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터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은 적의 공격이 아니라 아군 무기의 오작동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분쟁에서 태국군 전차 승무원들이 바로 그런 악몽을 경험했습니다.
적의 포탄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차 포신이 폭발하면서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차의 원산지는 다름 아닌 중국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가성비 전차'라는 수식어를 달고 여러 나라에 수출된 중국제 VT-4 전차의 주포가 사격 중 파열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중국 방산업체들의 신뢰도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가성비 전차의 불명예스러운 순간
VT-4는 중국이 자랑하는 3.5세대 수출용 주력전차입니다.
2017년부터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태국 세 국가에 수출되어 운용 중인 이 전차는 '세계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주력전차'라는 타이틀로 국제 무기 시장에서 주목받아 왔습니다.
특히 서방제 전차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준수한 성능으로 예산이 제한적인 국가들의 관심을 끌었죠.

태국은 원래 VT-4를 150대 도입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60~62대 정도만 운용 중인데, 1차 도입분만 들여오고 추가 도입을 중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도입 단계에서부터 태국군이 이 전차의 성능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500발의 짧은 수명, 그 치명적 한계
이번 포신 파열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VT-4 주포의 근본적으로 짧은 포신 수명입니다.
VT-4가 장착한 125mm 활강포는 중국이 1980년대 기술을 바탕으로 국산화한 것인데, 초기 버전이 수출용 차량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태국군 교범상 이 포신의 수명은 고작 500발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짧은 수명인지 비교해보겠습니다.
한국의 K1A1 전차가 사용하는 44구경장 120mm 활강포의 경우 정확한 수명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동일 규격의 서방제 포신들이 대략 1,200발 정도의 수명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제 포신은 서방제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명을 가진 셈이죠.
더욱 심각한 것은 측정 기준의 차이입니다.
서방제 120mm 활강포의 포신 수명 1,200발은 EFC(Equivalent Full Charge) 기준, 즉 날탄(APFSDS)처럼 약실압력이 가장 높은 탄약만 쏠 때의 수명을 의미합니다.
반면 중국제 포신의 500발은 날탄, 대전차고폭탄, 일반 고폭탄을 대략 4:3:3 비율로 혼합해서 쏠 때의 수명입니다.
실제 전투에서 날탄 위주로 사격한다면 포신 수명은 더욱 짧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틀간 200발, 과연 과도한 사격이었나
이번 교전에서 문제가 된 전차는 이틀 동안 약 200발의 포탄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평상시 훈련과 비교하면 상당히 집중적인 사격이긴 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 정도가 포신을 파열시킬 만큼 가혹한 사격 밀도였을까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우선 이틀간 200발이라는 숫자 자체가 포신 수명 500발의 40%에 해당하긴 하지만, 실제 전투 상황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더욱이 태국군이 발사한 포탄의 대부분은 약실압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폭탄(HE)이었습니다.
캄보디아와의 교전이 주로 요새화된 진지나 건물을 상대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장갑 관통력이 높은 날탄보다는 폭발력이 강한 고폭탄이 주로 사용된 것입니다.
고폭탄 위주의 사격이었다면 포신에 가해지는 부담은 날탄을 쐈을 때보다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사격 밀도 때문에 포신이 조기 마모되어 파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개별 불량품인가, 구조적 결함인가
그렇다면 이번 사고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몇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해당 포신만의 제조 불량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속 재질의 문제나 열처리 과정에서의 하자로 인해 특정 포신만 내구성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포신 자체의 품질과는 별개로 정비나 관리상의 문제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포신 내부 청소 불량, 부적절한 탄약 보관, 혹은 과열된 포신을 충분히 식히지 않고 연속 사격을 계속한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인데, VT-4 전차 포신의 구조적 설계 결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기술을 바탕으로 한 국산화 과정에서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었다면, 이는 태국군이 운용 중인 다른 VT-4 전차들도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교전에 투입된 다른 VT-4 전차들은 비슷한 양의 사격을 했음에도 포신 파열 문제를 겪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개별 불량품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게 하지만, 동시에 품질 관리의 일관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중국 방산 수출의 아킬레스건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대의 전차 고장 사고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방산업체들이 그동안 강조해온 '가성비'라는 강점이 오히려 '저품질'이라는 인식으로 바뀔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차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승무원의 생명을 책임지는 이동 요새입니다.
적의 포탄은 막아내야 하지만, 자신의 무기가 승무원을 다치게 한다면 그보다 치명적인 신뢰도 추락은 없습니다.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안전성과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도 선뜻 구매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태국이 당초 계획했던 150대 대신 60여 대만 도입하고 추가 구매를 중단한 것도 이러한 우려가 반영된 결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은 VT-4 외에도 VN-1 장갑차, 함정, 무인기 등 다양한 무기를 태국에 수출해 왔는데, 이번 사건이 전체 중국제 무기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방산업계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 방산 시장의 지각변동 예고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저렴한 가격과 정치적 조건 없는 수출을 무기로 제3세계 방산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해왔습니다.
특히 서방제 무기를 구매하기 어려운 국가들이나 예산이 제한적인 국가들에게 중국제 무기는 매력적인 대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싸지만 믿을 수 없는 무기'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방산 시장에서 한번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실전에서 발생한 결함은 아무리 해명해도 지워지지 않는 흑역사로 남기 마련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 방산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K2 흑표 전차로 대표되는 한국제 전차들은 중국제보다는 비싸지만 서방제보다는 저렴하면서도 신뢰성이 검증된 '중간 지점'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폴란드가 K2 전차를 대량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이번 사건의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국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더 이상 방산 시장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승무원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전차는 아무리 저렴해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