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 아니라는 소방청, 해명도 궁색…"오해 줄이려 했다"
오해 줄이려 했다더니…내부 공지엔 징계 가능성 시사
소방청에서 3일 간격으로 배포한 두 개의 보도자료부터 보겠습니다.
둘 사이엔 간단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아래는 허석곤 소방청장이 전국 지휘관 회의를 개최했다는 내용을 알리는 13일자 보도자료입니다.
아래는 해당 회의에서 언론 접촉을 자제하라고 했던 사실이 보도된 뒤에 나온 오늘(16일)자 보도 설명자료입니다.
기자단에 배포하는 자료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담당부서 안내가 보도자료에는 있고 설명자료에는 없습니다.
비상응급 대책에 지장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청장님 말씀은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좋으니 전화해서 보도하고, '입틀막' 의혹은 이게 '팩트'니까 더 물어볼 것도 없이 그대로 받아 써라는 뜻인지 궁금합니다.
소방청은 설명자료 외에 추가적인 공식 답변은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MBN은 9월부터 '입틀막'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응급실 뺑뺑이'와 관련해 구급차 내부 영상을 담아서 보도한 시점은 지난달 29일이 마지막입니다.
제목은 "119는 안 받는다는 응급실…구급차 속 환자는 절망"입니다.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는 동안 응급환자들이 구급차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 구급대원의 다급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보도입니다.
병원 관계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안내합니다. 119 구급차에서 이송한 환자는 받아줄 수 없지만, 해당 환자가 자력으로 오면 받아주겠다고 합니다. 대신에 오더라도 4시간~5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 마디 덧붙입니다. 신음하던 환자는 응급실행을 포기하고 맙니다.
이렇듯 구급차 내부에 당사자의 모습과 음성은 '응급실 뺑뺑이'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난 4일 또 다른 소방 관계자분께 구급차 내부 영상을 요청하던 중에 "위에서 영상 반출을 하지 말라고 문서가 내려온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소방청이 오늘(16일) 배포한 설명자료를 다시 보겠습니다.
청장님이 우려를 표했고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구급차 CCTV나 개인 촬영 영상을 무단 유출하면 일부 소방공무원 의견이 전체 의견으로 오해되거나, 일부 지역의 현상이 전국적 현상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섭니다.
과연 그럴까요?
소방청이 지난 12일 내부 공지한 '구급현장 활동 관련 언론대응 유의사항 알림'을 보면 얘기가 다릅니다.
징계를 각오하라는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오해'가 없도록 원문 그대로 옮깁니다.
<언론 대응 관련 유의사항>
가. 영상촬영 등으로 인한 응급환자 이송 및 응급처치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 금지
나. 현장활동 관련 영상물, 음성물 등의 무단 유출 및 개인보관 금지
다. 업무처리 중 알게된 사실에 대한 비밀 누설 금지
라. 기 시달된 '소방공무원 제복 착용 기준 알림(9.10)'에 따라 소방활동 외 제복 착용 금지
마. 방송 출연 및 인터뷰 시 현상 왜곡 우려가 있는 개인적 의견 발언 지양
바. 소방활동과 관련하여 개인적 언론 접촉이 필요한 경우에는 소방관서장 보고
사. 소방관서장은 소속 직원에 대한 복무관리 및 영상물 등 관리 철저
언론 대응과 관련하여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한 경우에는 경위 및 내용 등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관련 절차에 따라 적의조치할 예정임. 끝.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9일 취임사에서 인용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사뭇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주제를 둘러싼 상이한 모든 의견을 들어보고, 다양한 정신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 문제를 바라보는 모든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대조하면서 자기 생각을 수정하고 완성하는 일을 의심하거나 망설여서는 안 된다"
오늘(16일) 소방청에서 배포한 보도설명자료와 그 전에 내부공지한 언론 대응 관련 유의사항과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물론,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 되고 '응급실 붕괴'는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응급실 뺑뺑이'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전공의 집단이탈이 시작된 지난 2월 이전부터 심각했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인과관계 이전에 지금의 의료공백이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현장에서 당사자들이 보고 느끼는 심각성이 그대로 전달될 수록, 국민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 있고 답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 언론은 보도해야 하고, 국민들은 알아야 합니다.
[ 김민수 기자 smiledream@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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