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알려줌] <206: 사라지지 않는> (206: Unearthed, 2021)
글 : 양미르 에디터

'6.25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이 지난 6월 21일 개봉했다.
민간인 학살은 6.25전쟁 이전, 일제로부터 독립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일제 치하로부터 독립했지만, 그 전부터 남과 북에 주둔해 있던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단 정부가 수립되며 이념 갈등이 시작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단 상태는 더욱 굳어졌고, 이념의 갈등은 깊어져 1948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건인 제주4.3사건이 발생한다.
1950년 6월, 이념 갈등은 6.25전쟁으로 심화했으며, 국가 간의 싸움을 넘어 국가 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이 한반도 전역에 자행됐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들의 노력으로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학살 현장 실태조사에 돌입했지만, 1년 뒤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정부는 '한국전쟁유족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유해 발굴을 중단시켰다.
역사 아래 숨죽이고 있던 국민들의 분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마침내 2005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게 된다.
40여 년 만에 민간인 학살 진상 조사와 유해 발굴이 시작되었지만, 그마저도 5년 만에 해체되고 만다.
그렇게 2014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시민 발굴단)이 결성됐다.

시민 발굴단의 상당수는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전직 조사관 출신이었으며, 대부분 위원회에서 일하던 시절, 진실 규명을 다 하지 못한 채 미완의 과제로 남겨두었던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되기도 했다고.
여기에 유족들과 자원봉사자 등이 자발적으로 합류한 시민 발굴단은 2023년 현재까지도 유해발굴 진행을 하고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시기, 묵묵히 유해발굴을 이어간 그들의 노력으로 지난 2020년에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출범하는 결실을 보기도 했다.
2023년 올해에도 최소 8곳에 이르는 학살터 발굴을 앞두는 등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영화는 유해발굴 전문가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결성된 '시민 발굴단'의 이야기, 허철녕 감독이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에 나선 故 김말해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김말해 씨는 해방된 조국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남편과 두 아들을 낳고 평범한 삶을 이어가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가족을 잃고 만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에서도 언급됐었던, '보도연맹원' 교육이 있으니, 시내로 집합하라는 경찰의 소집장을 받고 집을 나간 것이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것.
일자리 하나 없는 시골 산골짜기에서, 젊은 여성이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현실은 절대 녹록치 않았다.

"빨갱이 가족"이라는 오명을 견뎌야 했던 불온한 시선들은 김말해 씨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마을 뒷산 저수지에서 자살 시도까지 하고 만다.
마지막 순간, 울부짖으며 "집에 가자"라는 어린 아들의 목소리에 물가로 올라와 목 놓아 울었던 그날을 김말해 씨는 결코 잊지 못했다.
김말해 씨는 경찰로부터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당한 매장지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학살터로 향했고, 그의 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고 한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해가 부위별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일부 유해는 아직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
김말해 씨는 정수리 부분에 대못이 박혀 흙뼈에 매달린 채로 허공을 응시하는 두개골을 본 뒤 현기증과 함께 공포를 느끼며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그날 봤던 유해 매장지의 지옥도와 같은 풍경은 김말해 씨의 삶에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됐다.
송전탑 투쟁에 관한 물음으로 시작한 인터뷰에서, 6.25전쟁 민간인 학살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는 허철녕 감독은, 경찰 공권력을 향한 김말해 씨의 뿌리 깊은 분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말해의 사계절>(2017년) 작품을 완성하고 난 허 감독은 김말해 씨의 모든 비극의 시작점이었던 민간인 학살의 실체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민 발굴단'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게 된 허철녕 감독은, 발굴과 영상을 함께 기록하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됐고, 발굴이 끝난 직후,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학살터를 담게 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허철녕 감독은 "유해 발굴단의 여정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감독이 아닌 발굴단의 일원으로 그들과 함께하려 노력했다"라면서, "언론이 현장을 방문할 때면 1~2시간 정도 현장의 이미지를 찍고 유족 및 현장 책임자 인터뷰 몇 마디를 듣고는 사라져 버린다. 유해 몇 구가 발견되었는지 그 결과를 아는 것만큼이나, 작은 뼈 한두 조각을 찾아내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지난한 여정을 감내하는 단원들의 노력을 담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허철녕 감독은 유해 발굴 현장이 언제나 엄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10대부터 70대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협동의 장"이라면서, "뼈를 찾겠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힘이 있는 사람은 흙을 나르고, 섬세한 사람은 유해 노출을 맡으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앉아서 발굴한 유해를 세척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허 감독은 "아주 어린 자원봉사자들은 부모와 함께 채를 치며 돌멩이와 작은 뼛조각을 보물찾기하듯 찾는다"라면서, "도시락을 갖고 올라와 유해 옆에 앉아 다같이 식사를 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와 함께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간혹 현장을 찾아온 유족이 유해 앞에서 오열하면 그 순간만큼은 모두 숙연해지고 기도를 올렸다고.
허철녕 감독은 "나에게 그들과 함께한 지난 6년이라는 시간은, 가장 비인간적인 땅 위에서 일어난 가장 인간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2021년 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과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중 대상에게 수여되는 '비프메세나'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6.25전쟁의 민간인 학살, 시민 발굴단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한국에서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했다.
- 감독
- 허철녕
- 출연
- 김장호, 박선주, 안경호, 홍수정, 노용석, 임영순, 김소현, 김나경, 김광욱, 김말해
- 평점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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