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알려줌] <클로즈 유어 아이즈> (Close Your Eyes, 2023)

31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스페인 거장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신작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단순한 영화가 아닌,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헌사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은 1973년 <벌집의 정령>으로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황금조개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1983년 <남쪽>으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1992년 <햇빛 속의 모과나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 이후 31년간 그는 장편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그런 빅토르 에리세가 84세의 나이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의 모든 예술적 성찰이 응축된 걸작이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 역시 76회 칸영화제의 칸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받았다)
현대 마드리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노년의 영화감독 '미겔 가라이'(마놀로 솔로)가 자신의 미완성작 '작별의 눈빛'에 대한 기억을 회고하면서 시작된다.
영화 제작 중 주연 배우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훌리오 아레나스'(호세 코로나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 미스터리는 영화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은 "이야기는 실제 경험의 절반과 상상의 절반으로 이루어졌다"라고 밝혔는데, 그의 모든 영화가 그러했듯, 이 작품 역시 삶에 대한 그의 가장 내밀한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
특히 '정체성'과 '기억'이라는 두 개의 긴밀하게 연결된 주제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서사를 구축한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두 가지 다른 영화적 스타일이 교차한다.
하나는 분위기와 캐릭터에 있어 환영주의적 규범을 따르는 고전적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이 깊이 배어든 현대적 스타일이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은 이를 "전설의 보호 아래에서 삶을 있었던 그대로가 아닌 '있어야만 했던 모습'으로 그리는 이야기"와 "기억도 미래도 불확실한 표류하는 현대적 이야기"의 만남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는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한때 배우와 영화감독이었던 두 친구의 기억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였는지조차 모를 만큼 완전히 기억을 잃었고, 다른 한 사람은 최선을 다해 잊으려 하지만 숨어있음에도 과거와 그 아픔이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그의 작품들은 늘 '보는 것'과 '기억하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왔다.
<벌집의 정령>에서 어린 소녀가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보고 괴물을 찾아 헤매는 순수한 시선으로부터, <남쪽>에서 미완성으로 남은 영화 속 부녀의 관계, 그리고 <햇빛 속의 모과나무>에서 화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시간의 흐름까지, 이런 맥락에서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그의 예술적 여정의 정점이자 총체적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영화는 현대 미디어 환경에 대한 성찰도 담고 있다.
TV 아카이브에 보관된 기억들, 영화관에서 멀리 떨어진 '양철 관'에 보관된 필름들, 그리고 시청각 매체에 의해 사회적으로 전유된 유일무이한 이야기의 유령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경험을 유형의 기록으로 전환하려는 현대적 충동을 대변한다.
"눈을 감으세요. 그러면 영화가 다시 시작됩니다."
영화의 제목이자 마지막 장면을 관통하는 이 문장은, 디지털 시대에 잃어가고 있는 영화의 마법을 다시 한 번 믿어보자는 에리세 감독의 간곡한 제안처럼 들린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그렇게 우리에게 영화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기적 같은 선물이 됐다.
한편,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50년 전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벌집의 정령>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했던 아나 토렌트의 귀환이다.
당시 5살의 나이로 프랑코 독재 정권 하의 스페인을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아나 토렌트가, 이제는 실종된 배우의 중년의 딸 역으로 돌아왔다.
"마치 인생의 한바퀴를 돈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아나 토렌트의 소회는 이 영화가 지닌 시간과 기억의 순환적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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