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단죄하는 ‘디지틴’… “관용없는 폐쇄사회 될판”
“내 잘못” 인정해도 용서않는 현상… “합리적 의견대립 아닌 몰아가기
숙고보다 ‘악인’ 비난-처벌 고착… 자유로운 의견표출 어려워질 것”
사회적 논란이 된 유명인을 사적으로 단죄하려는 대중의 ‘디지틴(digital guillotine·디지털 단두대)’ 현상이 점차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인물, 기업을 보이콧함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인 ‘캔슬 컬처(cancel culture)’ 현상이 즉각적 처벌, 집단 공격으로 과격성이 커진 것. 당사자가 “내 잘못”이라고 밝혀도 용서하는 모습을 찾아보긴 어렵다.
앞서 올 5월에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에서 촬영한 콘텐츠 속 지역 비하 발언으로 단두대에 올랐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영양 지역축제 기간에 맞춰 홍보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 중이지만 사태 이후 ‘구독 취소’를 결정한 구독자 수는 약 32만 명에 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디지틴의 타깃은 연예인을 넘어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으로 넓어지는 추세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에서 주로 이뤄지는 디지틴은 확증편향, 일반화의 오류로 이어지기 쉽다. 자신이 가진 정보와 의견을 무기로 공적 제재, 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사적인 처벌을 내리고 있는 것”이라며 “취업, 주거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악화하면서 젊은층이 더욱 공정성에 매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지틴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 대중의 주목도를 빠르게 높이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속결 처단에 급급해 숙고보다는 찬반 여론에 따라 ‘악인’으로 몰아가고 이를 비난하고, 처벌하는 추세로 고착화되고 있다. 특히 구독자 수와 조회 수 등이 수익과 직결돼 있고, 연예 기사 댓글이 제한된 포털사이트와 달리 노골적인 댓글을 달기 쉬운 SNS 특성상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은 사과를 강요받는 압박에 시달리기 쉽다.
유튜브 채널 ‘싱글벙글’은 올 6월 “안마기가 좋으면 뭐 하니, 군대 가면 쓰지를 못하는데”라며 웃는 영상으로 ‘군인 조롱’ 논란을 샀다. 그러나 이는 군인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진 못한 채 채널 측의 사과와 영상 삭제에 그쳤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최근 디지틴은 합리적 의견 대립이 아닌 집단적 몰아가기 양상을 띠면서 오히려 본질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 되고 있다”며 “정치, 사회적으로 중대한 문제에 대한 의견 개진이 어려운 사회 구조로 인해 사소한 문제에도 과격하게 결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가 유명인에게 유독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재근 사회문화평론가는 “서구권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대중의 도덕적 잣대가 엄격한 나라 중 하나”라며 “정답과 오답을 가르기 급급한 입시 교육의 영향,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집단주의적 사고 등의 영향으로 인해 사실관계를 면밀히 따지기보다 우선 심판부터 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마저 부정하는 분위기는 결국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평론가는 “경중에 따라 실수를 용인하고 만회할 기회를 제공해야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며 “또한 지나친 자기 검열이 강화된다면 개개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기 어려운 사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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