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펜 학습지 회사가 '100조' 일본 요양산업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
[시니어 하우징 멘토를 만나다] 김정은 숭실사이버대 교수 “한국은 요양산업 규제 빗장… 요양 서비스 인식 20년 전 수준”
[땅집고] 베네세 홀딩스의 자회사인 베네세스타일케어는 유료뇨인홈, 즉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요양서비스 사업을 펼치고 있다. 1995년에 요양보호사를 대상으로 하는 통신교육으로 시작하여 1997년에 9명 규모의 그룹홈을 개설했다. 현재는 도쿄·오사카 등 일본 전역에서 요양시설을 운영 중이다.
김정은 숭실사이버대 요양복지학과 교수는 2005년부터 8년 반 동안 일본 베네세에서 근무했다. 그가 입사할 당시 베네세 요양시설은 100곳이 채 안됐다. 그런데 지금은 한달에 한 곳 꼴로 개소해 일본 전역에 360곳이 넘는다. 그는 베네세 요양시설 중 하이엔드인 ‘아리아’와 중산층 입주율이 높은 ‘마도카’ 시설장으로 재직했다.
‘빨간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통신교육 회사 일본 베네세가 요양 산업을 장악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기업의 적극적인 의지와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며 “한국은 요양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15~20년 전에 머물러 있어 ‘한국판 베네세’가 현실적으로 나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고 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베네세가 요양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베네세 홀딩스는 교육 사업을 하는 회사였다. ‘빨간펜’ 그러니까 통신 첨삭·지도 교육을 했던 원조 기업이다. 그런데 저출생·고령화가 진전이 되고 인구 구조가 변하면서, 아무래도 학령기 아동이 줄고 더 이상 교육 사업으로만 지탱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때 다음 성장의 동력으로 삼은 게 시니어 사업이다. 어느 기업이든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오너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베네세 같은 경우에도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본인 할머니 케어의 경험을 이 사업에 녹여냈다.”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나
“요양시설은 아리아, 그라니&그란다, 봉세주르, 크라라, 마도카, 코코 등 6개 시리즈로 나눠 운영 중이다. 우선 월 이용료가 다르다. 입지 조건에 따라 가격 편차가 있다. 선호도가 높은 도심권, 고급주택가에 들어선 요양시설은 이용료가 비싸다. 요양보호사 인력 배치 기준도 상이하다. 법적 기준은 이용자 3명당 요양보호사가 1명인 3대1 비율이다. 요양보호사가 이보다 더 많을 경우 요양 서비스가 좋아질 수밖에 때문에 인력을 추가로 배치한 곳은 이용료가 더 비싼 구조다.”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요양시설 이용자 수는 평균 60~70명 정도다.”
-100명 이상이면 더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지 않나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이용자를 파악하고 적합한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100명 이상의 규모가 큰 시설을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을 내렸다. 규모가 커지면 일하는 직원도 많아지고 관리의 측면에서도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현재 베네세는 60~70명 인원을 고수하고 있다. 개별 시설의 규모를 키우기 보다 시설의 개수를 늘리는 전략을 택한 것 같다.”
-베네세 요양시설 중 시설장으로 재직했던 곳은 어디인가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쿄 ‘아리아’와 마도카에 있었다. 아리아 요양시설의 보증금은 2억~7억원 선이다. 입지 조건에 따라 다르다. 도쿄 중심지인 롯본기 같은 곳의 아리아 이용료가 가장 비싸다. 제가 시설장으로 있었던 곳은 보증금 2억5000만원 정도, 월 이용료는 300만원이다. 여기는 24시간 간호사가 상주한다. 의료 의존도가 높은 분들의 임종 케어까지 가능한 시설이다.”
-일본 요양산업을 장악한 비결은?
“베네세는 서비스 마인드에 대한 굉장한 투자를 한다. 비용 부담이 클 수는 있어도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자부심이 크다. 특히 모태가 교육회사다 보니 교육에 진심이다. 직원들 대상으로 연간 500회 이상 교육을 한다. 모든 직원은 1년에 한 번 반드시 들어야 하는 서비스 마인드 교육이 있다. 시설장, 중간관리자, 신입 직원 모두 해당한다. 서비스 관련 매뉴얼도 계속 갱신한다. 이용자 개인에 대한 돌봄 계획도 굉장히 세밀하다. 베네세 만의 서비스가 주목 받는 이유다.”
-한국 진출도 검토를 했지만 무산된 걸로 안다
“2013년 베네세 본사 경영기획실 소속 당시, 베네세 자회사를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한국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기 때문에 한국 시장 진출을 계획했다. 그런데 시장 규모 자체가 일본에 비해서 굉장히 작았고, 민간기업이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규제가 상당히 많았다. 일례로 10명 이상의 어르신을 모시는 시설을 운영하려면 사업자가 반드시 토지와 건물을 소유를 해야 한다. 임대 형태로는 안 된다. 국내에 진출하지 못한 가장 큰 요인이다.”
-베네세는 일본에서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임대로 쓰나
“그렇다. 건물주는 따로 있다.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지으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투입된다. 서울에서도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부지를 매입하고 사업을 추진하려면 초기 비용 부담이 크다.”
-다른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베네세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선 이용자의 취미 등과 관련한 옵션 서비스를 상당히 많이 제공한다. 한국에서는 이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비급여 항목으로 미용이나 식재료비, 상급 침실 이용료 정도 밖에 포함이 안 된다. 일본에서는 이용자의 초점에 맞춰 옵션 서비스를 많이 제공하는데 반해 비급여 항목 제한이 많아 한국 진출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의 베네세가 없는 이유는 뭘까
“민간 기업은 영리 추구가 목적이다. 요양사업이 블루오션은 맞다. 다만, 사업성이 확보가 되는 모델이 나오지 않는 이상 접근하기 힘든 시장이다. 일본의 개요보험과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제도 자체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점이 굉장히 많다. 민간 기업이 건전한 이익을 내기 위해서 규제가 풀려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이 16년이 지났지만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이게 일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글=박기홍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