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DDP·불야성 상권··· ‘K패션 심장부’의 불협화음 [하상윤의 멈칫]

대한민국 패션 산업의 심장부인 동대문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끊임없이 변모해왔다. 과거 동대문운동장이 자리했던 시기, 이 공간은 스포츠의 요람인 동시에 주변 상권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물류와 소통의 광장이었다. 2014년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건축적 랜드마크로서의 위상은 확보했으나, 동대문 인근의 특수한 환경에서 생성된 상인들의 삶의 방식과 물류 활동의 맥락을 수용하지 못해 주변 패션타운 도소매 상권과의 단절이라는 과제를 낳았다. 특히 소매 상권의 급격한 위축과 이곳 의류 산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도매 생태계의 소외는 대형 공공 건축물이 도시 조직의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부작용으로 지목된다.


동대문운동장은 1926년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한 이래, 1980년대 중반까지 '성동원두(城東原頭, 성 동쪽 너른 들판)'라 불리며 수많은 국내외 경기가 개최됐다. 도시 계획 관점에서 운동장 부지의 중요한 가치는 그것이 지닌 '공간적 유연성'에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동대문운동장은 시설 노후화로 인해 스포츠 경기장의 기능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오히려 주변 패션타운과의 상업적·도시 생태적 연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동대문운동장은 야구나 축구 경기가 끝난 이후 주변 도매 상가들을 위한 거대한 물류 배후지로 기능했다.

30년 넘게 동대문에서 의류 도매업에 종사했던 박중현 전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회장은 “과거 동대문운동장의 광장 형태 공간은 수천 대의 오토바이와 화물 차량이 드나드는 하역장 역할을 수행했다”면서 “특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늦은 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주변 상가로 스며들어 상권의 활기와 뒤섞이던 소통 구조였다”고 회상했다.

실제 자정을 넘긴 심야 시간, 불 꺼진 DDP 너머의 풍경은 그야말로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다. 물류 차량이 머물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이 사라진 도로 위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입 차량과 오토바이가 위태롭게 뒤엉킨다. 제대로 된 하역장 하나 없이 길바닥에 산더미처럼 물건을 쌓아두는 전근대적인 ‘노상 적치’는 이곳만의 암묵적인 질서가 된 지 오래다. 사람 키만 한 대형 비닐봉투를 산처럼 쌓은 '밀카(수레)'가 곡예하듯 인파를 뚫고 지나가고, 수레가 닿지 않는 좁은 틈새로는 자기 몸집보다 큰 짐을 짊어진 '지게 아저씨'와 머리에 짐을 인 상인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박 전 회장은 “이곳 도매 상권 종사자만 10만 명에 달하고, 오가는 자본의 규모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간 6조 원, 그중 중국 수출 물량만 수조 원에 육박할 만큼 막대하다”며 “하지만 정부는 오래되고 독특한 이곳의 거대 산업 생태계를 철저히 외면한 채 아무런 지원도 하고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서울시가 강조하는 연간 1,700만 명, 누적 1억2,600만 명의 방문객 데이터는 DDP가 문화 랜드마크로서 지니는 압도적인 집객력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통계는 정작 동대문 패션 타운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도매 산업의 리듬과는 격리되어 있다. DDP의 주요 시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고정된 반면, 동대문 패션타운의 경제를 떠받치는 도매 상권은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이 가장 역동적으로 요동치는 심야 시간대, DDP는 모든 기능을 멈춘 채 거대한 ‘어두운 섬’이자 폐쇄된 블록으로 남겨진다. 야간에 활동하는 10만 명의 도매 상인과 종사자들에게 DDP는 더 이상 유기적인 파트너가 아니다.



2007년 DDP 현상설계공모에 참여했던 조성룡 건축가는 “동대문에는 그곳을 기반으로 먹고사는 시민들이 수십 년간 일궈온 독특한 형태의 산업 생태계가 있고, 공공 건축이 지속성을 얻으려면 늘 그 자리에서 공간을 이용하는 지역 사람들의 삶과 이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건축가는 “이제라도 ‘누구를 위한, 그리고 누구에 의한 디자인센터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며 “단순히 눈을 사로잡는 스펙터클한 오브제 하나를 세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주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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