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전 대통령 “통일담론 재검토 필요…현 정부, 의지·역량 없어”
“삐끗하면 군사 충돌 번질 상황”
위태로운 한반도 정세 꼬집어
미 대선 이후 북·미 대화 주목
한국 패싱 피할 선제 대응 강조
임종석 “통일 강박 내려놓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19일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나선 데 따라 기존의 평화담론과 통일담론도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다”면서 “그러나 현 정부는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며 “한반도의 상황이 무척 엄중하고 위태롭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9·19 군사합의가 폐기됐고, 남북 간 오물 풍선과 대북 확성기 방송 같은 비군사적 형태의 충돌이 시작됐다”며 “한 걸음 삐끗하면 군사적 충돌로 번질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한 당국은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당장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또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가 과거처럼 ‘패싱’을 당하고 소외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먼저 대화를 선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 재개 시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는 등 달라진 협상 전략을 가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새 통일담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전 실장은 기념사를 통해 “통일을 하지 말고 평화를 선택하자”며 ‘두 개의 국가론’을 다시 띄웠다.
임 전 실장은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며 “단단히 평화를 구축하고 이후의 한반도 미래는 후대 세대에게 맡기자”고 밝혔다.
임 전 실장은 헌법 3조 영토 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삭제와 국가보안법 및 통일부 폐지를 언급했다. 그는 “(이런 조항과 조직에는) 통일이 전제돼 있어 적극적인 평화 조치와 화해 협력에 대한 거부감이 일고 소모적인 이념 논란이 지속된다”라고 폐지 필요성을 설명했다.
야권에서 거론해온 국가연합 방안도 접어두자고 했다. 이 방안은 자주·평화·민주 원칙 아래 화해 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라는 3단계 통일 과정을 밟는 게 핵심이다.
임 전 실장의 주장에는 현 정부의 ‘자유통일론’이 한반도 평화 구축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실장은 “상대에 대한 부정과 적대가 지속되는 조건에서 통일 주장은 어떤 형태로든 상대를 복속시키겠다는 공격적 목표”라며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이나 윤석열 정부의 자유통일론이 그 생생한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근본적인 노선 변화를 꾀하고 있고, 윤석열 정부 역시 북한을 확고한 주적으로 규정하며 강 대 강 대치로 치닫고 있다”면서 “다시 정권이 교체되고 권력 지형의 변화가 있더라도 역사의 시계를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린) 판문점과 하노이로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우발적 충돌이 국지전으로,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 한반도이고 그 위험을 막기 위해 만든 안전판이 9·19 군사합의였는데, 남북 당국 모두가 걷어차 버렸다”면서 “이제 대화가 유일한 안전판”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영상 축사에서 “남북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식의 강경 대응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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