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는 이유

나의 지인 한 명은 결국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나름대로 지방의 한 중견기업을 성실히 다니는 나보다 몇 살 아래의 청년이다. 일과를 들어보면, 이보다 성실한 사람이 별로 없겠다 싶다. 몇 년간 연차도 제대로 주지 않는 회사를 야근해가면서 다니고, 매일 저녁이면 운동도 하고, 틈틈이 자기계발도 하는 무척 성실한 30대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더 이상 희망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했다.

회사의 상사들을 보면, 자기의 미래가 보이는데 그것이 자기 삶이 될 거라 생각하면, 어딘지 우울감을 참기 힘들다고 했다. 끝없이 일만 하고, 가족 뒷바라지 하며, 아파트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점점 시들어가기만 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코인, 주식, 자동차 이야기 같은 것이고, 서로 비교하고 서열짓는 문화가 끔찍하다고 했다. 그 속에서 무슨 희망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Unsplash의Dino Reichmuth

나는 해외로 나가면 괜찮을 것 같냐고 물었다. 그는 해외에는 조금 더 일찍 자리를 잡은 형제가 있는데, 나가면 도와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해외에 가서 무슨 일이든 하면서 최소한의 돈을 벌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고 했다. 적어도 이 한국 사회 안에서의 비교와 서열의식에는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응원한다고 했다. 아마 그에게 해외 가도 별 것 없다, 그래도 한국이 낫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한 트럭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어떤 사회든,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폐소공포를 주는 끝없는 개미지옥, 답답한 감옥, 절망의 구렁텅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나는 많은 청년들이 우리 나라에서 무슨 희망을 보며 사는지 잘 모른다. 수도권 초품아 아파트를 사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꿈을 꾸나?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아 과장이 되는 꿈을 꾸나? 혼자 혹은 둘이 살며 성수, 이태원, 서순라길의 무한한 핫플레이스들을 탐방하는 꿈을 꾸나? 월 1억 자동수익을 실현하면서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꿈을 꾸나?

모르면 몰라도, 그는 그 중 어떠한 꿈도 이 땅에서 꾸지 않은 듯하다. 아마 불가능하다고 믿었거나, 거기 어디에도 진정한 행복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는 주6일에 야근이 잦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외 별다른 선택지도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워라밸과 연봉과 좋은 동료와 자아 실현하는 일이 밸런스를 이루는 직장을 얻는 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만큼 어렵다. 끝없이 일하는 것의 결과가 무엇인지도 답하기 어렵다. 결국 남들과 자동차나 아파트, 자녀가 입학한 대학의 서열 비교 같은 게 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 '그냥 쉬었음'이라고 답한 2030 청년 숫자는 70만 명이 이르러,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라고 한다. 이는 코로나 때보다도 많은 숫자로, 쳥년들의 '단념'에 관한 정서가 짙게 느껴진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 번도 일해본 적 없는 청년들이 아니라, 일을 경험해보고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느껴 '되돌아' 나온 이들이다. 일자리, 소득, 자산은 모두 양극화되고, 하루하루의 노동이 희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느낌 속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부유'하는 청년들이 유령처럼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게 한국의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일 수 있다.

한편에서는 한국의 음악, 문학, 영화, 드라마 같은 것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곤 하지만, 실제로 세계에 보이는 그 화려한 겉모습과 다르게, 한국은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의 끈을 이어갈지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나 책임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된다. 이제 나도 서서히 기성세대로 진입하는 입장에서, 나의 존재나 삶은 과연 이 사회에 의미 있는 희망을 만들고 있나, 고민하게 된다. 나도 그런 희망을 조금은 만들어가야 하는 이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지식토스트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형사사건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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