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서 관용구로 쓰이는 이 와인, 5대째 만드는 가문의 비밀은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5. 2. 1. 20:5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fter dinner we settled down to our port, and he began to question me as to my habits and amusements.”(저녁 식사 후 우리는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고, 그는 내 습관과 취미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셜록과 아이스 브레이킹 상황을 떠올리는 왓슨의 독백입니다. 표현 ‘settled down to port’는 영어 관용구로 ‘식사 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port는 항구가 아니라, 와인의 한 종류인 포트 와인을 말합니다.

영국 식사 문화에서 포트 와인은 주로 식사 후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디저트와 함께 즐기는 음료로 등장하는데요. 이러한 문화가 고착화하면서 가장 사회·사교적이고 느긋한 시간을 묘사할 때, 이런 표현이 쓰이게 된 것입니다.

시드니 패짓이 그린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의 삽화. 1892년.
여러 차례 소개했지만, 영국은 정말 와인에 진심인 나라입니다. 그 중에서도 포트 와인은 영국인에게 특히 각별합니다.

포트 와인의 원산지인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에만 가봐도 느낄 수 있습니다. 도우루 강변을 따라 늘어선 대형 포트 와인 와이너리의 이름이 대부분 다우(Dow’s), 테일러(Taylor’s), 그라함(Graham’s), 샌드맨(Sandeman), 와레스(Warres) 등 영국식 이름이거든요. 이는 과거 영국인들의 집중적인 투자의 영향입니다.

재밌는 점은, 와인 애호가라면 이미 익숙할 이 와이너리들 중 상당수가 한 가문의 소유라는 점입니다. 이 가문은 영국(스코틀랜드)에서 넘어왔고, 포르투갈에 정착해 5세대에 이르는 현재까지 포트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와인프릭은 주정강화(fortified) 와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와인, 포트 와인 업계 최강의 가문인 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Symington Family Estates)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포트 와인이란? 포트 와인에 대한 개론은 과거 와인프릭, <“와인 없으면 못 참지” 백년전쟁 끝에 태어난 이 달콤한 것은>편을 먼저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우 와이너리의 오래된 포트 와인용 오크통. [사진=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
포트 와인 업계 절대강자, 시밍턴 패밀리
시밍턴 패밀리는 포르투갈 북서쪽 포르투를 관통하는 도우루(douro) 강 인근 지역에서 140년 이상 거주하며 5대에 걸쳐서 포트 와인과 스틸 와인을 생산하는 가족 경영 기업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다우, 그라함, 와레스는 물론 쿡번(Cockburn’s), 퀸타 두 베수비우(Quinta do Vesuvio) 등 유수의 포트 와인 와이너리들을 소유하고 있어서 포트 와인 업계의 큰손으로 불립니다.

특히 이들 중에서도 다우 와이너리는 전세계 프리미엄 포트 와인 시장의 35%를 차지하는 업계의 절대 강자 입니다. 사실상 포트 와인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봐야겠죠.

다만 다우 와이너리는 시밍턴 패밀리의 손에서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1700년대에 다우 앤 코(Dow&Co.)로 설립됐고, 포르투갈로 이주한 시밍턴 패밀리의 첫 세대, 스코틀랜드인이었던 앤드류 제임스(AJ) 시밍턴이 1912년 사들이면서 시밍턴 패밀리와의 역사가 됐습니다.

도우루 강을 따라 개간된 다우 와이너리의 포도밭 중 하나인 퀸타 두 봄핌의 모습. [사진=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
옆집보다 조금 덜 달게…창립자의 취향대로
다우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포트 와인이 다른 포트 와인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마무리(finish) 입니다. 포트 와인은 일반적으로 발효가 진행중인 와인에 고도수의 주정을 넣어 발효를 중간에 멈추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하면 발효되다만 당분이 와인 속에 잔류해 달달한 스위트 와인이 되는데요. 다우 포트는 주정을 첨가하는 시기를 다른 포트 와이너리들보다 몇시간 더 뒤로 늦춥니다. 더 많은 당분이 사라지고 나서야 효모를 사멸시키는 셈입니다. 당연히 잔당은 적을 수 밖에 없죠.

시밍턴 패밀리 5세대인 해리 시밍턴은 “이런 스타일은 창립 파트너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었으며, 오늘날까지 우리는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지난해 11월말 방한한 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의 5대 해리 시밍턴(우)과 아시아태평양 책임자 조지 누녜즈(좌). [사진=전형민 기자]
경사지에 심어진 포도나무, 일일히 재식재
이 밖에도 다우 와이너리 만의 특성은 또 있습니다. 최적화된 포도 재배입니다. 보편적으로 포트 와인을 양조할 때 포도 품종은 적게는 2가지에서 많게는 4~5가지가 섞이게 됩니다. 대체로 포르투갈 토착 품종이고, 도우루 강변 30도가 넘는 경사에 개간된 포도밭에서 자랍니다.

따라서 도우루 강변 포도밭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잘 정돈된 밭이라고 보기 어렵죠. 포도나무를 가지런히 재배하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에 과거에는 포도밭에 닥치는대로 포도나무 품종을 섞어 심는 게 이 지역의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우 와이너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각 포도밭의 경사도, 일조량, 평균 기온, 물빠짐 등 과학적인 데이터를 구축하고, 각 환경에 최적화된 단일 품종을 재식재해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매년 수확하는 포도를 최적의 빈티지 포트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최상의 품질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리 시밍턴은 “물론 오래된 혼합 식재 포도밭도 일부는 남겨서 열매를 얻고 있다”면서 “오래된 나무에서 수확하는 포도들은 복합성과 입체감을 더해주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퀸타 다 세뇨라 다 리베이라(Quinta da Senhora da Ribeira) 포도밭 전경. [사진=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
떼루아를 그대로 담아낸 와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서 이들이 만들고자하는 궁극의 와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의 손을 덜 타(개입의 최소화) 도우루 강변 산악 지형의 떼루아를 그대로 담아내는 와인 입니다.

다우 와이너리의 행보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우 와이너리는 최근 아데가 두 아타이데(Adega do Ataide)라는 새로운 저영향 설비 공장을 지었습니다.

공장은 곳곳에 설치된 360개의 태양광 패널로 필요한 모든 전기 에너지를 충당하고, 중력의 흐름에 따라 포도가 양조되도록 설계됐습니다. 여기서 생산된 와인은 최종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저감한 경량 와인병과 저영향 포장재에 싸여 출고되고요.

해리 시밍턴은 새 공장 건설의 배경에 대해 “불규칙한 강우량과 여름 내내 지속되는 무더위 등 도우루 강변 포도밭고 기후 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수확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수확 시작일 역시 9월 중순에서 8월 마지막 주로 크게 앞당겨졌다고 합니다.

최고의 와인만을 위한 행동 뿐만 아니라, 와인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영향 감소,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 등이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포트 와인 숙성에 사용하는 대형 오크통. [사진=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의 가치
한 통계에 따르면, 영국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율은 1세대에서 2세대가 30%, 2세대에서 3세대가 15% 내외라고 합니다. 3세대에서 4세대는 3%에 불과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1세대에서 2세대는 30%로 비슷하지만, 2세대 이후는 통계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극히 미미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시밍턴 패밀리는 올해 1월부터 5세대 경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롭 시밍턴이 4세대인 찰스 시밍턴과 공동 CEO 자리에 오르면서인데, 시밍턴 가문 롱런의 비결은 이들이 믿고 지키려는 가치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세대의 시밍턴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교훈을 묻자 해리 시밍턴은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의 가치”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프리미엄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것은 포도 재배자부터 포도 따는 사람, 양조자와 셀러 마스터, 테이스팅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 수많은 사람의 헌신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부연과 함께 입니다.

다우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1966년 빈티지 포트 와인. [사진=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
이미 포르투갈 포트 와인 업계에서 최고의 지위에 올라있지만, 오히려 더 삼가고 겸손해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 속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간만에 길게 이어진 이번 연휴 끝자락에 다우 빈티지 포트 와인과 함께 풍부하면서도 모난 곳 없이 균형잡힌 매력, 단단하게 잘 갈무리된 와인이 주는 안정감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번 와인프릭은 지난 11월말 한국을 찾은 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의 5대, 해리 시밍턴과 아시아태평양 담당자인 조지 누녜스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귀한 시간을 나눠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