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함으로 키워낸 붉은 열매 '토마토'

'농부사명선언서' 외우며 농사 짓는...강동춘 봄춘농장 대표
농약 치다 상해 입어 무농약 농업으로 전환...미래농업을 더욱 건강하게

나의 사명은 농산물의 안전 먹거리 생산에 최선을 다하고, 친환경적인 농법으로 유기 재배를 계속 이어 나가며 최고의 농업 경영인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농업인, 미래의 농업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농업인이 되는 데 있다...(중략)...작물은 농업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속담을 항상 머리 속에 두고 열심히 농업을 이끌어가며 최선을 다하는 전국에서 ‘1등 농업인’이 된다."

(농부사명선언서)
강동춘 봄춘농장 대표. / 농촌진흥청 제공

우리나라 최초로 토마토 분야 최고 농업기술명인으로 인증 받은 강동춘 경남 사천 봄춘농장 대표는 2007년 1월 이후로 매일 '사명 선언서'를 되뇐다고 했다.

봄춘농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품질 높은 토마토를 무농약으로 재배해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강동춘 명인이 최초로 농업과 인연을 맺게 된 대상은 토마토가 아니었다.

그는 “원래는 한우를 키웠다. 1982년 터진 한우 파동을 겪으며 불안감이 커졌다. 그래서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르던 한우를 모두 정리했다. 이후 새로운 작물을 찾던 중 토마토를 만나게 됐다.”

강동춘 명인이 토마토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는 "토마토에 건강에 좋은 성분이 많아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소비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고 했다. 또 "당시만 해도 땅에 토마토를 심는 토경 재배가 이루어지던 때였던 터라 시설비가 많이 들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토마토 재배는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방이 막힌 시설 안에서 농약을 쳐야 하는 일이 고역이었다. 단순히 냄새가 역한 수준을 넘어섰다. 결국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그는 “그때부터 무농약을 시작했다. 당시의 관행대로 약을 치다보니 건강이 나빠져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재배한 토마토로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동춘 명인이 생산한 무농약 토마토. / 농촌진흥청 제공

그가 무농약 토마토 재배를 시작한 30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무농약·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낮았다. 그는 "주위에서는 괜한 짓을 한다며 혀를 차거나 비웃는 일이 빈번했지만 그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며 "정말 어려웠던 점은 제대로 된 무농약 농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가까운 사천과 진주는 물론, 강원도까지 먼 길을 달리는 일을 몇 년이나 반복했다. 그는 "제대로 된 토마토를 재배하기 위해 쉴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강 명인은 토경재배에서 양액을 이용하는 무농약 재배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실패도 맛보았다.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스레 깨닫게 된 시기"라고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남들처럼 해서는 비전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농약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농약에서 끝나지 않았다. 농약을 쓰지 않자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문제가 생겼다.겨울이 되면 시설 내외부의 온도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안쪽에서는 결로가 생기는데 그 양이 상당했다. 그러다 보니 물방울이 떨어지는 곳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습해져 곰팡이가 자라는 데에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는 "온도는 유지하면서 습도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던 중 결로를 한데 모아 시설 바깥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는 낙수방지용패드 부재를 직접 개발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2009년에는 패드에 대한 디자인등록까지 마쳤다.

그는 “현재는 디자인 특허를 풀었더니 여러 업체에서 내가 개발한 원리를 이용한 제품을 상용화 준비 중"이라며 "이 과정에서 제가 경제적 이득을 본 부분은 없다"고 했다. 그는 "더 많은 농업인이 더 좋은 작물을 재배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강 명인은 영양분을 공급할 때 생기는 폐양액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도 앞장 섰다. 그는 “정확한 데이터를 얻고 그 데이터를 토대로 최적의 농사를 짓기 위해 급여한 양액이 얼마나 감소하는지 그날의 온도, 습도, 일조량 등 제반 여건과 함께 하루도 빼놓지 않고 3년간 저울로 측정했다"고 했다.

봄춘농장에서 자라는 탐스러운 토마토 모습. / 농촌진흥청 제공

강 명인은 "최적의 양액 공급 덕분에 토마토는 생육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겨울철 뿌리썩음병 걱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약 10%의 수확량 증가라는 결실로 이어졌다"고 자랑했다.

그는 생산한 토마토 판매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강 명인이 생산한 토마토는 대부분 인터넷 직거래로 팔린다. 그는 PC통신 시절인 30여년 전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다. 그는 "단골 역시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다"고 했다.

강 명인의 토마토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가 좋지만 단체 전시 농산물과 모금액을 모두 주변의 불우이웃시설에도 기부하는 선행도 지속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주변의 토마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모두 부자가 됐으면 하는 생각에 연간 20회에 달하는 농업인 현장컨설팅을 해주고 있다"며 "현장 컨설팅에 필요한 실습소로 우리 토마토 농장을 무료 제공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