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팬알기] ⑫KS ‘최고’ 승률 우승과 ‘최저’ 승률 우승의 진기한 역사

『2024시즌 일본시리즈(7전4선승제) 챔피언 트로피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 돌아갔다. 3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6차전에서 11-2로 이겨 4승2패로 1998년 이후 26년 만에 패권을 되찾았다. 요코하마의 우승은 정규시즌 센트럴리그 3위이자, 역대 최저 승률(0.507・71승3무69패) 팀의 반란으로 큰 화제를 모은다.』 <2024년 11월 4일 스포츠동아>

최근 일본프로야구(NPB)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가 일본시리즈 정상에 오르면서 한·미·일 프로야구의 포스트시즌도 모두 종료됐다.
일본시리즈에서 가장 눈길을 모은 대목은 요코하마가 센트럴리그 3위로 가을야구 무대에 올라 상위팀들을 줄줄이 물리치고 판을 뒤엎는 ‘업셋(upset) 우승'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역대 일본시리즈 진출 팀 중 정규시즌 최저 승률(0.507)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썼다. 이 흥미로운 ‘하극상 우승’ 스토리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한국시리즈 역사는 어떨까. 정규시즌 3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사상 최저 승률로 ‘업셋 우승’에 성공한 주인공이 있다. 바로 2001년의 두산 베어스다.
그렇다면 역대 한국시리즈 진출 팀 중 정규시즌 최고 승률로 우승한 팀은 어디일까. 이 역시 1982년 OB 베어스 구단이다.
[베팬알기-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기록 이야기]는 요코하마의 ‘하극상 V’를 계기로 역대 최저 승률과 최고 승률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동반 달성한 진기한 역사를 되돌아본다.

◆ 10승 투수 없이 한국시리즈 우승한 2001년의 반란
“어떻게 우승까지 했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
2001년 두산 베어스의 우승을 이끈 김인식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되고 난 뒤 이처럼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그해 두산에는 10승 투수가 단 1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페넌트레이스 65승63패1무로 승률은 0.508. 만약 승리한 1경기를 졌다면 정확히 0.500의 승률을 기록할 뻔했다. 그러면서 정규시즌 3위를 차지했다. 당시엔 8개 구단 체제여서 4위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을 얻었고, 준플레이오프가 가을야구의 첫 관문이었다.
선발 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선발 로테이션이 무너지면서 돌려막기로 시즌을 완주할 수밖에 없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한 번이라도 선발등판한 투수는 모두 14명이나 됐다.
팀 내 최다승 투수가 9승을 기록한 진필중. 그해 마무리투수였다. 팀으로 봐도 시즌 65승 중 절반에 가까운 29승이 구원승으로 채워졌다. 포스트시즌에서도 9승 중 선발승은 2승밖에 없었다.
부족한 선발은 불펜으로 메우고, 10점을 주면 11점을 뽑는 식으로 이겨나갔다. 가을야구에 접어들어서도 김인식 감독의 절묘한 투수 교체로 약점을 메우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 2001년 두산…0.508 승률로 판을 뒤엎다
2001년 가을야구에 진입한 두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준플레이오프(3전2선승제)에서 4위 한화를 2승0패로 꺾었다. 한화는 1999년 우승팀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5전3선승제)는 2위 현대를 3승1패로 격파했다. 현대는 2000년 우승팀이었다.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에서는 삼성을 만났다. 삼성은 그해 정규시즌 82승52패로 최고 승률(0.609) 팀이었다. 페넌트레이스 1위 삼성과 3위 두산은 무려 13.5.게임차나 났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치러 한국시리즈에 올랐기에 이미 기진맥진해진 상황. 특히 마운드가 고갈됐다. 1차전을 4-7로 패했다. 1차전만 보고도서 대부분 역부족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2차전을 앞두고 단비가 왔다. 꿀맛 같은 하루 휴식이 주어졌다. 기운을 차린 두산은 2차전을 9-5로 잡고 3차전에서 난타전 끝에 11-9 승리를 거뒀다. 이어 4차전에서는 그보다 더 격렬한 난타전 끝에 18-11로 이기면서 3승1패로 앞서나갔다.
두산은 5차전을 4-14로 내줬지만 6차전에서 3-5로 끌려가던 경기를 경기 후반 6-5 뒤집기 승리로 장식하면서 기적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KBO 역사상 단일시리즈로 진행된 1989년 이후 정규시즌 4위 이하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정규시즌 3위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게 '업셋 우승'의 마지노선. 역대로 딱 세 차례밖에 없었다. 1992년 롯데가 최초였고, 2001년 두산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2015년 두산이 세 번째 역사를 썼다.
그중 2001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역대 최저 승률(0.508) 우승과 함께 정규시즌 1위와 역대 최다 게임차를 뒤집은 우승 사례여서 더욱 각별하다.
1992년 롯데는 정규시즌 1위 빙그레와 11게임차였고, 2015년 두산은 정규시즌 1위 삼성과 9게임차였다.

◆ ‘사상 최대의 하극상’ 한국시리즈 우승의 역사
KBO 한국시리즈 역사를 보면 정규시즌 승률 0.550~0.649 사이의 팀이 대부분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정규시즌을 우승할 수 있는 일반적인 범주에 있는 승률이다. 1982년부터 2024년까지 42차례 열린 한국시리즈(1985년 삼성은 통합우승으로 제외)에서 이 구간의 승률을 기록한 팀이 32차례(76.2%)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극히 드물게 정규시즌 승률 0.549 이하와 0.650 이상을 기록한 팀이 우승하는 사례도 있다. 각각 5차례씩 분포한다. 전력이 강한 팀이 우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하지만 0.549 이하의 승률로 우승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역대 0.549 이하 승률로 우승한 5번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2001년 두산 베어스가 역대 가장 낮은 0.508의 승률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달했다. 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미·일 프로야구를 통틀어 정규시즌 최저 승률로 우승한 기록이었다. 올해 요코하마(0.507)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 부문 역대 2위는 1984년 롯데 자이언츠(0.510), 3위는 1987년 해태 타이거즈(0.532)로 집계된다. 하지만 1984년 롯데와 1987년 해태가 우승할 당시에는 페넌트레이스가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뉘어 진행돼 단일시즌제(1989년 이후)의 현행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1984년엔 전기리그 우승과 후기리그 우승 2개 팀에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이 주어졌다. 롯데는 전기리그에서 21승28패1무(승률 0.429)를 기록하면서 6개 구단 중 4위에 그쳤지만, 후기리그에서 29승20패1무(승률 0.592)로 우승을 차지해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한국시리즈에서 에이스 최동원 혼자 4승(1패)을 올리면서 삼성을 4승3패로 꺾고 구단의 첫 우승 역사를 썼다.
1985년 삼성이 전·후리기를 통합우승하면서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팀이 가려지자 1986년부터 포스트시즌 제도에 손질이 가해졌다.
▲전·후기리그 1, 2위 팀에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부여하되 ▲전·후기리그에 걸쳐 티켓 두 장을 쥔 팀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나머지 두 팀이 플레이오프를 거행하며 ▲티켓을 가진 팀이 모두 다를 때는 전기 1위-후기 2위, 후기 1위-전기 2위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는 내용이었다.
1987년에는 삼성이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해태는 전기리그에서 3위(27승25패2무)에 그쳤지만 후기리그에서 2위(28승23패3무)에 올라 턱걸이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었다.

해태는 플레이오프에서 OB에 3승2패로 이긴 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승무패로 꺾고 구단 역사상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대구 원정에서 1~2차전을 잡고 광주에서 3~4차전을 싹쓸이했다(1987년은 올해 KIA 타이거즈가 우승하기 전까지 유일하게 안방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사례로 남아 있었다).
1984년 롯데와 1987년 해태에 이어 역대 최저 승률팀의 우승 역사를 살펴보면 2008년 SK 와이번스(0.545)가 4위, 2015년 두산 베어스(0.549)가 5위에 자리하고 있다.
KBO 역사상 정규시즌 승률 5할5푼 미만의 팀이 우승한 것은 이와 같이 5개 팀이 전부다.

◆역사상 유일! 7할 승률팀의 KS 우승
이처럼 정규시즌에서 5할5푼 미만의 승률을 기록한 팀이 우승하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없지만 6할5푼 이상의 승률로 우승하는 것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KBO는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전·후기리그 제도로 페넌트레이스를 운영했는데 지금까지 한 시즌 7할대 승률을 기록한 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건 딱 한 팀밖에 없다. KBO 원년인 1982년의 OB 베어스였다.

OB는 1982년 전기리그에서 29승11패(승률 0.752)로 우승한 뒤 후기리그에서 27승13패(승률 0.675)로 2위에 올랐다. 전·후기리그를 합친 종합승률은 정확히 0.700(56승24패). 그해 한국시리즈에 올라 후기리그 우승팀 삼성을 4승1무1패로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 팀 중 최고 승률 2위는 2000년 현대 유니콘스다. 91승40패2무로 승률 0.695였다. 이는 단일시즌제를 채택한 1989년 이후 최고 승률 우승팀 기록이다.
그 뒤를 이어 2008년 SK 와이번스(0.659), 1993년 해태 타이거즈(0.655), 2016년 두산 베어스(0.650)가 각각 3~5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삼성 라이온즈는 비운의 팀이다. 정규시즌 6할5푼 이상을 기록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오른 사례가 두 번 있었는데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1982년 전·후기리그 종합승률 0.675를 기록했지만 OB 베어스에 초대 챔피언 자리를 내줬고, 1986년에도 0.654로 그해 최고 승률을 올렸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1승4패로 패퇴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다만 1985년 한국시리즈를 없애고 전·후기리그를 통합 우승할 당시 작성한 승률 0.706(77승32패1무)은 현재까지 KBO 역대 한 시즌 최고 승률 기록으로 남아 있다.

◆ ‘압도적’ 최고 승률 우승과 ‘낭만적’ 최저 승률 우승의 서사
한국시리즈 우승은 가을날에 하늘이 점지해주는 선물이다. 때론 운이 작용하기도 한다. 한 시즌 최고 승률을 올리고도 하극상의 희생양이 돼 우승을 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는가 하면, 2001년 KBO의 두산 베어스(0.508)와 2004년 NPB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0.507)처럼 반타작을 갓 넘는 승률로 우승의 열매를 따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강팀이 우승한다’는 건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진리다. 이처럼 압도적 포만감이 넘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싸워야하는 불리함을 딛고 전개된 언더독의 우승 반란 역시 잊을 수 없는 낭만적 서사다.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압도적 승률로 우승한다는 것.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최저 승률로 우승하는 것. 그런데 베어스는 이 두 가지의 추억과 역사를 함께 가지고 있는 구단이다.
가치 없는 우승이란 없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