 은빛 알루미늄 색상에서 유래했습니다.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 벤츠 레이싱카가 무게 규정을 맞추기 위해 페인트까지 모두 벗겨낸 뒤 출전했고 우승했습니다. 이후 은빛 화살처럼 질주하는 벤츠 레이싱카를 ‘실버 애로우’라 부르기도 했죠.
프랑스 자동차 회사들은 냉정하고 평온한 이미지를 지닌 파란색을 레이싱카에 즐겨 사용합니다. ‘프렌치 블루’입니다. 파란색은 ‘삼색기’ 프랑스 국기에도 들어간 색상으로 ‘자유’를 뜻합니다.
포드처럼 미국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들은 검은색을 선호했습니다. 포드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링컨과 캐딜락이 대표적이죠.
캐딜락은 1940년대부터 검은색을 대표 색상으로 사용했습니다. 권위적이면서도 육중한 이미지를 강화하고 차체 볼륨감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타는 ‘캐딜락 원’도 검은색으로 권위를 자랑합니다.
미국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색상은 하얀 바탕에 파란색 줄을 넣은 아메리칸 스트라이프입니다. 미국 스포츠카의 자존심이자 머슬카의 대명사인 포드 머스탱에 적용됩니다.
‘빨강 스포츠카’의 전설은 이탈리아 출신인 페라리입니다. 페라리는 고성능 이미지를 제공하는 ‘이탈리안 레드’로 정열을 발산합니다.
이탈리안 레드에는 ‘고대 로마 황제’를 상징하는 보라색이 들어있습니다. 빨간색에 보라색을 더하면 차가우면서 세련된 멋을 내뿜는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70년 전보다 위상은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흑백요리사에 앞서 먼저 ‘흑백 전쟁’을 치루고 있기도 합니다.
글로벌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 기업인 엑솔타(AXALTA) 코팅시스템즈에서 단독 입수한 ‘2023년 글로벌 자동차 컬러 인기도 리포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엑솔타는 1953년부터 매년 이 리포트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색상 분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데다 신뢰성도 높다고 평가받습니다. 자동차 업계가 컬러 정책을 결정할 때도 활용합니다.
흰색은 지난 2011년 이후 10년 넘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2022년 이후 점유율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35%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에는 34%로 1%포인트 감소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3%포인트 떨어졌습니다.
2위는 회색으로 집계됐습니다. 회색 점유율은 2021년과 2022년 각각 19%를 기록하다 지난해에는 3%포인트 증가한 22%를 기록했습니다.
3위는 점유율이 18%인 검은색입니다. 전년에는 22%로 2위를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3%포인트 하락하면서 순위도 밀렸습니다.
4위는 은색으로 점유율은 10%였습니다. 전년보다 2%포인트 줄었지만 순위 변동은 없었습니다.
흰색, 회색, 검은색, 은색은 모두 무채색에 해당합니다.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져 만든 이들 색상의 점유율은 총 81%에 달했습니다. ‘흑백 전성시대’인 셈이죠.
한국도 글로벌 컬러 트렌드와 비슷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흰색이 33%로 가장 인기가 높았지만 점유율은 전년보다 1%포인트 하락했습니다.
2위인 회색의 점유율은 전년보다 1%포인트 증가한 25%를 기록했습니다. 3위 검은색의 점유율은 16%로 변함이 없었습니다.
흰색에 밀리긴 했지만 존재감은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흰색을 검게 물들인 근묵자흑(近墨者黑) 회색까지 포함하면 검은색의 위세는 더 커집니다.
검은색 그 자체로도 ‘자동차 컬러의 제왕’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명차 브랜드들이 가장 고급스러운 에디션을 내놓을 때 검은색을 적용하는 것만 봐도 그 위세를 알 수 있습니다.
검은색은 명암 대비를 극대화해 차체를 화려하게 만드는 효과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검게 칠한다고 모두 품격과 권위를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력 부족으로 색감 표현력이 떨어진 ‘블랙’은 오히려 차체를 어둡고 음침하게 보이게 만듭니다.
그만큼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검다고 다 똑같이 검은 것’이 아니라 블랙마다 차이가 있고, 블랙에도 명품이 존재하기에 명차 브랜드의 전유물처럼 됐습니다.
롤스로이스, 벤틀리, 벤츠, 포르쉐, 마세라티, 볼보 등도 차이가 나는 검은색으로 품격을 더 강조한 블랙 에디션을 선보입니다.
대중적인 브랜드들도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싶을 때 품격을 강조한 올블랙 에디션을 내놓습니다. 최근에는 혼다가 파일럿 블랙 에디션을 선보였습니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위상이 높아진 제네시스도 동참했습니다. ‘럭셔리의 정점’ G90·GV80 블랙에디션을 출시했습니다.
아빠차 색상으로도 흰색과 쌍벽을 이룹니다. 현대차에 따르면 그랜저 캘리그래피 구매자 중 39%는 화이트 펄, 37%는 어비스 블랙 펄, 14%는 녹턴 그레이 메탈릭을 선택했습니다.
40대의 경우 각각 42%, 40%, 8%로 나왔습니다. 50대는 36%, 33%, 21%로 집계됐습니다.
흰색이 다소 앞서지만 사실상 검은색과 막상막하입니다. ‘흑화’(黑化)된 녹턴 그레이 메탈릭을 포함하면 검은색 계열이 압도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요즘 나오는 검은색은 예전의 그것이 아닙니다. 유채색, 무채색, 펄 등을 결합해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색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근묵자흑, 다른 색상을 흑화하면서 생명력과 지속성은 더 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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