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페디의 변신, 화이트삭스의 선택

에릭 페디 (워싱턴 SNS)

2년 전 에릭 페디(31)는 메이저리그 최악의 투수였다.

2022년 27경기 선발 성적이 6승13패 평균자책점 5.81이었다. 단순히 한 시즌만 부진한 것도 아니었다. 2021년 평균자책점도 5.47에 불과했던 페디는, 2021-22년 도합 평균자책점이 5.64였다. 250이닝 이상 던진 83명 중 두 번째로 나빴다(패트릭 코빈 ERA 6.05).

평균자책점은 투수가 제어하지 못하는 요소도 개입된다. 그래서 투수가 직접 관여하는 탈삼진과 볼넷, 홈런만으로 계산한 평균자책점이 FIP다.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으로 외부 환경 중 하나인 수비를 배제한 지표다. 페디는 투수 개인 능력에 더 초점을 맞추는 이 FIP도 좋지 않았다. 2020-22년 도합 FIP 순위에서 최하위였다(300이닝 이상).

5.02 - 조던 라일스
5.04 - 매디슨 범가너
5.10 - 에릭 페디


페디는 중대 기로에 섰다. 이대로는 메이저리그 커리어 단절이 시간 문제였다. 마이너리그에 내려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 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도 우선 순위는 젊은 유망주들이었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한계를 노출한 페디가 인식을 바꾸는 건 매우 어려웠다. 페디로선 더 극적인 '신의 한 수'가 필요했다.

그렇게 페디는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20승6패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했다. 180.1이닝을 던지는 동안 삼진 209개를 잡았다.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를 차지한 투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선동열(4회)과 류현진, 윤석민(이상 1회)에 이은 네 번째로, 20승과 200탈삼진을 동시에 해낸 외국인 투수도 페디가 처음이었다. 정규시즌 MVP와 투수 골든글러브는 모두 페디의 몫이었다.

에릭 페디 (NC 다이노스 제공)

페디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KBO리그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활약은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발판이 됐다.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2년 1500만 달러 계약을 보장했다. 이 계약은 스토브리그 동안 허리띠를 졸라맸던 화이트삭스의 가장 큰 투자였다.

한국에 오기 전 페디는 싱커와 커브, 커터를 주로 던졌다. 주무기는 커브였지만, 레퍼토리의 핵심은 변형 패스트볼이었다. 변형 패스트볼은 땅볼 유도와 강한 타구 억제를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페디의 변형 패스트볼은 이 역할을 하지 못했다. 특히 2022년에 던진 싱커는 허용한 평균 타구속도가 90.6마일이었다. 95마일 이상 강한 타구를 허용한 비중이 49.1%로 절반 가까이 됐다. 싱커로 허용한 피홈런도 결코 적지 않았다.

2021-22년 싱커 최다 피홈런

23 - 패트릭 코빈
22 - 잭 데이비스
22 - 션 머나야
21 - 드류 스마일리
18 - 에릭 페디


한국에서 페디는 레퍼토리에 커다란 변화를 줬다. 지금까지 던지지 않았던 스위퍼를 장착했다. 스위퍼는 기존 슬라이더보다 수평 움직임이 더 두드러진다. 여기에 메이저리그에서 거의 던지지 않았던 체인지업 비중을 늘렸다. 2022년 체인지업 비중이 3.6%밖에 되지 않았는데, <스탯티즈>에 따르면 KBO리그에서 체인지업 비중은 12.6%로 상승했다.

페디는 어떻게 환골탈태 할 수 있었을까. 페디의 변신은 애리조나에서 시작됐다. 페디는 한국으로 오기 전 애리조나에 있는 피칭 연구소를 방문했다. 'Push Performance'로 불리는 곳이었다. 참고로 페디는 이전까지 외부 시설을 가본 적이 없었다.

'Push Performance'는 최신식 시스템을 기반으로 선수에게 적합한 메카닉과 구종 정보를 제공한다. 국내 구단들에게도 잘 알려진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 같은 곳이다. 'Push Performance'의 차별화는 물리 치료 전문 업체(Next Era)와의 협업으로 빠른 회복을 돕는 것이다. 분야를 나눠서 다루기 때문에 주어진 과제를 보다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이곳에서 페디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뜯어 고쳤다. 메카닉을 조정하고, 그립을 바꿨으며, 손목의 위치도 수정했다. 훈련법도 달리 했다. 'Push Performance'를 이끄는 D J 에드워드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페디에게 먼저 권한 건 웨이트 훈련"이라고 밝혔다. 좋은 공을 던지려면 좋은 몸부터 갖춰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외부 시설이 항상 효과를 거두는 건 아니다. 다녀와서 기량이 그대로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Push Performance'의 커리큘럼은 페디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기술적인 부분을 비롯해 어깨 상태가 건강해지면서 구속을 회복한 것도 만족스러웠다. 페디가 'Push Performance'에서 느낀 유일한 아쉬움은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다"는 타이밍이었다.

'Push Performance'를 통해 한 단계 발전한 페디는 KBO리그를 평정했다. 이제는 메이저리그에서 증명해야 할 때다. 상위 레벨에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가 관심사다.

딜런 시즈 (화이트삭스 SNS)

페디가 몸담게 된 화이트삭스는 지난해 마운드가 완전히 무너졌다. 시즌 중반 랜스 린과 루카스 지올리토가 트레이드 되면서 제대로 된 선발투수는 딜런 시즈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즈도 2022년 사이영상 2위 투수로서의 위용을 잃었다. 탈삼진 능력은 여전했지만, 제구가 너무 들쑥날쑥했다. 지난 2년간 157볼넷은 메이저리그 투수 중 최다, 21폭투는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오타니 쇼헤이 26폭투). 1선발로 믿기엔 기복이 너무 심했다.

이번 겨울 화이트삭스는 표면적으로 리빌딩에 착수했다. 조건만 맞으면 시즈까지 트레이드 할 수 있다는 계획이다. 만약 시즈가 떠나면 상위 선발은 페디가 맡아줘야 한다. 페디로선 성적 부담이 덜한 팀으로 왔지만, 팀 내 입지를 고려하면 어깨가 무겁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화이트삭스에서 보탬이 될 것이다. 한국에 오기 전 페디는 그저 자국에서 뛰는 평범한 선수였다. 심지어 프로에 입단한 이후 소속팀을 옮긴 적도 없었다. 모든 것이 편하고 익숙했다. 반면, 한국에서 페디는 '이방인'이었다.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다. 새로운 리그에 적응해야 될 뿐만 아니라 문화와 언어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다행히 페디는 이러한 과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미국에 있을 당시 중남미 선수들의 고충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더 큰 선수가 된 동시에 더 넓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때마침 화이트삭스는 중남미 선수들이 전력의 주축이다. 루이스 로버트 주니어와 엘로이 히메네스, 요안 몬카다, 데이비 가르시아 등 올해 열쇠를 쥔 선수들이 모두 중남미 출신이다. 이들과의 호흡이 중요한 상황에서 페디의 리더십도 주목되고 있다.

화이트삭스는 페디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 확신에 힘을 실어준 인물이 브라이언 배니스터 피칭 수석 고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피칭 디렉터로 일했던 배니스터는 작년 9월에 화이트삭스로 이동했다.

배니스터는 페디가 화이트삭스와 계약하자 페디의 'Push Performance' 일화를 소개했다. 페디가 워싱턴 시절에 던지지 않았던 스위퍼와 스플릿 체인지업 조합을 익혔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배니스터는 페디 이전 'Push Performance'에서 이같은 조정을 거친 투수를 언급했다. 샌프란시스코 1선발 로건 웹이었다.

로건 웹 (샌프란시스코 SNS)

웹은 데뷔 첫 두 시즌 21경기(19선발) 평균자책점이 5.36이었다. 그리고 레퍼토리를 전면 개조했다. 2021년부터 포심 패스트볼 비중을 줄이고 싱커와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앞세웠다. 페디와 비슷한 레퍼토리다. 이 변화를 겪은 웹은 2021년부터 괄목상대했다. 지난 시즌에는 11승13패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하고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올랐다.

2021-23년 NL 투수 승리기여도

17.3 - 잭 윌러
15.5 - 코빈 번스
14.6 - 애런 놀라
13.1 - 로건 웹


배니스터는 웹에게 적극적으로 조언한 지도자였다. 배니스터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피칭 코디네이터도 웹의 도약에 앞장섰다. 그 피칭 코디네이터가 현재 화이트삭스 투수 코치 이단 카츠다. 즉, 웹이 1선발로 올라서는 데 기여한 두 인물이 올해 페디를 지원한다.

KBO리그 출신이 메이저리그에 돌아와서 달라진 실력을 뽐낸 선수는 몇몇 있었다. 가장 최근 성공 사례는 단연 메릴 켈리다. 켈리는 KBO리그에 오기 전 메이저리그 데뷔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넘어온 2019년부터는 애리조나 선발진을 지탱하고 있다. 2022년 13승8패 평균자책점 3.37, 지난해 12승8패 평균자책점 3.29로 준수한 성적을 올렸으며, 무엇보다 2년간 378이닝을 소화하는 이닝이터 역할을 해줬다.

페디는 한국에서 얻은 수확 중 하나로 '자신감'을 꼽았다. 실패를 반복하면서 위축됐지만, 정상급 유망주로서 기대를 한몸에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자존감을 높였다. 2014년 드래프트 전체 18순위 출신의 페디는, 사실 본보기로 삼았던 로건 웹보다 출발점이 더 빨랐다. 웹은 페디와 같은 2014년 드래프트 전체 118순위 출신이다.

페디는 KBO리그에서도 "메이저리그 등판이 끝이 아니길 바란다"는 간절함을 드러냈다. 페디의 마음은 한순간도 메이저리그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2년 전 밑바닥을 쳤던 투수가, 이제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반격을 도모한다.

에릭 페디 (워싱턴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