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며느리였는데…너무 친해 자매 관계된 두 분
(Feel터뷰!) 영화 '시민덕희'의 라미란 배우를 만나다
지난 1월 16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진행된 라미란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물들었다. 영화<시민덕희>는 화재로 대출이 필요한 상황일 때 마침 걸려온 보이스피싱 전화에 낚여 의심 없이 돈을 보냈던 덕희가 한 통의 제보 전화로 인해 총책까지 잡는 이야기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2016년 화성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성자 씨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2020년 12월에 크랭크업하고 이듬해 개봉을 계획했으나 팬데믹으로 미뤄져 3년 만에 개봉하지만 트렌드에 구애 받지 않고 재미있게 각색되었다.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개봉 시기가 크게 문제 되지도 않는다. 라미란은 시사회의 호평에 “오래 기다렸기에 드디어 볼 수 있겠구나 싶어 반가웠다”며 활짝 웃었다.
‘라미란’이란 이름은 이제 믿고 보는 배우로 각인되었다. 오랜 무명 시절을 겪으며 차근차근 올라갔다. 단역, 조연을 거쳐 20년 경력의 배우로 성장했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오수희 역으로 데뷔해 강렬함을 보였다.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2부터 등장해 동명 이름으로 시즌17까지 인상적인 조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3인방 중 라미란 역을 맡아 인기몰이 했다. 본인 이름인 캐릭터가 2개나 되는 배우가 되었다.
이후 원톱 주연으로 우뚝 섰다. 영화 <정직한 후보>의 주상숙으로 시원한 말주변을 선보였다. 내친김에 제4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었다. 작년에는 드라마로 얼굴을 비추었다. [나쁜 엄마], [잔혹한 인턴]으로 코미디 보다 정극으로 시청자의 곁에 머물렀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예능을 오가며 긍정 바이러스를 선사하는 유쾌한 배우가 라미란이다.
-박영주 감독은 중편 <선희와 슬기>로 데뷔했고 대중영화로는 <시민덕희>가 처음이다. 최근 <고속도로 가족>의 이상문 감독도 그렇고 신인감독과 작업을 많이 했다.
“신인감독님 데뷔작을 자주 했다. 박영주 감독님을 처음 봤을 때 소녀 같고 대학생 같았다. 현장을 끌고 가야 할 텐데 괜찮을까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본인이 원하는 부분 가감 없이 다 이야기하면서 야무지게 챙겨가더라. (웃음) 현장 분위가 자체도 화기애애했고 배우, 스태프 모두 모난 사람 없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같은 이야기의 힘이 느껴진다. 시사회 반응도 호평이 많았다. 전 국민의 분노를 유발 소재라 관심도 크다. 포스터만 보고 코미디 장르를 예상했었지만 진지한 범죄 추적극이더라. 의외의 전개였다.
“기대를 많이 안 하신 건지 생각과 달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웃음)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게감이 있었다고 하더라. 색다른 매력으로 봐주신 것 같다. 이미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시놉시스를 보고 놀랐다. 중국으로 간 건 상상으로 만든 설정이지만, 제보하신 분을 설득해서 정보를 받아냈다고 들었다. 총책을 잡았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가공의 인물이라면 더 보여줄 수 있었겠지만, 실존 인물의 단단함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덕희라는 인물이 존경스럽고 마음에 들었다”
-김성자 씨와 만나 보았는지. 싱크로율에 어느 정도 신경 썼는지 궁금하다.
“시사회 때 만나 사진도 찍고 잠깐 대화를 나눴다. 지금도 너무 억울하다고 하셨다. 단단하고 멋있는 분이셨다. 실화를 바탕했지만 다큐멘터리나 재연물이 아니라서 모티브만 삼았다. 김성자 씨를 그대로 모사하려고 하지 않았다. 덕희 자체로 저의 모습에 동기화했다”
-앞선 질문의 답에서 실존 인물을 참고 하기보다 나만의 덕희로 만들어 갔다고 했다. 어떤 점을 더 꺼내고 덜어내면서 덕희를 완성했던 건가.
“살(?) (웃음) 당시 영상 보면 아시겠지만 지치고 김성자 씨가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날카로운 외형이 있었다. 싱크로율을 높일 필요는 없으나 최대한 마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쉴 틈 없이 밥 먹느라 식단 조절이 잘 안된다. 촬영할 때 뱃살 안 보이게 연기하면 되지 싶었지만 그것도 잘 안되더라. 어느 순간이 되니 안 되겠다 싶어서 이대로 촬영했다.
감정 중에 ‘강인함’을 더했다. 제가 여러 인물을 하면서도 매번 비슷한 이유가 껍데기를 통해 나오는 연기라 그렇다. 완전히 다른 인물로 탈바꿈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느 지점이든 제 모습이 담겨 있는 거다. 간혹 작품 할 때도 ‘내가 아닌 이 배우가 하면 어울릴까?’ 대입해 본다. 덕희는 저 아니면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웃음) 제가 제일 잘 어울린다”
-덕희는 집이 불이 나고 3200만 원을 뜯겨 거리에 나앉게 생겼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신고했지만 박형사(박병은)의 뜨뜻미지근한 행동에 결국 중국으로 가게 된다. 덕희처럼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덕희를 만나고 덕희처럼 생각할 수 있을지 매번 고민했다. 저는 비겁해질 것 같다. 일단 중국에 안 간다. (웃음)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가는 덕희가 멋있었다. 그저 돈 뺏겨서 울고 좌절하고 말 것 같다. 제보를 받아도 경찰한테 넘겨주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을 거다. 보이스피싱인 줄 모르고 은행에 튀어가서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냐고 묻는 장면이 덕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거 같다. 덕희는 영웅도 아니고 거창한 일을 하려는 게 아니다. 잃어버린 돈을 찾고 싶어 하는 피해자였지만 제보 전화를 받으면서 용기를 내는 거다”
-덕희는 소시민이지만 영웅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다. 그걸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은 총책(이무생)과 만나는 공항 화장실 장면이다.
“가장 소름 돋는 짜릿한 장면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시민들 사이를 걸어갈 때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다. ‘내가 왜 숙여!?’ 당당함을 유지하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기 세우기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는 거다. 그 장면에서 덕희의 자존감과 존엄이 드러난다”
-이무생과 과격한 액션 장면이 인상적이다. 최근 김희애, 이영애 배우와 멜로 하면서 이무생로랑이란 애칭도 얻었기에 놀랍다. 멜로가 아니라 액션으로 만나 서운하지는 않았나 싶다.
“액션 장면 전에 동선 등 사전 합을 맞추긴 했다. 이무생 씨가 저를 너무 많이 때려서 목이 꺾일 뻔했다. 과격한 액션이 더 많았는데 영화에서는 3분의 2를 덜어낸 거다. 다음에는 라미란로즈와 이무생로랑이 만나는 멜로를 찍어보고 싶다. 이무생 씨와 합의된 건 아니고 혼자만의 생각이다. (웃음)”
-덕희를 돕는 덕벤져스. 염혜란, 장윤주, 안은진과의 케미도 터지더라. 실제로도 친한 것 같다.
“밥을 같이 먹으면서 나오는 케미다. 현장에서는 아무리 불꽃 연기를 해도 실제 친분이 없으면 친근함이 스며 나오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마음을 나눌 만한 친구라는 설정은 연기로만 되지 않는다. 지방 촬영이라서 휴식 시간에도 붙어 있으니까 최대한 밥을 자주 많이 먹으려고 했다. 그래서 살도 찌고 케미도 좋아졌다. 넷이 내내 붙어 있어 시끌벅적했고 재미있게 촬영했다.
촬영 때만 해도 지금의 어벤져스 느낌이 아니었는데 (3년이 지나니까) 사정이 달라졌다. 은진이는 그때 첫 영화고 뽀시래기였는데 성장했고, 명이도 멍뭉미에서 어엿한 성견으로 자랐다. (웃음) 이무생 씨도 이무생로랑이 되었고, 다들 별 탈 없이 쑥쑥 성장했기에 포스터에서 뿜어 나오는 어벤져스 포스가 난 게 아닐까 싶다”
-제2의 라미란이란 수식어가 붙는 염혜란 배우와 만났다. 쌍란자매의 친근함도 있지만 포지션이 겹쳐 위협을 느낄만한 자리까지 올라왔다.
“제2의 라미란이라니. 제1의 염혜란이다. 좋은 작품을 많이 하면서 인정받는 것 같다. 앞으로 쌍둥이로 나오는 기획을 해보고 싶을 정도다. 연기 호흡, 성격, 레벨이 비슷해서 좋은 무드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손대리였던 재민은 고액 알바를 미끼로 취업 사기당한 대학생이다. 사기 쳤지만 제보 전화로 사건이 급물살 탄다. 재민 역의 공명과는 주로 전화로 연기를 주고받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실제 통화할 수 없어서 명이가 어떤 호흡으로 할까 상상하면서 했다. 중국에서 만나는 타이밍도 길지 않아서 그게 제일 아쉬웠다. (웃음) 명이가 군대 다녀오고 능청스러워졌다. 촬영 때는 누나들 사이에 있으면 뻘쭘해서 먼저 들어가 보겠다며 도망가더니, 지금은 다 받아칠 수 있다고 하더라”
-데뷔 20년 차 배우다. 다양한 역할을 거치며 역할에 거침없어 보인다. 덕희처럼 추진력을 발휘하고 용기를 내는 순간이 종종 있을 것 같다.
“사실 작품 할 때마다 용기를 낸다. 한 번도 만만했던 적 없었다. 촬영 전날까지 엄청나게 고민하고 촬영 직전까지 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준다. 도착해서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생각으로 임한다. 작품 할 때마다 떨린다기 보다 자신감이 붙지 않는다. 배우는 노출되면 될수록 본인을 태우면서 소진되는 직업이다. 경력이 쌓이면서 노하우가 생기고 편해지는 게 아니라. 소위 밑천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재미있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 안 보이면 잊히니까 일은 계속해야겠지만 일이 안 들어오면 또 불안하다. 제가 많이 놀아봐서 안다. 조금만 쉬면.. ‘이러다가 계속 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캐릭터에 다가가며 소진되는 게 배우라고 했다. 지치는 순간도 있을 텐데 에너지 충전은 어떤 식으로 할지 궁금하다.
“지친다기보다 운동을 안 하니까 체력이 떨어진 걸 체감한다.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요즘 라미란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소모되는 만큼 같은 루틴처럼 비우는 작업을 하려 한다. 작품 끝나면 싹 잊는다. 다시 리셋해야 한다. 캠핑하러 가서도 멍 때리면서 힐링하고 있다. 몸을 쓴다기보다 머리를 비우는 작업을 많이 한다”
-내가 나를 잘 모를 때는 주변에서 어떤 사람이라고 말해주지 않나. 본인은 소모되어 간다고 하지만 대중의 기대는 커지고 있다.
“안 그렇다. 살 빼야겠다고 걱정하면 ‘아니다. 괜찮다. 예쁘다’고 좋은 말만 해줘서 도움이 안 된다. (웃음) 그래서 칭찬보다 평가, 분석, 쓴소리해 주는 걸 환영한다. 요즘에는 또 다들 그런 말도 뜸하더다. 일부러 인터넷 댓글도 잘 찾아본다. 세세하게 분석해서 써 놓는 분도 있다. 이런 글을 봤을 때 연기 도움을 받는다. 더 나이 들면 그 나이에 맞는 캐릭터가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또 소재가 다양해지면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도 이미지에 갇히면 들어오는 역할이 한정되지 않나. 작은 역할도 괜찮겠나.
“제가 언제부터 주인공 했다고.. 조연, 주연 가리지 않는다. 지금도 활짝 열려 있다. 분량 차이를 떠나 좋은 작품이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 필요한 곳에 적재적소에 쓰이면 좋겠다. 그래야 오래 일할 수 있다. 다만 저와 너무 안 맞는 캐릭터가 제안 들어오면 못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젊은 배우가 할만한 로맨스? 그런 건 적어도 싱글인 사람이 하는 게 좋겠다. 싱글 캐릭터는 영화 <하이파이브>가 마지막이다 싶다 ”
-아마 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대본이 들어오는 게 아닐까. 스스로 배역에 제한 두는 건 아닌가.
“만약 예뻐야 한다면 살은 빼야 한다. (웃음) 저만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하고 싶다. 한다면 이 모습 그대로도 사랑스러워 보여야겠지. 상대방이 이 모습을 사랑해 줘야 성사되는 이야기라야 가능하겠다. 제 이미지나 느낌을 살려야 저도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무리해서라도 욕심나는 역할이면 할 거다. (웃음) 바짝 한 15kg 다이어트해서 완전히 다른 이미지도 선보이고 싶은데 당장은 무리일 듯싶다. 올해 목표로 잡고 길게 다이어트해야겠다. (웃음)”
-배우는 평생 직업이다. 앞으로 50, 60, 70대 배우가 될 거다. 어떻게 나이 들고 싶나.
“별다른 건 없지만 다양한 배역을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는 안일하게 기본 베이스를 가져다 썼다면, 50세가 되면 도전해 보려 한다. 앞서 말한 다른 이미지도 더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다이어트가 필수겠다”
-마지막으로 <시민덕희>를 볼 예비 관객분들에게 관람 포인트를 말해준다면.
“보이스피싱 당한 분들은 대부분 자책하고 부끄러워한다.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주변에 가깝게 다가온다. 또한 범죄 수법이 진화하는 만큼 우리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민덕희>를 보고 재미있으셨다면 경각심과 피해 사례를 주변에 공유해 주었으면 한다. 극장 문을 나설 때 기분 좋은 영화였으면 좋겠다”
글: 장혜령
사진: 쇼박스
- 감독
- 박영주
- 출연
-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장윤주, 이무생, 안은진, 이주승, 성혁, 정지호
- 평점
-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