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 확보”… 美 빅테크, 원전 장기고객·투자자로 나서
미국 아마존은 지난달 30일 미 원전기업 컨스텔레이션과 메릴랜드주 캘버트클리프스 원전의 전력 690MW(메가와트)를 20년간 구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 가운데 190MW는 원전 출력을 높여 2030~2032년 새로 공급할 몫이다. 아마존의 장기 구매 약속을 바탕으로 컨스텔레이션은 설비 개선과 출력 증강 등을 포함한 30억달러 이상의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AI(인공지능) 경쟁이 전력 확보 경쟁으로 번지면서 미국 빅테크들이 원전의 장기 고객이자 투자자로 나서고 있다. 전기를 많이 쓰는 빅테크가 20년 안팎의 장기 전력 구매를 보장함으로써 원전 사업자의 투자 위험을 낮추고, 이는 다시 원전 출력 증강과 신규 원전 건설, 폐쇄 원전 재가동과 수명 연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친환경 제철 신기술 등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한국도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관건은 값싼 원전 전력을 특정 기업에 몰아준다는 논란이 없도록 적정한 비용 분담 장치를 함께 마련하는 것이다.

◇폐쇄 원전 되살리고 새 원전 개발에도 투자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24년 컨스텔레이션과 20년 전력구매계약(PPA)을 맺었다. 경제성 문제로 폐쇄된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를 2027년 재가동시켜 835MW의 전력을 공급받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메타는 지난해 6월 일리노이주 클린턴 원전 전력 1.1GW를 20년간 구매하기로 했다. 주정부 지원 종료로 2027년 이후 존폐가 불투명했던 원전이다. 메타는 이런 장기 계약에 더해 차세대 원전 개발도 지원해 2035년까지 최대 6.6GW를 확보할 계획이다. 구글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사 카이로스파워와 손잡고 2035년까지 최대 500MW를 확보하기로 했다.
빅테크들의 원전 확보 경쟁은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폭증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4년 415TWh(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약 950TWh로 두 배 넘게 늘어난다. 미국만 보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같은 기간 약 180TWh에서 약 420TWh로 폭증한다. 이는 철강·알루미늄 등 에너지 다소비 제품 생산에 쓰이는 전력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밤낮없이 가동하는 데이터센터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태양광·풍력에만 의존할 수가 없다. 안정적인 공급원인 원전이 주목 받는 이유다.
◇“한국도 원전 장기 계약 논의 시작해야”
한국도 전력 확보가 발등의 불이다. 지난 8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제시된 2040년 최대전력 추가 수요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24.3~24.6GW, AI 데이터센터 11.9GW였다. 두 분야의 추가 수요만 36GW를 넘는다. 설비용량 1.4GW인 대형 원전 약 26기분이다.
국내에서도 ‘원전에 대한 기업의 투자와 장기 구매 모델 도입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이 장기 구매를 보장하면 한국수력원자력은 안정적인 매출을 바탕으로 원전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쉬워진다. 기업도 공장과 데이터센터 투자 일정에 맞춰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현행법상 기업이 발전사와 장기계약을 맺을 수 있는 건 재생에너지 뿐이어서, 대형 원전과 기업 간 직접 장기계약을 터주는 관련 법·규정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기존 소비자의 부담이다. 한전은 원전·석탄·LNG 등 여러 발전원의 전기를 사들여 가정과 기업에 공급한다. 저렴한 기존 원전 전력을 대기업에 우선 배정하면 나머지 소비자에게 공급할 전력의 평균 구입비가 높아질 수 있다. 이에 따른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원전과 기업 간 장기 구매 계약을 기업이 투자한 신규 원전이나 출력 증강에 비용을 댄 기존 원전 등으로 한정하고, 추가 송전망·변전소 비용도 수요 기업이 일부 부담하도록 하자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교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안하면 민간 기업이 신규 원전 투자와 장기 구매 계약에 참여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며 “계약 구조와 비용 부담 원칙을 어떻게 설계할지 사회적으로 폭넓게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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