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스며든 빛이 오래된 공간을 서서히 깨웠다. 머물러 있던 과거와 현재가 느리게 섞이도록 세련되게 매만졌다.

화려한 랜드마크를 찾는 인파로 언제나 북적이는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살아온 부부는 오히려 오래된 정취가 느껴지는 동네에 끌렸다. 그래서 식료품점과 꽃집 등 작은 상점들이 자리한 골목에서 퇴근길에 장을 보고, 주말에는 공원 주변을 산책하며 느긋하게 쉴 수 있는 파리 북쪽 18구 쥘 조프랭(Jules Joffrin) 지역을 보자마자 반색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이 동네를 오래 지켜보다가 마침 건물 꼭대기 층 전체를 운 좋게 매입했다. 처마 아래 과거 하녀들 방(Chambre de Bonne)이 있던 곳으로 좁고 층고가 낮아 답답하지만, 근사한 전망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창의적인 디자인과 물성이 다른 자재를 과감히 조합해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연출하는 스튜디오 아틀리에 하가 전체 리모델링과 스타일링을 맡았다. 여덟 개의 하녀의 방을 허문 자리는 빛을 머금은 온기와 우아한 미감으로 채워지며 가족의 친밀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주방 바닥은 하녀 방을 잇던 예전 계단의 테라코타 타일을 잘 손질해 깔았다.
맨 안쪽에는 별도 다이닝 공간을 마련했다.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식사할 수 있게 특별히 동쪽을 향하는 창가 앞에 설계한 것이다. 노빌리스(Nobilis)의 아늑한 느낌을 주는 벨벳 원단을 덧댄 U자형 벤치와 트래버틴 석재 식탁은 아틀리에 하에서 직접 디자인한 제품이다. 실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두 사람이 모여 일하기도 한다.

현관 뒤, 가장 조용한 두 공간은 기존 벽을 그대로 유지하고 부부를 위한 안방과 욕실로 만들었다. 침실의 경사진 지붕 아래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침대 프레임을 겸하는 키 낮은 수납장을 짜서 배치했다. 실내가 한층 넓어 보이도록 옷장 전면에는 거울을 달고, 바닥은 가구보다 밝은 우드 소재로 마감했다.
부부는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붉게 물드는 파리의 스카이라인이 거울에 반영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황홀한 광경을 함께 지켜본다.
에디터 | 구민정
포토그래퍼 | 아모리 라파라(Amaury Lapar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