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차는 없었다" 단 한 대도 안 팔린 국산 리무진 스포츠카

우리나라에도 '포르쉐'처럼 엔진이 차체 한가운데 달린 '미드십 스포츠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포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4월 1일, 만우절을 맞이해 제가 생각하는 만우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차를 들고 와 봤습니다. 더 어울리는 차를 아시는 분 어디 한번...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 차만큼 만우절에 잘 어울리는 국산 차는 아마 찾기 힘들 거예요. 거짓말 같았던 회사에서 만든 가장 거짓말 같은 차, 이번 시간에는 국산 수제 미드십 스포츠 리무진, '어울림 뱅가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스피라', 차를 좀 안다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이런 차가 있었어?' 하며 생소한 분들도 많을 거예요. 이 차를 만든 회사는 지금은 사라진 국내 여섯 번째 완성차 업체 '프로토 모터스'입니다. 초창기에 에쿠스나 카니발, 스타렉스 등을 개조해 인디 오더 리무진을 만들면서 기술을 쌓았고, 이후 자체적인 자동차 디자인과 생산 능력을 갖춰 자신만의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카로체리아'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회사였죠. '스피라'는 포르쉐와 견줄 수 있는 국산 스포츠카를 만들고 싶었던 임직원들의 열정으로 빚어낸 모델이었습니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가슴에 품고 있는 스포츠카에 대한 로망을 보다 가까운 곳에서 실현시켜줄 수 있는 근사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 무엇보다 '미드십 엔진'이라는 독보적인 설계로 당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죠. 어릴 적 지금은 사라진 '자동차 생활' 잡지에서 이 모델을 봤을 때 그 충격을 잊을 수 없는데요. 왜 이렇게 사라지는 게 많지... 다만 도로 위에서 이 차를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죠. 스피라의 국내 출시는 출시 초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국내 자동차 인증 기준이 대규모 설비와 자본을 갖춘 대기업 위주로 짜여져 있는 것이 차량을 하나하나 손수 만들어 내는 소규모 업체에게는 뚫기 힘든 거대한 벽이었습니다.

이후 출시가 점점 미뤄지던 스피라는 제대로 판매를 이루지 못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프로토 모터스는 경영 악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때 평소 자동차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어울림 정보 기술'이라는 회사가 등장, 프로토를 인수해 투자를 진행했고, '어울림 모터스'로 사명을 바꾸면서 여러 곳을 매끈하게 다듬은 스피라가 2010년 정식으로 출시됐죠. 그간의 기대가 이어져 온 덕분인지 나름 순탄한 판매가 이어졌지만 이후 복잡한 내부 사정으로 회사가 급격히 기울어지면서 스피라는 급기야 생산이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울림의 코스닥 상장 폐지와 임원들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우울한 소식이 연이어 이어졌죠. 눈물겨운 스토리 끝에 빛을 보나 싶었지만, 곧바로 드리워진 먹구름에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을 무렵, 어울림 모터스에서 신차를 발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스피라를 베이스로 한 럭셔리 세단으로, 그들에 의하면 스피라의 멋진 디자인과 강력한 성능, 코치빌더 리무진을 만들며 갈고닦아온 고급 차 만들기 노하우가 담긴 그야말로 프로토 모터스의 정수가 담긴 모델이었습니다. 신차 발표회를 통해 기존 고객과 투자자, 잠재 고객에게 회사가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죠. 스피라를 응원하던 네티즌들도 예상도를 만들며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모두의 기대 속에 바로 이 차가 등장했죠.

차명인 '뱅가리'는 호랑이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스피라의 생김새를 따라 과거 창경원 동물원에 있던 거대한 시베리아 호랑이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몸길이가 3m, 몸무게가 350kg에 달해 사람이건 동물이건 보기만 해도 얼어붙을 정도로 엄청난 포스를 자랑했다고 하네요. 어울림 뱅가리의 실물을 맞이한 사람들도 그대로 얼어붙었으니, 이름값은 충분히... 세단을 고성능으로 튜닝해 달리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스포츠 세단'들은 줄곧 있어 왔지만 아예 스포츠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단은 드물었는데요.

그나마 포르쉐 '파나메라', BMW의 '그란 쿠페', 벤츠의 'AMG GT4' 등 일반적인 세단보다는 훨씬 스포티하게 만들어진 차들이 있기는 하지만, 애스턴 마틴 '래피드'나 람보르기니 '에스토크 콘셉트' 같은 차들에 비하면 스포츠카에 기반했다기에는 조금 부족하죠. 날렵하고 경쾌한 주행 성능에 초점을 맞추는 '스포츠카'라는 장르 특성상 가벼운 무게, 단단한 하체, 극한으로 낮춘 시트 포지션 등 스포츠카를 갖춰야 할 자질들이 세단이 추구하는 안락한 승차감을 만들어 내는 데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기 때문입니다. 용도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차들이 많이 없었던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뱅가리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스피라의 전면과 후면을 거의 그대로 이식해 의외로 멋들어진 생김새였지만, 이무기를 연상시키듯 길쭉한 측면이 문제였습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긴 전장에 예상도의 멋들어진 '걸윙도어'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앞문을 단순히 대칭만 시켜 뒤에 붙여 놨어요. 덕분에 롤스로이스 부럽지 않은 코치 도어를 갖게 됐지만, 내장에 쓰인 트림도 그대로 앞쪽에 붙어 있어 뒷좌석에 탑승 후 문을 닫을 때 굉장히 어정쩡한 자세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 실내 공간 확보를 위해 위로 부풀어 오른 루프는 스피라의 군살 없는 매끈한 디자인을 복부 비만으로 만들었죠.

이런 거대한 크기에도 차체 대부분의 '카본'을 사용해 총중량은 '1.7t'에 불과했습니다. 실내 역시 베이스 모델인 스포츠카 스피라의 실내를 거의 그대로 이식했습니다. 스포티한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1억 원을 훌쩍 상회하는 높은 가격을 자랑한 모델인 만큼 천연 가죽 마감을 사용해 스피라보다 훨씬 고급스럽게 꾸몄습니다. 여기에 리무진답게 보기만 해도 푹신한 버킷 리무진 시트를 장착했고 열선 시트, 블루투스 오디오, 스마트폰을 연결할 수 있는 '카PC' 등을 갖춰 나름의 편의 사양도 갖췄습니다.

거대한 파티션을 사이에 둔 뒷좌석은 긴 휠베이스 덕에 공간이 상당히 널찍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족으로 실내를 감싸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어디서 많이 본 암레스트와 리어 에어밴트, 뒷좌석 승객을 위한 JBL 스피커, 글라스 루프를 여러 개 설치해 개방감도 신경 쓰는 등 쾌적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티가 났습니다. 다만 언뜻 봐도 만듦새가 엉성하기 짝이 없었어요. 가죽 내장재는 들떠 있었고 플라스틱 마감의 이음새는 매끄럽지 못해 실제 운행에 들어가면 얼마 안 가, 잡소리를 유발하거나 내장재가 탈거될 가능성도 높아 보였죠. 또 스피라의 후륜구동 미드십 구조를 그대로 채용했기 때문에 엔진이 후속 승객 바로 뒤통수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운전자는 세단 같은 정숙함을 느낄 수 있었고 뒷좌석의 VIP에게는 질주 본능을 자극하는 소음과 진동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어요.

파워트레인은 투스카니에 쓰인 'V6 2.7L 델타'와 그랜저 HG의 '3.3L 람다 GDI', 구형 에쿠스의 '3.5L 시그마', 총 세 가지 가솔린 엔진이 쓰였고, 변속기는 주행 편의성을 위해 모두 6단 및 5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렸습니다. 그랜저 XG 시절에 쓰인 커버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게 좀 그렇지만... 여기에 앞, 뒤 모두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사용해 안정감을 확보했고, 브램보의 '4P 브레이크'를 사용해 거대한 차체에 걸맞는 제동 능력도 갖췄습니다. 다만 스포츠카 스피라의 사양을 거의 그대로 사용한 만큼 기대한 승차감이 나왔을지는 모르겠네요. 여담으로 어울림 모터스 관계자와 친분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 마케팅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힙합 서바이벌 쇼미 더 머니2에서 전 듀스 멤버이자, 프로듀서 이현도가 이 차량을 잠깐 타고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죠.

차량 가격은 최하위 트림인 2.7L 모델 1억 3,200만 원부터 최고급 트림은 1억 9,500만 원으로 당시 벤츠 S클래스에 버금가는 어마무시한 가격이 매겨졌습니다. 무엇보다 이 돈이면 진짜 스포츠 세단인 '포르쉐 파나메라'를 살 수 있었어요. 제조사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는지 일반적인 데일리 세단으로 이 차량을 판매할 생각은 없었고, 특별한 날 주위의 시선을 즐기기 위한 '이벤트용 의전차량'이나 자동차 수집가의 소장품으로 판매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이 차량은 국내에서 자동차 판매를 위한 인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해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았고, 단 한 대도 판매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국내보다는 소규모 자동차 제작에 비교적 관대한 해외 판매에 주력할 계획을 밝혔었고, 앞서 스피라가 걸어온 가시밭길을 떠올리면 이해가 가는 전략이었지만... 이걸 누가 사요, 진짜. 회사는 '신차 개발 능력과 향후 가능성을 보여 주기 위한 신차'로 뱅가리를 투입했지만, 역으로 그 모양새만큼이나 엉성하고 부실해 보이는 회사의 모습을 보여준, 가장 안타까운 신차 발표회가 아닌가 싶어요. 신차 발표 직후, 혹자는 엉성한 차를 내세워 고객을 눈속임하려는 쇼라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죠. 이후 사명을 '스피라EV'로 변경하며 전기 스포츠카로 방향 전환을 시도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회사 사정으로 끝내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까지 비운의 스포츠 리무진 '어울림 뱅가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어울림 모터스의 신차이자, 미드십 스포츠카를 베이스로 한 리무진이라는 파격적인 콘셉트로 수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을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해괴한 모습으로 등장해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줬던 뱅가리. 스피라의 디자인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만큼 뱅가리도 만듦새에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소장 가치가 상당한 모델로 평가받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다시 봐도 아쉬움이 크네요. 우리나라는 턱없이 짧은 역사에도 놀라운 만큼 성장한 자동차 대국이지만, 자동차 문화는 그에 비하면 아직까지 성숙하지 않죠.

이런 불모지 속에서 스피라의 탄생은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일이었습니다. 비록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간 어울림, 앞서 프로토 모터스가 걸어온 험난한 길과 그들의 열정만큼은 마니아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거예요. 여담으로 어울림 모터스가 사실상 해체된 이후, 그들은 전공 분야를 살려 고급 커스터마이징 리무진을 제작하는 공방을 다시 세우게 되는데요. 그곳이 바로 '노블 클라쎄'입니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전동 파워트레인이 대세가 된다면, 해외 몇몇 경우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개성 있는 디자인을 갖춘 소규모 전기 스포츠카 공방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점점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만큼, 몰개성적인 모빌리티 디자인에 지루함을 느껴서 나만의 멋진 디자인을 찾는 소비자들도 점점 늘어날 테니까요. 자율 주행 장치와 주행 안전장치가 모듈로 만들어져서 오래된 차량도 애프터 마켓에서 별도로 장착할 수 있을 만큼 보편화가 된다면 금상첨화겠네요. 물론 앞서 스피라의 발목을 잡았던 자동차 인증과 충돌 안전성 시험의 사례처럼 양산 차 수준의 테스트를 치르기에는 사실상 무리죠. 그렇게 되려면 소규모 제작 공방에 대한 규제 완화가 따라와야겠지만요. 앞으로 새로운 국산 스포츠카가 등장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뱅가리의 설움을 씻어낼 근사한 스포츠 세단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다음에도 더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사소하지만 궁금한 자동차 이야기, 멜론머스크였습니다.

- 멜론머스크의 이용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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