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원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는데...” 고시원 살며 서울예대 입학한 배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불과 사흘 만이었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고향을 떠났지만 손에 쥔 돈은 30만 원이 전부였다. 부모님의 반대까지 있었기에 서울 생활은 처음부터 스스로 버텨야 했다.

고시원과 옥탑방을 전전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던 청년은 훗날 영화 한 편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을 연기하며 스타덤에 오른 배우 이준기의 이야기다.

‘햄릿’ 한 편을 본 뒤 마음속에 배우가 들어왔다

이준기는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 창원에서 성장했다. 처음부터 배우를 꿈꿨던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연극 ‘햄릿’을 관람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무대 위에서 배역에 몰입한 배우들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자신도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들이 보다 안정적인 길을 걷기를 바랐다.

결국 이준기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자신의 선택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모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약 보름간 일해 마련한 30만 원을 들고 서울로 향했다.

고시원과 옥탑방, 맥주 창고까지 버텨야 했다

서울에 도착했다고 곧바로 배우의 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생활비부터 직접 마련해야 했던 이준기는 신촌 일대 호프집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과거 방송과 인터뷰 등을 통해 시급 2500원을 받으며 일했고, 형편이 어려울 때는 맥주 창고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고시원과 옥탑방 등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던 사연도 알려졌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절 고시원 공용 냉장고에 있던 다른 사람의 장조림을 먹었던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지금의 화려한 모습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무명 시절이었다.

서울에 왔다고 스타가 된 건 아니었다…계속된 오디션 탈락

생활고를 견디는 것만큼 힘든 것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서울까지 왔지만 신인에게 쉽게 배역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프로필을 들고 오디션장을 찾아다니며 수없이 문을 두드려야 했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서울예술대학에 진학해 자신의 꿈과 가까운 공부를 이어갔다.

30만 원으로 시작한 서울 생활에서 가장 큰 자산은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 버티는 시간이었다. 훗날 찾아온 한 작품의 성공 뒤에는 오랫동안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난 ‘공길’…무명 청년의 인생이 뒤집혔다

긴 무명 생활 끝에 이준기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은 2005년 개봉한 영화 ‘왕의 남자’였다. 그는 공길 역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단숨에 주목받았다.

작품이 큰 흥행을 거두면서 이준기 역시 스타덤에 올랐다. 고향을 떠날 때 손에 쥐었던 30만 원과 고시원 생활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만큼 달라진 순간이었다.

졸업 직후 무작정 서울로 향했던 청년에게 성공이 곧바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잠잘 곳과 생활비를 걱정하면서도 배우라는 꿈을 놓지 않았고, 결국 오랜 무명 시절 끝에 자신에게 찾아온 ‘공길’을 붙잡았다. 30만 원으로 시작했던 서울행은 그렇게 한 배우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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