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 하나로 미디어 그룹을 만든 저널리스트 지망생의 전략 - 아에루

제조, 소매, 컨설팅, 교육, 호텔, 테마파크 등. 수십년 된 대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아니에요. 2012년에 시작한 ‘아에루’가 약 10여년 동안 전개해 온 사업들이에요. 하나의 분야에서 오랜시간 해도 잘하기 어려운데,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컬래버레이션으로 사업을 키워왔기 때문이에요. 다만 컬래버레이션의 대상이 독특해요. 잘 나가는 회사들이 아니라, 점점 외면 받는 전통 제품 혹은 장인들과 협업을 하죠. 1990년 이후 4분의 1 이상의 장인들이 사라져버린 전통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예요. 취지야 좋은데, 그렇다면 아에루의 본업은 무엇일까요?

아에루의 대표는 의외의 답을 내놓아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업의 정의예요. 그런데 듣고 나면 설득력 있어요. 아에루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아에루 미리보기
전통을 깨우러 전국을 돌아다니는 콜라보의 탄생
#1. 물건이 아니라 일본을 파는 가게
#2. 전통을 알리려는 회사가 ‘사장님 대출’까지 하는 이유
#3. 전국에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을 심다
스스로 미디어 그룹이 된 저널리스트 지망생

2019년,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움직이는 건축물(moving architecture)’이 탄생했어요. 건축물이란 본래 땅 위에 정착해있어야 하는 법인데 움직일 수 있다니, 대체 어떤 건축물일까요? 게다가 일본 4세대 건축가를 대표하는 구마 겐고의 작품이라고 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죠. 그의 모든 건축에는 다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구마 겐고의 새로운 작품은 다름 아닌 신발이었어요. 호텔, 경기장, 도서관 등 대형 건축물에 비해 스케일이 턱없이 작아진 신발을 디자인한 거죠. 패션업 종사자도, 신발 디자이너도 아닌 건축가가 만든 신발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니 그전에, 구마 겐고는 어쩌다 신발을 설계하게 되었을까요? 이 소식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어요.

이번 작품은 스포츠브랜드 아식스(asics)의 의뢰로 시작됐어요. 컬래버레이션이었죠. 신발 ‘METARIDE AMU’ 디자인이 공개되던 날, 사람들의 물음표는 곧장 느낌표로 바뀌었어요. 스케일은 줄어들었을지언정 작은 신발 안에 구마 겐고의 철학과 색깔이 제대로 담겨있었거든요. 물론 아식스의 정체성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요.

야타라아미 기법을 활용한 동시에 측면에 asics 스트라이프는 그대로 남겨둔 디자인. 나무에서 파생된 섬유 소재인 셀룰로스 나노섬유를 미드솔 폼에 사용함 ⓒasics

‘METARIDE AMU’의 디자인 모티브는 일본의 전통 죽세공 기법 ‘야타라아미(やたら編み)’예요. 대나무를 쪼개서 잘라낸 뒤 엮어내는 기법이죠. 구마 겐고는 예전부터 면이 아닌 선을 사용해서 공간을 만든 다음, 그 안에 빛이나 바람을 끌어들이고 싶어했어요. 야타라아미는 그것을 실현하는 알맞은 수단이었고요. 신발을 디자인할 때도 선을 활용해서 내추럴한 느낌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식스의 스트라이프 마크를 발전시킨 패턴을 만들었죠. 이 패턴은 건축으로 치면 구조체(뼈대)예요.

ⓒthe fashion post
ⓒcasa brutus

물론 이 패턴은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동시에 약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건축물도, 신발도 구조적인 튼튼함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디자인은 기능성이 떨어진다고 오해할 수 있죠. 하지만 구마 겐고는 선을 여러 개 모으면 강도가 높아진다고 말해요. 선의 집합체는 섬세함과 튼튼함을 보장하죠. 그래서 이 신발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발을 잡아준다는 면에서 기능적으로도 훌륭해요.

이쯤 되면 생기는 의문이 있어요. 아식스는 왜 건축가에게 디자인을 의뢰했을까요? 마케팅 목적의 콜라보라면 운동선수나 패셔니스타 등 선택지가 다양했을텐데 말이에요. 구마 겐고는 지금까지 신발을 디자인한 이력도 없고요. 게다가 건축과 신발은 딱히 접점이 없어 보여요. 이때 구마 겐고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줘요. 운동화와 건축에는 공통분모가 있다고요. 건축이 대지와의 연계성이 중요한 것처럼, 인간도 대지와 잘 연결되어야 편안함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원래부터 운동화에 관심이 많았죠.

막상 컬래버레이션을 시작하니 건축과 신발은 3가지 측면에서 접점이 더 또렷했어요. 먼저 접근 방식. 건물을 설계하려면 인간의 신체구조나 움직이는 방식을 필수로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인체공학적 접근 방식은 신발 디자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요. 또한 설계에 관한 사상도 유사했어요. 구마 겐고는 평소에, 건축이 사람의 의복이나 신발에 더 가까워져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의 건축은 너무 크고 딱딱해서 인간과 거리가 있었죠.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발을 감싸는 신발은 건축 설계의 미래상과 공통점이 있었죠. 마지막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소재도 닮았어요. 사회가 건축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자연 소재가 중요해졌는데, 사용하고 싶었던 셀룰로스 나노 섬유(나무 섬유질)를 아식스는 이미 사용하고 있었죠. 이렇게 보니 운동화 디자이너와 건축 디자이너가 ‘같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구마 겐고의 말이 이해가 가요.

결국 서로 다른 세계처럼 보였던 아식스와 구마 겐고의 컬래버레이션은 다 이유있는 만남이었어요. 접근 방식, 설계 사상,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까지 비슷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컬래보레이션은 단순히 기업과 개인의 만남이기보다는 철학과 철학의 만남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전통을 깨우러 전국을 돌아다니는 아이의 탄생

이처럼 컬래버레이션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만남도 가능해요. 기업끼리도, 개인끼리도, 심지어 철학끼리도 만날 수 있죠. 중심 축만 튼튼하다면 얼마든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게 컬래버레이션의 곱셈이 가진 힘이에요. 교토에는 이 곱셈의 힘을 극대화한 기업이 있어요. 그런데 좀 독특한 만남을 기획하죠. 시대 간의 컬래버레이션, 키워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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