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기시다'는 셋 중 하나…누가 돼도 기록, 한국과 관계는?
후보 역대 최다 9명으로 결선투표 불가피,
이시바·다카이치·고이즈미 중 2명 결선 전망…
각각 5수 끝 성공·첫 여성·최연소 총리 기록
'포스트 기시다' 차기 일본 총리가 탄생할 자민당 총재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27일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연임 포기 속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로 대다수의 파벌이 해제된 이후 치러지는 첫 선거로 주목받는다. 특히 등록된 후보자 수만 추천제 도입 이후 역대 최다인 9명으로 결선 투표가 불가피하다.
내각제인 일본은 집권당(자민당) 총재가 총리 자리에 오른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1차로 당 소속 국회의원 368명(중의원 254명, 참의원 114명)과 당원·당우(당 외부 지원자·우호인사) 368명의 표를 더한 736표 중 과반을 차지한 후보가 당선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한 후보가 없으면 1·2위 득표자를 놓고 결선투표를 치른다. 결선투표의 유효표는 총 415표(국회의원 368표, 전국자치단체 47표)다. 현재 유력한 1강 후보가 없는 만큼 결선투표에서 비중이 커지는 국회의원 표 흐름에 따라 선거 결과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NHK·니혼게이자이(닛케이)·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을 종합해 보면 현재 여론조사 상위권에 있는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 다카이치 사나에(63) 경제안보담당상,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 중 2명의 결선투표가 확실시된다. 다만 이들이 국회의원, 당원·당우 여론조사 결과 박빙 경쟁을 펼쳐 누가 결선에 갈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중 누가 당선돼도 일본 정치에 새로운 기록을 쓰게 된다. 다카이치와 고이즈미는 각각 일본의 첫 여성과 최연소 총리를, 이시바는 5번의 도전 끝에 당선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전날 요미우리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시바는 당원·당우(14~15일 실시) 지지율 1위(98표)를, 고이즈미는 국회의원(368명 대상, 24일 기준 98% 응답) 지지율 1위(54명)를 기록했다. 만약 이시바(국회의원 28명 지지)와 고이즈미가 결선투표에 가게 되면 국회의원 지지율이 높은 고이즈미의 당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고이즈미가 '부부 별성제 도입' 공약으로 최근 당원·당우 표를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1차 투표에서 3위로 밀려 결선투표에 가지 못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결선투표는 이시바와 다카이치 구도로 이뤄져 다카이치(국회의원 31명 지지) 승리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은 의원 수가 70명에 달하는 만큼, 무파벌 선거 국면에서 유력 후보들의 막판 국회의원 표심 잡기가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는 자신의 지역구인 돗토리현 제1구에서 4연속 지지율 80%를 기록하는 등 당원·당우, 일반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또 비자금 스캔들 관련 자민당 운영 비판론자에게도 인기가 있다. 하지만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가장 인기 없는 후보로 불릴 만큼 당내 지지 세력이 약한 것이 약점이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총 4차례의 도전에도 매번 당선에 실패하고, 현재 당원·당우, 일반인 대상 여론조사 1위 기록에도 그를 1강 후보로 꼽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이시바는 2012년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투표에서 파벌의 지지를 얻은 아베 전 총리에게 밀려 당선에 실패했다. 2015년 '이시바파' 파벌을 직접 만들기도 했지만, 당내 세력을 확대하지 못했다.
이시바는 다카이치, 고이즈미와 달리 과거사 등 한국과 갈등 문제 해결에 비교적 합리적인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군비 확장 주장은 한국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그는 일본 안보를 위한 군비 확장 계획으로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과 비핵 3원칙을 깨는 '핵 공유' 논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시바는 과거 공개 발언을 통해 태평양 전쟁을 일본의 '침략 전쟁'이라고 지적하며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이 납득할 때까지 일본이 사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지난 5일 BS11 방송에서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억지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유엔이 무력했다"며 "유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 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카이치는 '여자 아베'라는 평가에 걸맞게 아베 전 총리의 재정 확대 경제 전략인 아베노믹스를 지속하고 원자력발전소(원전) 강화로 에너지 비용을 낮춰 경제성장을 실현하겠다는 공약으로 경제계의 기대감을 얻으며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또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헌법 개정,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보수층 지지를 흡수하고 있다.
다카이치가 차기 일본 총리가 되면 한국 내 반일 감정이 되살아나 양국 관계의 개선 흐름이 주춤할 가능성이 있다. 강제징용, 위안부 등 과거사 관련 한국과 협상에 부정적이고, 총리가 된 이후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이어갈 거란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9일 출마 기자 회견에서 "국책을 위해 순직하고 조국을 지키려 한 분들께 경의를 계속 표하는 것은 (내가) 희망하는 부분"이라며 총리가 된 이후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카이치는 패전일(8월15일) 등에 매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나서는 일본 대표 내각 관료 중 하나로, 2021년 총선 때도 "직책과 관계없이 지금까지 계속 신사 참배를 해왔다"며 "결코 외교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었다. 2013년 아베 전 총리의 신사 참배에 한국과 중국을 물론 미국까지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내놓자 이후 일본 총리들은 미국 등을 의식해 신사 참배를 보류하고 공물을 보내며 수위 조절에 나섰다.
다카이치의 안보 정책도 한일 관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아베 전 총리가 구축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정책에 미국의 관여도를 높이는 것이 일본의 책임"이라며 핵 반입 금지 재검토를 주장한다.
다만 지난 9일 산케이 보도에 따르면 그는 "한일 관계가 매우 좋다"며 기시다 총리의 성과를 띄우고, 세계 안보 상황을 고려해 "한미일이 안보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내각 관료 중 최초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고이즈미는 아동, 육아 지원 정책으로도 젊은 층을 공략한다. 하지만 내각에서 환경상만 지내는 등 부족한 정치 경험과 결혼 전 유부녀와 불륜설 등이 약점이다. 또 3강 후보 중 유일하게 내세운 '부부 별성제'로 당내 보수층 표를 잃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짚었다. 고이즈미는 총재 당선 시 1년 이내에 부부 별성제를 법제화한다고 공언했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부 동성제'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다. 결혼하면 부부 중 한 명은 상대방의 성으로 바꿔야 해 신분증 교체 등 생활상의 불편함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부부 별성제' 도입을 찬성하는 일본 국민 여론은 60%에 달한다. 하지만 자민당 보수층은 이를 반대한다.
고이즈미가 총재로 당선되면 한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갈등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인다. GDP(국내총생산) 2% 수준의 국방비 실현, 자위대 명기 등 조속한 헌법 개정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간 이어왔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멈출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북한과의 정상급 대화 추진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외교적 문제는 정상급 대화로 풀어야 한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의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했다. 특히 "총리가 되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같은 세대의 일본 정상이 된다. 같은 세대 정상 간 새로운 대화의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혜인 기자 chim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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