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세상’ 음란물… 성인인증 없어도 다 본다 [긴급점검 청소년 성(性) 인식 完]

김경희 기자 2024. 10.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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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팀, 성 인식 실태조사 40% “온라인서 성 콘텐츠 접해”
팝업·검색으로 손쉽게 이용 가능 “사업자에 책임 부과… 교육 중요”

完. 어른들은 모르는 성

일러스트. 유동수화백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경기도내 청소년들이 관련 교육 등 사전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성 관련 미디어를 무분별하게 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영상물들은 성인인증 없이 손쉽게 이용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 이에 맞는 교육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9일 경기알파팀이 도내 청소년(만 13~18세) 413명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성 인식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 10명 중 4명(163명·39.5%)은 온라인을 통해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 웹툰, 소설을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가장 많은 청소년(92명·56.4%·복수응답허용)은 ‘팝업 광고 등 갑자기 해당 사이트가 인터넷에 나와서’를 경로로 지목했고, 이어 ‘호기심으로 검색’ 46.0%(75명), ‘알고리즘(추천목록)에 떠서’ 30.1%(49명)로 집계됐다.

청소년들이 이처럼 우연히, 원치 않았음에도 성 관련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성인 인증’이 필요 없는 온라인 환경 때문이었다. 성적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163명 중 80.4%(131명)는 해당 사이트를 이용하면서 ‘성인 인증 없이 쉽게 이용 가능’했다고 답했다.

소지 및 시청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는 불법 성착취물을 접한 청소년도 59명(14.3%)이나 됐다. 이들은 종류별(복수응답 허용)로 ▲유명인이나 보통 사람의 얼굴이 합성된 성 착취물 (7.0%, 29명) ▲동의없이 유포된 불법 성관계 영상 (5.6%, 23명) ▲감금, 구타, 폭력, 협박 등이 포함된 성관계 장면의 성 착취물 (5.3%, 22명) ▲아동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불법 성착취물 (3.9%, 16명) ▲학교나 버스 지하철, 화장실 등 공공장소에서의 불법 촬영물 (3.4%, 14명) 등을 접했다고 했다.

박천일 숙명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는 성적 콘텐츠 등에 쉽게 영향을 받고, 모방하거나 잘못된 관념이 생길 수 있어 위험하다”며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부과해 플랫폼 자체적으로 성적 콘텐츠 등을 관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그릇된 관념을 바로잡을 교육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미없고 뻔한 성교육 그만… 시대에 맞게 현실화 시켜야

온라인을 통해 성을 접하게 된 청소년들은 온전한 성 인식이 확립되기 전, 사전 지식 없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접해야 했다. 이들이 그 속에서 그릇된 성 관념을 갖게 되는 사이 제 역할을 해야 할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지루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

■ 청소년이 말하는 ‘배우고 싶은 성교육’

경기알파팀이 도내 청소년(만 13~18세) 413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성 인식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청소년 대부분(319명, 77.2%·복수응답 허용)은 학교선생님을 통해 성교육을 받았다. 성교육 강사 등 전문가라는 응답은 198명(47.9%), 전문가 온라인 교육이 77명(18.6%)으로 나타난 반면 부모님에게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학생은 29명, 7%에 그쳤다.

이러한 성교육에 대해 학생들의 만족도를 묻자 매우 만족(34명, 8.2%)했거나 대체로 만족(86명, 20.8%)했다는 응답은 10명 중 3명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는 보통이라는 응답(180명, 43.6%)이 많았고, 대체로 불만족했다는 응답이 82명(19.9%), 매우 불만족했다는 응답이 31명(7.5%)으로 집계됐다.

이 같이 응답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이 고른 답변은 ‘형식적이라고 생각해서’(155명, 37.5%)였다. 이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141명, 34.1%) ▲현실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111명, 26.9%) ▲재미가 없거나 지루해서(108명, 26.2%)를 지목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은 어떤 성교육을 받고 싶어할까. 가장 많은 답변(각 2개씩 선택)은 연애 방법(133명, 32.2%)이었고, 이어 ▲사랑과 연애(81명, 19.6%) ▲건강한 자위 방법(79명, 19.1%) ▲성폭력 예방(68명, 16.5%) ▲피임 방법(59명, 14.3%) ▲사춘기 또는 2차 성징(59명, 14.3%) ▲다른 사람과 관계맺기(54명, 13.1%) ▲성에 대한 관심, 합의 등에 관한 대화 방법(39명, 9.4%)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소년들이 배우고 싶은 성교육은 자신의 생활과 실질적으로 연관성이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에 대처하는 방법 등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현재 성교육은 학생들의 실제 경험이나 생활과 괴리가 큰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성교육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매뉴얼 없고, 학업에 밀려…갈 길 잃은 성교육

경기알파팀이 지역내 교사 27명을 비롯해 성교육 전문가, 교수 등과 현행 성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펴본 결과 모두 공통적으로 지목한 제1의 문제는 ‘표준화되고 명확한 지침의 부재’였다.

교육부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얼마나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 정해두지 않은 상태로 온전히 각 지역과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다 보니 성교육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거나 학교장의 인식에 따라 교육에서의 차이가 생기고 있다는 얘기다.

교육부는 지난 2015년 초·중·고 학년별로 주제와 방향 등을 담은 ‘성교육 표준안’과 ‘학생용 워크북’, ‘교사용 지도안’을 마련했지만, 내용에 성차별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부분을 담은 탓에 한차례 논란을 겪은 뒤 이를 폐지했다. 이후 교육부는 2018년 개정 의지를 밝혔지만, 여전히 별다른 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별도로 ‘경기도교육청 성교육 진흥 조례’를 만들어 성교육을 활성화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역시 형식적인 수준이다. 교육감의 책무 규정에 성교육 시간을 확보하도록 명문화하고도 ‘학교교육과정 운영에 성교육 시간을 20시간 이상 확보하도록 노력한다’라고만 규정해 하지 않더라도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당 조례상 성교육 관련 표준안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도 정작 도교육청이 제공 중인 표준안은 지난 2015년, 교육부가 만들어 배포했던 표준안에서 일부 논란이 된 부분만 바꾼 것이다. 결국 10년째 같은 표준안이 제공되고 있는 셈이며, 시대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교육안이라는 얘기다.

도교육청의 무관심 속에 고통받는 건 교사들이다. 교육자료를 개발하는 것도 교사의 역량에 맡겨져 있는데다 주제 역시 학부모 민원 등을 이유로 선정에 어려움을 겪어서다.

경기알파팀이 취재한 현직 교사 27명 중 21명은 입을 모아 ‘민감한 주제라 다루기 어렵다’는 점을 성교육 지도 시 어려움으로 꼽았다. 또한 17명의 교사가 학부모의 부정적 반응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내 한 중학교 교사는 “성교육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만 어느 학년에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지 같은 매뉴얼이 없고, 있는 표준안은 너무 오래돼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다”며 “결국 자료를 만들거나 교육을 하는 것 모두 교사가 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해 가르쳐도 학부모들로부터 ‘그런 걸 왜 가르치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도교육청은 오히려 현장의 성교육 관련 도서를 대거 폐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폐기 도서 목록을 확인한 결과 성교육 관련 도서만 2천528권이 폐기됐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폐기 논란 때와 마찬가지로 “각 학교가 도서관운영위원회를 열어 폐기한 것이라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 대상 성 인권 교육 사업이 끝나면서 성교육 관련 예산 역시 대폭 줄었다.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사업으로 전환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확인 결과 2021년 신설된 디지털 성범죄 교육 예산은 지난해까지 9억9천600만원을 유지하다가 올해 2억원,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강류교 전국 보건사회교사회장은 “현재의 성교육은 체계화되지 않았다”며 “교육부는 시대에 맞는 성교육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성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 성교육 현실화·가정 내 성교육 병행돼야

전문가들은 현재의 성교육이 보다 체계화되고, 일관성 있게 변하면서 동시에 가정 내에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 상시적으로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성 관련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워하지만, 늘 생활하는 가정에서부터 아이들이 올바른 성관념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또래들과의 집단 교육으로 이뤄지는 만큼 학생에 따라 본인의 고민을 선뜻 털어놓기 어렵지만, 가정에서의 성교육은 부모와의 유대관계 형성에 도움을 줄 뿐더러 학생들로 하여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게 이유다.

이와 관련, 김세연 경기도청소년성문화센터장은 “부모에 대한 성교육 교육 시스템도 필요하다. 현재 시스템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으며, 성교육은 빨리 대충 끝내야 하는 의무 교육처럼 비춰지고 있다”며 “성교육이 단순히 일방향으로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명화 서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장도 “부모가 자녀와 성에 대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성교육이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인권과 성평등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며, 이러한 변화가 가정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소속으로 교원단체와의 꾸준한 간담회를 통해 성교육 확대에 발벗고 나선 전자영 경기도의원(더불어민주당, 용인4) 역시 가정에서 올바른 성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교육청 차원에서 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 의원은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지만, 4학년 아들에게 어떤 성교육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며 “가정통신문으로 오는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 교육 자료가 단순하고, 일반화·표준화된 공문으로 오다 보니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고 전제했다.

이어 “영유아부터 초중고까지 시기별로 아이들에게 해야 할 성교육이 있고,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있을 텐데 이를 안내해줄 채널은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필수적으로 하고 있는 학부모교육에 성교육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 의원은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학부모 대상 성교육을 진행하면 시간적·공간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학부모들의 접근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러한 필수 교육 외에도 디지털 성범죄 관련 특강 역시 필요하다”며 “교육청에서 자체적으로 직속 기관을 만들어 성교육 관련 커리큘럼부터 정책 수립 등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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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기자 gaeng2da@kyeonggi.com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오종민 기자 fiveb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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