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배달음식, 정말 안심할 수 있을까?
날이 풀리면서 배달음식 소비가 늘고 있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살아있는 위험’은 여전히 우리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팔팔 끓여도 살아남는 식중독균 ‘클로스트리디움 퍼프린젠스’에 의한 감염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조리 후 보관과 섭취 시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2025년 3월 28일, 식약처는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서울 중구 식품안전정보원에서 간담회를 열고, 대량조리 배달음식의 식중독 위험성과 대책을 논의했다. 특히 김밥, 도시락, 고기류 배달음식에서 이 균이 다수 검출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팔팔 끓여도 살아남는 ‘아포균’의 위협
퍼프린젠스균의 무서움은 단순한 식중독균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 균은 산소가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환경, 예를 들어 고기 반찬이나 닭볶음탕, 도시락 속 주메뉴 등에서 활발하게 증식한다.
무엇보다 이 균이 무서운 이유는 ‘아포(spore)’라는 생존 캡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아포는 일종의 생존 장치로, 100도에 육박하는 고온에서도 버텨내며, 열이 식은 후 다시 증식할 수 있다. 이는 마치 겨울잠에 든 곰이 봄이 오면 깨어나는 것처럼, 끓였다고 안심하는 사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 탓에 대량 조리된 음식이 실온에 오래 방치될 경우, 균이 급격히 늘어나 식중독 위험이 커지게 된다. 특히 봄철 온도와 습도는 퍼프린젠스균이 번식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살짝 아팠다 괜찮아졌어요’…알고 보니 식중독?
식약처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배달음식으로 인한 퍼프린젠스 감염자는 다음과 같다.
▶ 2022년: 264명(4건) ▶ 2023년: 106명(3건) ▶ 2024년: 452명(11건)
특히 지난해 감염자 수는 전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배달 수요 증가와 함께, 조리 후 보관과 유통 환경의 허점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퍼프린젠스균에 감염되면 섭취 후 6~24시간 이내에 수양성 설사, 복통, 탈수 증상 등이 나타난다. 대부분 24시간 안에 회복되지만, 면역력이 약한 고령자나 어린이는 중증으로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예방은 어떻게? 끓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퍼프린젠스 식중독을 막기 위해선 몇 가지 핵심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 조리 시 중심온도 75도 이상, 1분 이상 유지 ✅ 조리 후 2시간 이내 섭취 또는 냉장 보관 ✅ 실온 보관 시 반드시 규칙적으로 저어 식히기 ✅ 김밥·샌드위치 등은 아이스박스 활용해 보관 ✅ 재가열 시 75도 이상 가열 필요
예를 들어, 봄 소풍에서 자주 찾는 김밥은 겉은 멀쩡해 보여도, 한참 방치되면 퍼프린젠스균이 내부에서 번식하기 쉬운 구조다. 실제로 차량 안 햇빛 아래 방치된 도시락에서 균이 다수 검출된 사례도 보고됐다.
‘나는 괜찮겠지’라는 방심, 집단감염으로 번진다
2022년 한 건설현장에서는 점심 도시락으로 제공된 닭볶음탕으로 인해 90여 명이 집단 식중독을 겪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두 동일한 메뉴를 섭취했고, 원인은 퍼프린젠스균이었다. 이는 단순한 조리 문제가 아닌, 보관과 유통 전 과정의 관리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배달음식은 특히 조리부터 소비까지의 환경 통제가 어렵다는 점에서 취약하다. 운반 중 상온 노출, 소비자 수령 후 늦은 섭취 등이 누적되며 위험성이 커진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음식점 위생등급제’ 확대와 배달업체 위생 점검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혹시 당신도 배달음식을 받자마자 ‘따뜻하네’라며 한두 시간 지나 먹고 있진 않은가? 지금부터는 이런 습관을 바꿔보자. 배달음식도 ‘즉시 섭취’가 원칙이며, 남길 경우 바로 냉장보관하고 재가열은 필수다.
퍼프린젠스는 단순히 한 끼를 망치는 정도가 아니라, 생활 습관이 만든 식중독의 씨앗일 수 있다. 식중독은 '운 나쁘면 걸리는 것'이 아닌, '작은 부주의가 만든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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