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화산 마을, 브라스따기로 떠나다

‘인도네시아’ 이름 달린 가이드북도 ‘발리’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특히 수마트라섬 북부의 화산 마을 ‘브라스따기’는 여행 출판 업계에서는 ‘듣보잡’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정보를 얻을 수가 없어 해외 사이트를 뒤졌다.

"쿠알라나무 공항에서 ‘Almasar’라고 적힌 빨간색 버스를 타라." 같은 비행기를 탄 사람들은 미리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고 온 모양인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졸졸 깃발을 따라 사라져 버렸다.

불안한 마음으로 공항 문을 나서니,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빨간 버스. 16인승짜리 미니버스지만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의 운전기사와 손짓 발짓 섞은 매우 효율적인 대화가 오가는가 싶더니, 운전기사는 성에 안 차는지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대뜸 “English?” 하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거린 청년에게 자연스럽게 인계된 나는, 그 덕에 버스 티켓도 사고, 물도 사고, 브라스따기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는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정보를 얻었다.

메단을 거쳐 브라스따기로 가는 버스

어둡기 전에 호텔에 들어가 수영도 하며 쉴 수 있으려나 했던 나의 계획은 그야말로 허황한 꿈이었다. 해 그림자가 드리울 때까지 하염없이 승객을 기다리던 버스는 기어이 한 시간을 채우고서야 출발했다. 정확히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대충 내려 택시 타거나, 아니면 걷지 뭐, 하는 큰일 날 생각을 하던 나를 살린 것은 영어 할 줄 아는 그 총각이었다.

“옆에 앉아도 돼요?”

좌석이 좁아 나란히 앉으니 어깨를 겹쳐진다.

“브라스따기에 도착하면 너무 늦어서 위험할 거예요. 그래서 내가 버스 기사에게 호텔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으니 내릴 때 기사에게 팁 조금만 챙겨주세요.”

브라스따기 행 버스를 모는 기사와 아리프

정류장에서 호텔까지는 가로등도 없는 골목길+산길이란 걸 그때는 알 리가 없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컴컴한 길을 2km나 걸었을 생각을 하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이 천사 같은 총각 ‘아리프’의 직업은, 이거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화산 관측 공무원’이다. 세계 각지에서 이 외진 곳, 브라스따기를 향하는 이유는 화산 트래킹을 하며 정상에 올라 건너편 시나붕 화산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직업이라니!

생각해보니 인도네시아에서는 꼭 필요한 직업이다. 시나붕 화산은 400년간 활동이 멈춘 고요한 산이었는데, 2010년 대폭발 이래 매년 폭발했단다. 인명 피해가 일어난 큰 분출부터 자잘한 가스 분출까지 따지면 12년간 천 번도 넘는 화산 활동이 있었단다.

“혹시 화산이 터지면 어떻게 돼요? 대피할 시간이 있어요?”

“신호가 감지되자마자 곧바로 터져버리기 때문에 사실 대피 명령을 내려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정부에서는 시나붕 화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고 했지만, 대부분 산에 논밭 일구며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라 힘들죠. 2018년에는 15km까지 솟구쳐 올라 사람들이 죽기도 했어요. 다행히 정부가 난민 시설을 만들고 농사지을 땅도 마련해줘서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아요.”

메단에서 군것질거리를 사던 아리프

아리프는 자카르타 대학에서 전자전기를 전공할 때만 해도 이 직업을 가질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고향을 떠나 첩첩산중 브라스따기에 파견되어 종일 시나붕 화산을 바라보는 게 벌써 8년째. 주된 업무는 화산 활동을 기록, 예측하고, 화산이 터졌을 때 이주민을 대피시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전역에 활화산은 69개인데 화산 관측사는 100명에 불과해서 다른 곳으로 파견을 간다고 해도 지금 사정과 다를 것이 없단다.

인도네시아는 나라가 큰 만큼 부족 간의 독립성도 꽤 강한 나라다. 생김새, 성향, 말투는 물론 쓰는 언어가 다르고, 부족 간 결혼을 마치 외국인과의 결혼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아리프는 자바족, 브라스따기 사람들은 카로족이라, 운전사가 카로어를 하면 자기는 못 알아듣는단다. 그래서 더욱 고향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공항을 떠난 지 한 시간 만에 수마트라 북섬에서 가장 큰 도시 ‘메단’에 도착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브라스따기가 아닌 메단까지만 가는 사람들이었다. 버스는 비었지만, 운전기사는 심혈을 기울여 주차를 한다. 또다시 승객이 차기를 기다린다. 이쯤 되면 오늘 안에는 도착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어슬렁대며 동네 구경도 하고 군것질도 해가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메단에서산 카사바 칩

브라스따기로 가는 방법에는 버스, 택시, 렌터카가 있다. 하지만 교통 사정을 안다면 맹세코 운전할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차선이 있기나 한 건지, 신호등, 건널목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방팔방에서 차가 쏟아진다.

혼돈의 유니버스에서 맨발 차림으로 차들을 척척 지휘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교통경찰도 아니요, 길 안내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유턴을 하거나 좌・우회전을 해야 할 때 반대편에 오는 차를 막고 지나가도록 도와주며 푼돈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없이는 교통이 마비될 게 뻔했다. 그래서 운전자들은 그들을 위해 항상 작은 지폐를 준비해둔다.

아리프는 우리 버스는 비즈니스 클래스란다. 옆 사람과 어깨를 덮쳐 앉아야 하며, 정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이 버스가? 말도 안 돼, 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버스 지붕 위에 옹기종기 올라탄 사람들을 보았다. 마을버스 대부분은 아예 문이 달리지 않았다.

아니, 아리프, 비즈니스가 아니라 퍼스트야.

다양한 마을 버스들

결국은 메단에서 해가 져버렸고, 마침내 사람을 가득 채운 운전기사가 시동을 걸었다. 브라스따기까지는 60km밖에 안 되는데 3시간이 걸린단다. 이상하다 싶어 구글 맵을 확대해 보니 길이 이렇게까지 굽이칠 수 있단 말인가.

관전 포인트는 운전사의 신기에 가까운 운전 기술이었다. 굽이치는 일차선 도로, 옆은 낭떠러지나 다름없는 좁은 길. 버스는 앞차가 느리다 싶으면 여지없이 중앙선을 넘어 앞지르기를 한다. 반대편에서 차가 달려오면 오히려 속력을 내서 앞차를 가로질러 정상 차선으로 넘어온다. 어어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버스 승객들은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운전사를 향해 ‘엄지 척’을 날린다. 나는 운전사가 한두 번 이 길을 가봤겠나, 그저 빨리 호텔에 데려다 주기만 한다면야, 급기야 스릴을 즐기는 해탈에 이르렀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열반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결국 접촉사고가 났다. 웃는 얼굴인 운전기사는 웃음기를 싹 거두고 차를 세웠다. 갓길에 차를 대지도 않고 그냥 스톱이다.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다 뛰어나갔다.

“아리프, 혹시 버스 타면서 이랬던 적 있어요?”

“앞지르기한 적은 있지만, 사고 난 건 처음이에요.”

허허, 왜 하필 오늘인 것이냐. 패싸움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고성이 오가고, 웃는 얼굴이었다가, 담배를 피웠다가 하며 실랑이가 계속되는데, 금세 멋지게 차려입은 경찰 오토바이가 나타난다. 서울 길 한복판에서 싸움이 나도 경찰이 이렇게 신속하게 출동하지 못할 텐데 감탄하려는 찰나, 오토바이는 유유히 중앙선 넘어 우리를 앞지르며 가던 길 가시었다.

실랑이는 30분이 넘게 계속됐지만, 차에 탄 승객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메단에서 샀던 커다란 카사바 칩 한 봉지를 승객들과 돌려먹으며 이제나저제나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이윽고, 차에 올라타는 기사.

“우리가 이겼어요?” 묻는 아리프의 질문에, 운전사는 “그럼!” 의기양양 답하고는, 승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부르릉 시동을 건다. 고막을 울리는 인도네시아 트롯도 계속된다.

패싸움의 현장

뒤에 앉은 아주머니가 위장에 든 음식물을 세 번 확인하는 사이, 오매불망 브라스따기에 도착했다. 밤 아홉 시. 꼬박 6시간이 걸렸다. 아무튼, 오늘 안에는 도착했다. 아리프는 버스에서 나를 먼저 보내고 내리겠다며 끝까지 옆자리를 지켜줬다. 승객들은 내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택시를 탔다면 세 시간 만에 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아리프를 만나지 못했을 거고, 화산 이야기도, 수마트라 사람들 사는 모습을 마주할 기회도 없었겠지. 두들겨 맞은 듯 피곤했지만 내게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은 언제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브라스따기에서 매우 애정했던 카페, 우타라

글/사진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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