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인상 vs 부자 감세 : 韓日 정반대 내수진작책 일본 압승 이유
이시바 차기 총리 경제정책 분석
양국 내수 비중 큰 차이 없는데
韓 “수출대기업과 부자 감세”
日 “고물가 웃도는 임금 상승”
올해 일본 소비 매월 증가할 때
한국 소매판매는 줄줄이 감소
# 한국과 일본의 경기침체 해법이 본격적으로 달라진 건 2022년부터다. 일본은 임금 성장을 중심에 두고, 소비 증진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전략을 썼다. 한국은 수출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줘서 낙수효과를 일으키고자 했다.
# 그런데 올해 소비의 향방을 보면 일본이 꾸준히 증가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 소비는 연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차기 일본 총리는 취임 직후 전임 정권의 경제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의 경기침체 처방을 자세히 비교해봤다.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자민당 28대 총재에 선출되며 차기 총리로 지명됐다. 이시바 경제 정책의 핵심은 전임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를 계승하는 것이다. 기시다 전 총리는 2021년 10월 취임해 임금 인상으로 대표되는 중산층 주도 성장 정책을 시행했다.
이시바는 현재 시간당 1014엔인 전국 평균 최저임금을 5년 안에 1500엔으로 50% 가까이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이시바 차기 총리는 지난 9월 27일 기자회견에서 "가계소비가 늘지 않으면 경제는 성장하지 않고, 디플레이션도 해소되지 않는다"며 "물가 상승을 웃도는 임금 상승을 실현해서 '새로운 자본주의'에 속도를 더하겠다"고 밝혔다.
자민당 총재 선거 막판인 9월 25일에는 "고물가 대책은 임금 상승이 가장 즉각적인 효력이 있다"며 "대기업들이 협력사에 가격 전가를 못하도록 하청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법인세율 인상도 공약 중 하나다.
■ 韓·日 내수의 진실=한국 경제는 수출주도형이고, 일본은 내수 위주 경제이며, 그래서 우리나라는 내수보다 수출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철 지난 얘기다. 두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에서 가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가계소비 비중은 2022년 48%대에서 2023년 초 52.0%로 정점을 찍었고, 2024년 1분기에도 50.2%를 기록했다. 2024년 2분기 우리 가계소비 비중은 47.6%다. 일본의 가계소비 비중은 대체로 53~54%대에서 움직인다. 일본의 올해 1분기 가계소비 비중은 53.8%, 2분기엔 54.2%였다. 일본의 내수 비중은 미국처럼 70%에 육박하진 않지만 높은 수준이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경기침체를 불러오는 건 소비와 투자의 실종이다. 두 나라의 소비를 증진하기 위한 정책의 결과물은 어떨까. 일본의 압승이다. 소비 지표인 양국 소매판매를 보면 우리나라 소비가 줄줄이 1년 전보다 줄어들 때 일본은 꾸준히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한국 소매판매 증감률은 1월 -3.3%, 2월 0.8%, 3월 -3.4%, 4월 -2.6%, 5월 -2.8%, 6월 -3.6%, 7월 -2.2%, 8월 -1.3%였다(전년 동월 대비). 반면 같은 기준으로 측정한 올해 일본의 소매판매는 한번도 역성장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1월 2.3%→2월 4.6%→3월 1.2%→4월 2.4→5월 3.0%→6월 3.7%→7월2.6%→8월2.8%).
■ 진단과 처방=한국과 일본은 팬데믹 이후 정반대되는 경제 정책을 취해왔다. 두 나라는 내수(소비+투자) 실종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같은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해법이 180도로 달랐다. 디플레이션 상황이던 일본은 적극적으로 임금 주도 성장 정책을 추구했다. 일본은 경기침체를 피하고, 성장을 이어가려는 경제 정책들의 중심에 '가계소비 증진책'을 배치했다. 이를 발판으로 일본은 지난해 디플레이션 탈출에 성공했다. 법인세 인상도 추진하고 있다.
이시바 차기 총리는 이미 "법인세는 인상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부유층의 금융소득 과세를 강화하려던 계획은 유예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27일 "기시다 전 총리가 추진했던 저축에서 투자로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 때문"이라며 "기시다 정권도 2021년 금융소득 과세 움직임으로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를 겪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출 대기업과 부유층의 감세라는 선별 지원 정책을 썼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9월 5일 국회에 제출한 '조세지출예산서'에 따르면 정부의 내년도 재벌(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조세지출은 4조9364억원으로 2023년보다도 12.7% 증가하는데, 이는 중소기업 조세지출 증가율인 4.7%보다 세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조세지출이란 세금을 면제해주거나 깎아주는 형태로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을 말한다.
윤석열 정부는 수출 증대에만 매달리다가 올해 9월 들어서 '수출의 온기가 내수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25일 관훈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다고 말한 것이) 근거 없는 낙관은 아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수출은 좋은데 내수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을 계속해서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빨리 나왔다. 이번에도 전체 취업자의 77.2%(통계청 30일 발표)인 임금근로자는 대상이 아니다. 임금근로자와 관련이 깊은 최저임금은 2020년 이후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실질임금은 최근 2년 연속 감소했다.
30일 여러 매체가 대통령실 익명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윤석열 대통령은 9월 초 참모들에게 수출이 호조인데 그 온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그 대표적 사례가 자영업자라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 침체 방어의 학문=경제학은 경기침체(불황·Recession)와의 싸움이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기점으로 주류경제학(신고전학파) 대신 케인스학파가 득세했다. 대공황 시기에 물가와 임금은 줄고, 실업과 파산은 급증했다. 당시 주류였던 신고전학파의 대공황 해법은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이었다. 이들은 개인의 경제적 행위가 모여서 경제라는 구조를 형성하고, 자본주의는 자기 수정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루스벨트 행정부는 케인스주의를 대거 받아들여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처방이었다. 결국 세계대전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해 생산과 소비가 강제적으로 돌아가면서 대공황은 진정됐다. '국가가 공평(불평등 축소)하게 경제에 개입해 좋은 사회(완전고용)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지금의 경제 상식은 대공황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시바 총재가 유력한 총리 후보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을 이긴 데는 경제 정책의 영향도 작용했다. 경쟁자였던 고이즈미는 "대기업에 잠자고 있는 인재를 다른 성장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대기업이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은 총리 선거에서 대기업 위주의 규제 완화가 아닌 임금 주도 성장을 택했다. 우리 정부의 내수 진작 정책은 사업자 위주로 꾸며져 있다. 대다수 임금근로자를 배제하는 정책으로 일본과의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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