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Z픽 에레혼, 어떻게 '마트'에서 '디자이너 브랜드'가 됐나

2024. 10.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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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대형마트 체인점 에레혼
젊은층 유입 늘어나며 인기 명소로 탈바꿈
헤일리 비버·켄달 제너 등과 협업한 스무디 '대박'
비버리힐즈 매장, 스무디 인증샷 성지로
유명 스타, 에레혼 단골 고객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MZ 디토소비 위해 에레혼 찾아
에레혼 매장. (사진=에레혼 인스타그램)


대형마트는 ‘힙한’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생활에 밀접한 제품을 판매하는 업종이자 3040세대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맛집도, 유행하는 패션 브랜드도 없다. 오늘 저녁에 먹을 식료품, 청소할 때 사용할 용품을 찾는 이들이 향하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는 MZ세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마트’가 생겼다. 캘리포니아 기반의 대형마트 체인점 ‘에레혼(Erewhon)’이다. 이들은 틱톡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마트를 간다. 에레혼은 MZ세대의 새로운 즐길거리로 인정받고 있다. 


 ◆ 에레혼, 58년 된 브랜드라고?

미국의 대형마트 에레혼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10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식료품 매장이다. 에레혼은 1966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일본인 미치오 쿠시와 아벨린 쿠시가 처음 매장을 연 게 그 시작이다. 매장 이름은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의 소설 ‘에레혼’을 차용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대립하고 평화와 환경보호 등을 주장하는 ‘히피’가 유행했다. 쿠시 부부는 이들을 타깃으로 천연식품과 건강식품을 주로 판매하며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연재료를 고집하고 유기농 제품만 판매하면서 1970년대 들어 재무건전성이 악화했고 1979년 에레혼의 직원이었던 톰 데실바가 에레혼을 인수하면서 주인이 바뀌게 됐다. 그럼에도 에레혼은 히피문화의 인기가 줄어들고 외식산업의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큰 수익을 내지 못했다.

지금의 에레혼은 2010년대 들어 만들어진 이미지다. 2011년 토니 안토시와 조세핀 안토시가 톰 데실바의 아내로부터 에레혼 매장을 인수한 뒤 이 브랜드를 고급 대형마트로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해 에레혼은 1억7140만 달러(약 2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매장 10개에 불과한 체인점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다. 

에레혼은 미국 경제전문지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가 선정한 2024년 가장 혁신적인 소매업체 중 하나로 선정됐다. 매체는 “똑똑한 사업 모델로 에레혼은 식료품점을 디자이너 브랜드로의 전환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에레혼 스무디 협업 스타들. 사진은 시계 방향으로 사브리나 카펜터, 켄달 제너, 올리비아 로드리고, 소피아 리치. (사진=에레혼 인스타그램)



 ◆ 인기 요인 1. 스타가 먹는 스무디

에레혼의 인기 상품은 ‘스무디’다. 에레혼의 스무디를 먹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캘리포니아 매장을 찾는다. 에레혼이 올해 스무디로만 벌어들인 금액은 1060만 달러(약 150억원)에 달한다. 토니 안토시의 형제이자 에레혼의 부사장에 따르면 에레혼이 한 달에 판매하는 스무디는 4만 개 이상이다. 

이들이 스무디를 베스트셀러로 올린 방법은 인플루언서(SNS 팔로워가 많아 젊은층에 인기 있는 인물)와의 협업이다. 저스틴 비버의 아내이자 유명 모델인 헤일리 비버, 카다시안 패밀리 일원인 켄달 제너 등을 앞세워 젊은층을 끌어모았다. 에레혼은 ‘이들이 실제로 즐겨 마시는 음료’라는 콘셉트를 통해 고가의 스무디를 에레혼 자체의 맛집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2022년 헤일리 비버와 함께 선보인 ‘딸기 글레이즈 스킨 스무디’는 미국 MZ들을 유입시키며 에레혼의 인지도까지 끌어올렸다. 아몬드 밀크, 코코넛 크림, 메이플 시럽, 아보카도, 바나나 등이 포함된 음료다. 가격은 18달러(2만5000원)으로 일반 스무디와 비교하면 고가다. 하루에 한 개씩 구매하면 일주일에 스무디에만 17만원 이상을 써야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스무디는 젊은층의 인기를 얻으며 SNS에서 입소문을 탔다. 헤일리 비버의 SNS 영향력을 통해 지역의 마트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에레혼은 헤일리 비버 스무디가 이 회사의 가장 성공적인 협업 상품이라고 평가했다. 토니 안토시는 “오직 스무디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날아와서 헤일리 비버 스무디를 들고 에레혼 베벌리힐스점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헤일리 비버를 태깅(사진을 올리면서 특정 인물의 계정을 사진에 추가하는 행위)하는 소녀들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헤일리 비버 스무디의 성공 이후 에레혼은 켄달 제너를 선택했다. 올해 5월 켄달 제너와 ‘피치스 앤 크림 스무디’를 선보였다. 가격은 23달러(약 3만원). 코코넛 밀크, 알로에, 메이플 시럽, 구기자차 등이 포함돼 피부 건강을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에레혼의 대표 상품. (사진=에레혼 홈페이지)



 ◆ 인기 요인 2. 디토소비 부추긴 단골 고객들

또 다른 요인은 ‘유명인이 찾아가는 마트’라는 수식어다.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할리우드의 유명 네포 베이비(유명한 부모 덕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 이른바 ‘금수저’)이자 배우인 귀네스 팰트로다. 2010년대 후반 귀네스 팰트로가 운동이 끝나면 그가 즐겨 찾는 에레혼에 들러 그린 스무디를 먹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에레혼은 ‘귀네스 팰트로의 선택을 받은 곳’으로 통했다. 

젊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 에레혼의 인기가 높아진 것 역시 유명인 덕분이었다. 킴 카다시안의 전남편이자 힙합 가수 카니예(칸예) 웨스트가 2018년 자신의 트위터(현재 X)에 ‘에레혼 드립’이라는 글을 남기면서 관심을 얻었다. 에레혼 드립은 유기농 커피 원두를 사용해 만든 에레혼의 커피다. 

이외에도 배우 제이크 질렌할,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 리한나 남편이자 힙합 가수 에이셉 라키, 배우 힐러리 더프, 모델 카라 델레바인, 인플루언서 코트니 카다시안 등이 에레혼을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트를 가면 유명인과 마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에레혼은 ‘LA를 여행갈 때 꼭 들러야 할 장소’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너의 모든 것’ 시즌2에서 에레혼이 배경으로 나오면서 MZ세대 사이에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에레혼의 이미지는 젊은층의 ‘디토(ditto) 소비’를 이끌어냈다. 디토 소비는 ‘나도’를 의미하는 라틴어 ‘디토’를 더해 좋아하는 인물, 인플루언서의 취향을 따라하는 소비 행태를 뜻한다. 유명인이 방문하고 이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 에레혼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발렌시아가가 선보인 에레혼 백. (사진=발렌시아가 홈페이지)



 ◆ 인기 요인 3. 고급 이미지

‘고급 이미지’도 한몫했다. 에레혼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일반 마트 제품보다 비싸다. 500mL 물 한 병의 가격이 4000원이며 수프 한 봉지 가격은 2만원에 달한다. 물에 산소를 충전해 운동 후 섭취하면 좋다고 알려진 ‘하이퍼 산소수’는 2L 기준 25.99달러(약 3만5000원)에 판매한다. 

에레혼이 고가 전략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유기농 제품, 윤리적으로 생산된 제품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에레혼은 ‘비콥(B Corp) 인증’을 받은 마트로도 유명하다. 비콥이란 이로운 기업 인증(Beneficial Corporation Certifications)의 줄임말로 거버넌스, 환경, 근로자를 포함한 5개 지표를 합산해 선정한다. 에레혼은 비콥 기준(80점)을 웃도는 84.6점을 받으며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비콥 인증을 받은 기업은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행동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이를 위한 가격 인상 역시 허용된다. 

에레혼은 비콥 인증뿐만 아니라 ‘USDA 인증’도 받았다. 미국 농무부가 공식적으로 ‘유기농’을 인증해주는 마크다. 유기농 원료 95% 이상을 사용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에레혼은 다양한 인증을 통해 고급 마트라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MZ세대의 관심을 얻었다. 

2023년 12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가 런웨이에서 에레혼의 종이가방을 활용하면서 화제가 됐다. 런웨이 직후 발렌시아가는 에레혼과 협업해 480달러(약 66만원)의 나일론 소재 장바구니까지 선보이면서 매장 이미지는 더욱더 고급화됐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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