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빼고 다 바꿔”…1997년 판을 뒤흔든 ‘천보성호’의 신데렐라들

[이재국의 엘팬알백] ㊾제3대 천보성 감독 취임과 1997년 '뉴페이스'들의 반란

1997년 4월 29일 LG가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 신기록인 10연승을 달성한 사실을 보도한 스포츠서울 1면 기사.
“빠른 발을 살린 기동력과 호쾌한 타격을 적절히 섞어 LG 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경기를 펼쳐나가겠다. 일단 4강에 먼저 들어야겠지만 우승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

LG 트윈스 제3대 사령탑에 오른 천보성 감독은 1997년 개막을 앞두고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백인천 감독 시대가 ‘혼의 야구’였다면, 이광환 감독 시대는 ‘자율야구’ 전성시대였다. 천보성 감독은 여기에 ‘힘과 스피드의 야구’를 주창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49번째 주제는 제3대 사령탑 천보성 감독 취임과 1997시즌 초반 LG의 돌풍을 주도한 신데렐라들의 반란 이야기다.

LG 트윈스 제3대 사령탑 천보성 감독(오른쪽)이 1997년 11월 25일 구단 사무실에서 취임식을 하고 있다. 주장 노찬엽이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LG트윈스

◆천보성, LG 트윈스 제3대 정식 사령탑으로

1997년 LG 트윈스의 가장 큰 변화는 천보성 감독 체제의 출범이다. LG 트윈스 창단 이후 백인천 감독 시대(1990~1991년), 이광환 감독 시대(1992~1996년 전반기)에 이어 천보성 감독 시대가 새롭게 펼쳐졌다.

천보성은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멤버 출신으로 전자업계 라이벌 삼성의 색채가 짙은 인물이기는 하지만 합리적 성품과 스마트한 카리스마를 지녀 LG 트윈스호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

완전히 새얼굴은 아니었다. 이광환 감독 시절이던 1993년 LG 트윈스 코치로 인연을 맺은 뒤 4년 동안 수비코치를 비롯해 사실상 수석코치 역할을 수행해 왔고, 1996년 시즌 도중 이광환 감독이 해임된 뒤 후반기에 감독대행을 맡았다.

LG 선수단을 파악하고 트윈스의 야구 방향과 철학을 이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1996년 11월 1일 오후, LG 트윈스의 강정환 사장과 최종준 단장은 해외출장에 돌아온 구본무 구단주(LG그룹 회장)와 면담을 한 뒤 천 감독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계약하기로 최종 재가를 얻었다.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과 연봉 각각 8000만 원, 총액 3억2000만 원의 조건이었다.

1982년부터 삼성 라이온즈 원년 멤버로 활약한 천보성. ⓒ삼성라이온즈

◆‘삼성맨’ 천보성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천보성은 사실 LG 트윈스 구단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흥미로운 인연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시간은 1982년 3월 27일 KBO 원년 개막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G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가 KBO 최초의 경기 파트너로 만났다.

MBC 선발투수는 잠수함 이길환이었고. 삼성의 1번타자(3루수)는 다름 아닌 천보성이었다. 김광철 주심의 “플레이볼” 선언 이후 천보성은 이길환의 초구를 쳐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KBO리그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1953년생의 천보성은 경북고-한양대 출신으로 실업야구 롯데를 거쳐 1982년 삼성의 원년 멤버가 됐다. 1971년 경북고가 고교야구 사상 최초로 5관왕(대통령배,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쌍룡기 우승)에 오르는 신화를 쓸 때 유격수로 활약했다. 고교와 대학, 실업 시절 줄곧 국가대표에 발탁될 정도로 선수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82년에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하자 삼성 라이온즈 원년 멤버로 합류했지만, 당시엔 30세 안팎이면 노장 소리를 듣던 시절이다. 1984년까지 KBO리그에서 3년간 179경기를 뛰며 통산 타율 0.239(44타수 106안타), 8홈런, 55타점을 기록한 뒤 은퇴했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삼성 코치를 맡았던 그는 선진야구를 공부하기 위해 자비로 미국으로 건너가 1991년과 1992년 LA 다저스에서 코치 연수를 했다. 그 시절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LG와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LG가 1992년 미국 플로리다 교육리그에 참가했는데, 당시 최종준 운영부장이 현지에서 천보성을 만났다.

천보성은 선수 시절과 코치 시절부터 야구계에서 “스마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천보성 코치가 베로비치 다저타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3시간 동안 차를 몰고 찾아갔어요. 그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야구관과 철학을 들을 수 있었죠. LG 트윈스에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종준 전 LG 단장의 말이다.

“그래서 본사에 리포트를 올렸죠. 삼성에서 코치직을 그만두고 나왔기 때문에 타 팀으로 이적하는 데는 걸림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본사에서도 그를 영입하는 데 대해 OK 사인이 났어요. 삼성 측에도 우리가 코치로 영입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LG 트윈스 천보성 감독대행이 정식감독으로 선임된 사실을 보도한 스포츠서울 지면.

미국에서 좀 더 지도자 연수를 하려던 천보성은 LG의 코치직 제안에 고민을 하다 결국 귀국을 하게 된다.

1993년부터 이광환 감독 밑에서 코치로 새출발을 한 그는 이 감독이 1996년 전반기를 마치고 지휘봉을 내려놓자 후반기에 LG 감독대행을 맡았다.

그리고는 1996년 11월 1일 대행 꼬리표를 떼고 LG 트윈스 시대 제3대 감독이자 MBC 청룡 시절을 포함하면 제10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진주 마무리훈련을 마친 뒤 11월 25일 잠실야구장 회의실에서 구단 임직원과 코칭스태프, 선수단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취임식을 한 천 감독은 “힘과 스피드의 야구로 LG 팬들에게 다가가겠다”는 취임 일성을 밝혔다.

인터뷰 행간을 읽어 보면 파워와 기동력을 장착한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재편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는 곧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알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1997년 LG 트윈스 선수단이 승리 후 기쁨을 나누고 있다. LG 3루 코치로 부임한 조 알바레즈 코치(왼쪽에서 3번째). ⓒLG트윈스

◆LG 최초 외국인 베이스코치 조 알바레즈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동안 LG는 성적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1996년 8개구단 중 7위로 떨어지면서 충격을 받았다. 구단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감독뿐만 아니라 코치진 구성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LG는 1996년 롯데와 계약기간이 만료된 조 알바레즈 코치와도 계약했다. LG 구단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베이스(3루) 코치를 영입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알바레즈는 1991년 창단팀 쌍방울 레이더스 유니폼을 입고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롯데 코치 시절이던 1995년 팀도루 220개를 만들어내면서 주목받았다. 한 시즌 220도루는 KBO 역사상 처음이었고, 롯데는 그런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LG가 알바레즈를 영입한 것은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돼 온 베이스러닝을 강화하고 그의 해박한 야구지식을 선수단은 물론 코칭스태프에도 접목하기 위해서였다.

천보성 감독이 LA 다저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하고 돌아왔기에 미국야구에 친숙하다는 점에서 알바레즈의 야구철학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96년 11월 초 LG는 해태 투수 송유석과 외야수 동봉철을 받으면서 우타거포 유망주 조현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스포츠서울

◆해태와 3대2 트레이드…한대화 쌍방울행

LG는 1996년의 실패 원인을 투수진의 부진이라 분석하고 특히 마운드 보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11월 6일 해태와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킨다.

LG는 해태에서 우완투수 송유석과 좌타자 외야수 동봉철을 데려오면서 우타거포 유망주 조현을 내주기로 했다. 곧이어 좌타자 최훈재를 해태에 주면서 ‘미완의 대기’ 투수 최향남을 받는 트레이드까지 합의했다. 사실상 3대2 트레이드였다.

송유석은 투창선수 출신으로 뒤늦게 야구에 입문해 성공신화를 쓴 입지전적 인물. 1987년 해태에 입단한 뒤 마당쇠로 활약하며 해태 왕조 건설에 힘을 보탰다. 패전처리부터 선발, 필승조, 마무리까지 전천후로 나서던 그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작성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1996년 2승1패3세이브로 부진했다. 시즌 말미에 김응용 감독과 불화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빠졌다.

LG는 마운드 강화를 위해 해태 측에 송유석의 현금 트레이드를 제안했다. 해태로서는 김응용 감독과 틀어진 송유석을 안고 갈 수 없는 상황. 결국 LG의 제안을 받으면서 반대급부로 고교 시절 최고 거포로 명성이 자자했던 외야수 조현을 원했다. 그러자 LG는 외야수 한 명을 추가로 요구하면서 공·수·주를 갖춘 동봉철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송유석은 해태 시절부터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개성 강한 후배 투수들을 잡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 LG는 당시 일부 선수들의 돌출 행동 속에 결속력이 다소 해이해져 있었다. 선수단을 하나로 묶고 이끌어나갈 리더로서도 송유석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1996년 삼성에서 해태로, 다시 LG로 이적한 동봉철. KBO 최초로 한 해에 두 차례 트레이드되는 역사를 썼다. ⓒ스포츠서울

동봉철은 1996년 5월에 삼성과 해태의 2대2 트레이드(삼성 동봉철+김태룡↔해태 이병훈 김훈)로 이적했는데 시즌 후 다시 LG로 유니폼으로 갈아입어 KBO 역사상 1년에 두 차례 트레이드되는 최초의 선수로 기록됐다.

한편 11월 16일에는 ‘해결사’ 한대화를 쌍방울 투수 신영균과 1대1 맞트레이했다. 1993년 말 ‘미스터 LG’ 김상훈을 해태에 보내면서 데려온 한대화는 1994년 우승 청부사로 맹활약했다. 선수생활 말년에 접어든 한대화는 LG에서 은퇴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쌍방울 김성근 감독의 강력한 러브콜 속에 다시 호남(전주)으로 내려갔다.

1997년 스카우트 파동 속에 고졸우선지명으로 영입한 휘문고 내야수 손지환. ⓒ스포츠서울

◆신인 유망주 대거 수혈

LG는 1997년 신인 수급에도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임선동을 1년 가까운 법정공방 끝에 역대 투수 최고계약금(7억 원)으로 품에 안았고, 1997년 1차지명 이병규에게도 역대 야수 최고계약금(4억4000만 원) 기록을 세워줬다.

이뿐만 아니었다. 고졸우선지명(3명 제한)에서도 고교 최고 유망주들을 줄줄이 뽑았다. 휘문고 박만채는 건국대로 진학했지만(2001년 입단), 덕수상고의 우완 파이어볼러 김민기와 청소년대표 출신의 휘문고 내야수 손지환에게는 대학과 스카우트 분쟁(이중등록 파문) 끝에 최고 대우로 영입했다. 둘 모두 고졸선수에게는 파격적인 3억 원(계약금 2억8000만 원, 연봉 2000만 원)을 안겼다.

LG 최종준 단장(왼쪽)이 2차지명 1라운드 투수 장문석(가운데), 2라운드 투수 전승남과 입단 계약을 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스포츠서울

여기에 2차지명에서도 1라운드 장문석(경남상고-동아대 우완투수·계약금 3억 원), 2라운드 전승남(덕수상고-중앙대 사이드암투수·계약금 2억3000만 원), 3라운드 안재만(배재고-건국대 내야수·계약금 1억5000만 원) 등 대학 정상급 유망주들을 차례로 뽑아 알찬 수확에 성공했다는 평가였다.

1996년 말 해태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투수 최향남(왼쪽)과 송유석. ⓒLG트윈스

◆대대적 세대교체…천보성호 개막 2연패 충격 출발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새롭게 LG 지휘봉을 잡은 천보성 감독은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팀 전력의 대대적인 개편을 준비했다.

우선 선발 라인업부터 대폭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해태에서 데려온 대졸 5년생 동봉철과 아마추어 최대어 야수 이병규를 중용하면서 기존 심재학과 서용빈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좌타 라인을 구축했다. 김재현이 부상과 군문제로 빠졌지만, 리드오프 류지현부터 시작하는 LG의 라인업은 한층 젊어지고 빨라졌다.

한대화가 쌍방울로 트레이드되고, 노찬엽 등 베테랑 선수들이 백업으로 뒤를 받치는 전면적인 야수진 개편 속에 LG는 새로운 출항을 했다.

마운드도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정삼흠이 은퇴한 가운데 당초 선발 로테이션은 베테랑 삼총사인 김용수~김기범~김태원에 신인 최대어 투수 임선동을 포함시킨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김태원이 장딴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새로운 얼굴을 발굴해야만 했다. 김기범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대체 후보들을 준비해야만 했다. 신인 전승남과 2년생 손혁, 해태에서 이적해 온 8년차 무명투수 최향남이 선발진에 들어갈 후보로 분류됐다.

중간계투는 차동철-차명석 ‘차차 듀오’에 좌완 민원기와 해태에서 데려온 송유석을 축으로 삼았고, 마무리는 ‘야생마’ 이상훈에게 맡겼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LG는 새로운 기분으로 개막을 맞이했다. 하지만 개막 2연전(전주 쌍방울전)부터 충격의 2연패를 당하고 만다.

4월 12일 개막전에서 일이 꼬였다. 에이스 김용수가 선발등판했지만 1회말 시작하자마자 쌍방울로 이적한 한대화에게 개막 1호 홈런(2점)을 맞았다. 한대화는 자신을 보낸 친정팀과 동기생 김용수에게 비수(?)를 꽂으며 개인통산 7번째 개막전 홈런을 날렸다. 이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KBO 개막전 최다 홈런 기록으로 남아 있다. 결국 김용수가 5.2이닝 6실점(5자책점)의 난조를 보이면서 LG는 6-7로 패했다.

이튿날인 13일에도 김기범이 선발로 나섰지만 3.1이닝 4실점으로 부진하면서 2-6으로 졌다. LG는 전년도부터 전주구장 9연패와 쌍방울전 7연패의 악몽을 끊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15일 맞이한 잠실 홈개막전. [엘팬알백] 47화 임선동 편과 48화 이병규 편에서 자세히 소개했듯이 이날 해태전에서 슈퍼루키 임선동과 이병규의 희비가 엇갈렸다.

임선동은 프로 데뷔전인 이날 선발로 나서 5.2이닝 6실점으로 쓴맛을 봤다. 하지만 이병규가 4타수 3안타 3타점으로 ‘LG 킬러’인 해태 선발 조계현을 무너뜨리면서 연장 10회 7-6 승리의 수훈갑이 됐다.

이병규는 시즌 초반 타격 선두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1997년 혜성처럼 등장해 LG 돌풍의 기폭제가 된 신국환. ⓒLG트윈스

◆‘신데렐라 스토리’ 신국환의 등장

1997년을 되돌아 보면 혜성처럼 등장한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바로 신국환이다.

4월 16일 잠실 해태전. 3-3으로 맞선 연장 10회말 1사 2루. 타석에는 8회초 2루수 대수비로 나섰던 신국환이 그대로 들어섰다. 끝내기 찬스에서 대타가 나올 줄 알았지만 LG 벤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해태 마운드에는 신국환과 충암고 동기인 이원식이 서 있었다. 다음 타자가 류지현이기에 해태 배터리는 1루를 채우는 것보다 신국환과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이원식을 잘 아는 신국환은 3구째 슬라이더가 날아오자 거침없이 방망이를 돌렸고, 타구는 좌중간을 갈랐다. LG 선수들이 모두 뛰어나와 신국환을 얼싸안고 기뻐했다.

신국환은 반짝 히어로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8번 2루수로 선발출장한 뒤 무안타에 그쳤지만, 4월 18일 사직 롯데전에서 2루타 2방을 포함해 5타수 5안타 3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키 177㎝·76㎏의 평범한 체격. 힘없는 자세와 심드렁한 표정. 한편으론 성의없어 보이기도 하고, 패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하지만 야무지게 방망이를 돌렸고, 다부지게 수비를 펼쳤다.

1997년 LG 주전 2루수를 꿰찬 뒤 몸을 날리며 수비를 펼치는 신국환. ⓒLG트윈스

신국환은 충암고 시절 심재학, 이원식과 함께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에서 학교 역사상 최초로 2관왕에 올린 멤버였다. 원광대 졸업반인 1995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 LG 지명을 받았지만 류지현, 박종호, 송구홍 등 쟁쟁한 멤버들에 가려 좀처럼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1997년 박종호의 부상 속에 송인호가 개막 이후 주전 2루수로 활약하던 상황. 이날 대수비로 나선 뒤 일을 내면서 LG의 주전 2루수로 급부상했다.

신국환은 1997년 120경기에 출장해 타율 0.285(405타수 114안타), 8홈런, 58타점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다. 신인왕 후보에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1997년 선발진에 합류해 시즌 초반 연승 행진을 펼치며 LG 상승세에 기름을 부은 전승남. 스포츠서울 '오늘의 스타' 인터뷰 기사.

◆‘전승하는 남자’ 전승남 돌풍

4월 18일 사직 롯데전은 신국환만 새로운 히어로로 배출한 게 아니었다. 이날 선발투수인 신인 전승남도 ‘깜짝 스타’가 됐다.

앞서 2경기 구원등판으로 몸을 풀었던 그는 베테랑 투수들이 부진하면서 선발등판의 기회를 얻었다. 이날 결국 6이닝 동안 107구를 던지며 4안타 3사사구 7탈삼진 1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올렸다.

4월 24일 인천 현대전에서 시즌 2승, 5월 9일 광주 해태전 시즌 3승…. 연일 승승장구하자 그의 이름 ‘전승남’에 빗대 ‘전부 승리하는 남자’, ‘전승하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전승남은 당초 중간계투 요원으로 분류됐으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선발 후보로 급부상하더니 결국 개막 첫 달에 5선발 자리를 꿰찼다.

체격은 작지만 절묘한 제구력과 두둑한 배짱을 앞세워 정면승부를 펼치는 신형 잠수함. 그해 후반 승수쌓기 페이스가 주춤했지만 32경기에 등판해 6승5패, 평균자책점 3.29의 성적을 올리면서 LG 마운드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최향남은 해태 시절 단 1승에 그쳤지만 LG로 이적하자마자 1997년 시즌 중반까지 무패 가도를 달리며 LG 돌풍을 주도했다. ⓒLG트윈스

◆‘향기나는 남자’ 최향남과 2년생 손혁의 급부상

LG 유니폼을 입고 비로소 ‘향기나는 남자’로 변신한 최향남을 빼놓을 수 없다.

4월 16일 잠실 해태전에서 팀의 4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그는 3.2이닝 3실점(2자책점)을 기록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 이후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던졌지만 승리를 따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다 5월 17일 잠실 OB전에 선발등판해 5.2이닝 6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감격의 데뷔 첫 선발승을 올렸다.

목포 영흥고를 졸업한 뒤 1990년 해태에 입단했지만 1996년까지 41경기에 출장해 1승6패만 기록하고 있던 무명 투수. 그 1승도 1996년 LG를 상대로 거둔 구원승이었다.

막혔던 혈이 뚫린 것일까. 한번 승리의 물꼬를 트자 연전연승이었다. 최향남은 6월 5일 잠실 OB전에서 7.1이닝 1실점으로 역투하며 4연승 무패를 달렸다. 시즌 10경기 등판 만에 규정이닝에 진입하면서 평균자책점(1.65) 2위, 승률 1위에 올라 ‘인생극장’의 주인공이 됐다.

6월 22일 대구 삼성전까지 6연승 무패가도를 달렸고, 평균자책점은 1.92로 여전히 2위에 올라 새로운 에이스로 각광 받았다.

7월 5일 잠실 쌍방울전에서 시즌 첫패를 당하고, 후반기에 갑작스런 부상까지 겹치면서 1997년 10승 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23경기(선발 19경기)에 등판해 8승3패, 평균자책점 2.99를 기록하며 ‘향기나는 남자’로 거듭났다. 그리고 1998년에는 마침내 12승 투수로 도약하게 된다.

1997년 선발투수로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2년생 투수 손혁. ⓒ스포츠서울

또 다른 선발 자원도 나타났다. 1996년 입단 첫해 3경기에 등판해 1승, 평균자책점 6.10에 그쳤던 손혁이 주인공이다. 4월 19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등판해 5이닝 3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올리더니 6월 12일 광주 해태전(7이닝 1실점)까지 선발 4연승 무패 행진을 벌였다.

그러면서 그해 24경기(선발 20경기)에서 8승5패, 평균자책점 4.18로 선발 한 축을 든든하게 받쳐줬다. 손혁은 1998년(11승)과 1999년(10승)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는 투수로 도약한다.

1997년 LG 세대교체의 주역인 이병규. 그해 LG에 많은 신인들이 출현한 가운데 이병규는 신인왕에 올랐다. ⓒ스포츠서울

◆OB ‘불사조’ 박철순 떠나던 날…LG는 창단 첫 10연승과 1위 질주

LG는 개막 2연패의 충격 속에 김용수만 빼고 선발투수를 모조리 신예들로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한편으론 모험수처럼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새로운 신바람을 일으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진 사직 원정 3연전에서 롯데를 3연파하며 연승 바람을 탔다. 이 3연전의 승리투수는 전승남, 손혁, 임선동. 모두 데뷔 첫 선발승이었다. 그 결과 LG는 시즌 5승3패를 기록하며 해태, 쌍방울, 한화와 더불어 공동 1위로 올라섰다.

4월 22일 인천 현대전에서 신데렐라 신국환의 결승 홈런으로 5-5로 승리하며 4연승을 달렸다. 시즌 6승3패로 한화와 공동 1위.

이어 4월 23일 인천 현대전에서 타선 폭발로 12-4로 이기며 5연승을 질주했다. 7승3패로 마침내 단독 1위가 됐다.

4월 27일 잠실 한화전까지 9연승. MBC 청룡 시절을 포함해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 신기록(종전 8연승)을 작성하는 순간이었다.

1997년 4월 29일 OB 베어스의 레전드 투수 박철순이 은퇴식에서 마운드 키스를 하고 있다. LG는 이날 OB를 꺾고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인 10연승을 달렸다. ⓒ두산베어스

그리고 맞이한 4월 29일 잠실 OB전. 이날은 1982년 원년 최고 스타 OB 박철순의 은퇴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투수로서는 최초의 은퇴식. 잠실구장에는 3만500명의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경기 후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마이웨이’가 울려퍼진 가운데 ‘불사조’ 박철순은 마운드에 엎드려 ‘마운드 키스’를 했다. LG 주장 노찬엽도 꽃다발을 전해주며 전설이 떠나가는 마지막 순간을 축하해줬다.

하지만 은퇴식과 경기는 별개였다. LG는 이날 경기에서 OB를 7-1로 대파했다. LG 구단 역사상 최초로 10연승 고지를 밟았다. 이는 여전히 구단 역사상 최다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로써 LG는 시즌 12승3패(승률 0.800)를 기록했다. 2위 해태(10승5패)를 2게임차로 앞서며 단독선두를 이어갔다. 개막 2연패 직후 곧바로 선발 투수진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LG는 시즌에 앞서 4강을 목표로 잡았다. 냉정하게 전력을 평가할 때 포스트시즌 진출도 여의치 않다는 의미였다. 전문가들도 대부분 비슷한 견해였다. 그런 만큼 새롭게 출항한 ‘천보성호’의 시즌 초반의 반란은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행보였다.

특히 세대교체 속에 신데렐라 스토리를 쓰며 새로운 스타가 대거 등장한 부분은 반가운 대목. 류지현 김재현 서용빈 등 타선의 신인 삼총사와 10승 신인 인현배의 출현으로 신바람이 일었던 1994년의 후속작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순풍에 돛 단듯 승승장구하던 LG는 5월초 갑자기 위기를 만난다. 대구 원정 3연전에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엘팬알백] ㊿편에서 계속

LG 천보성 감독(오른쪽)과 삼성 백인천 감독이 1997년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부정배트 시비 속에 언쟁을 벌이고 있다. ⓒ스포츠서울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