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제로 끌려가” “살리려 입원”… 가족 간 비수 꽂는 ‘보호의무’ [심층기획-망상, 가족을 삼키다]
지난 2023년 강제입원 3만1459명
지자체 행정입원 있으나 마나
가족 보호입원 조치 85% 차지
입원부담 떠안은 가족·원망하는 환자… 국가가 짐 덜어줘야
중증 정신질환자들 “강제입원은 학대”
고통받다 가족과 의절 택하는 경우도
보호자들은 “막다른 길서 최후 선택지
치료받아 사람답게 살게 해주고 싶다”
정부, 입원신청권자 의사로 확대 검토
입원 심사 사법부에 맡기는 안도 고심
“정신질환자가 끼친 피해 가족이 책임
‘정신건강복지법 40조’ 폐지 선행돼야”

정하의 형제들은 환자복 차림으로 사정없이 끌려가는 동생을 바라보기만 했다. 1층엔 구급차 모양의 사설이송단 차량이 서 있었다. 뒷좌석에 밀려들어 간 정하는 꼼짝할 수 없었다. 눈앞엔 철창과 방탄유리. 손목엔 남성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빨갛게 부어올랐다. 두려움, 모멸감, 수치심.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1시간을 달렸을까. 도착한 곳은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의 한 정신병원. 정하는 영문을 모른 채 안으로 끌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정실 침대에 묶인 채 누워 있었다. 그 무렵 정하는 “죽음으로 널 증명해봐”라는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입원 생활은 한 달간 이어졌다.

정하의 사례와 같이 정신질환 당사자의 동의 없는 입원이 매해 약 3만 건씩 반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신 의료기관에 비자의입원 환자 수는 3만1459명에 달했다.
29일 세계일보는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 14명과 그들의 곁을 지키고 사는 가족 1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당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입원 과정에서 맛본 굴욕감과 공포감을 털어놨다. 가족을 향한 원망이 짙게 묻어났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최성희(가명·60)의 눈에 훤했다. 7월 초 성희의 아들 김지훈(가명·30)은 온종일 우두커니 서서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했다. 잘 차려진 밥상을 두고 “이게 쓰레기지. 음식이냐”며 국그릇을 엎는 것은 기본이고, 행인과 시비가 붙어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는 날도 잦았다.
모두 아들 지훈이 약을 끊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증상들이었다. 6년 전 조현정동장애가 발병한 지훈은 약을 먹으면 일상을 잘 살다가도, 약을 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성이 드러났다. 183㎝ 키에 100㎏이 넘는 거구의 지훈이 날뛰기 시작하면 성희와 그녀의 남편은 손쓸 도리가 없었다.
지훈에게도 약을 끊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약이 독극물 같아.” 약을 처음 먹기 시작했던 때, 지훈은 심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손목이 뒤로 꼬인 채 흔들렸고, 눈코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래도 지훈은 참아냈다. 꼬박 5년,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약을 한주먹씩 먹으며 입·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4월 퇴원 뒤엔 매주 약을 50mg씩 줄이더니 결국 완전히 약을 끊었다.
단약은 비상 신호였다. “아들을 범죄자 만들고 싶지 않으면 따로 사세요.” 지훈이 집안 물건을 부숴 경찰을 부른 날, 출동한 경찰관은 생활공간을 분리하라고 조언했다. 성희는 지훈의 손에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혼자 남은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게 걱정됐다.

정하와 성희처럼 가족이 강제입원을 둘러싸고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건 국가 탓이 크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비자의입원(타인이 결정한 입원)은 행정입원과 보호입원으로 나뉜다. 행정입원은 자·타해 위험이 의심되는 대상자에 대해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장이 신청해 전문의 진단을 거쳐 진행된다. 보호입원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하에 소속이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이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입원 필요성을 인정한 경우 가능하다. 이때 보호입원을 결정하는 ‘보호의무자’란 민법상의 부양의무자 또는 후견인, 즉 가족을 의미한다.

국가가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지난해 8월 정신질환과 연관성을 보인 흉악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법무부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입원제도를 개선하겠다며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보건복지부를 필두로 법무부·경찰청·소방청이 참여한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개선 TF’는 지난해 8월부터 비자의입원 제도 개선안을 논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복지부 TF 논의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TF는 단기적으론 현행 지자체장·가족으로 국한된 ‘입원신청권자’에 정신건강복지센터장과 의사 등을 포함해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족이 떠안고 있던 입원신청의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취지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은 “해외에선 입원신청 권한을 모든 의사는 물론 공무원, 교사, 사회복지사 등 매우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며 “입원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보호의무자로 한정한 부담을 완화할 필요는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환자의 치료를 위한 인신구속 여부를 ‘공식 절차’를 통해 결정받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입원 여부를 가족이 일차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병식(병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당사자들은 가족을 원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TF는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절차조력인이 당사자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하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만 TF는 법관 부족 문제 등의 현실을 고려해 ‘심판원’ 등 정신건강 전문성을 갖춘 준사법기관을 도입하는 방안 역시 대안으로 검토한다.
논의 방향은 좋지만, 진척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입원제는 2018년 ‘임세원 교수 살해 사건’, 2019년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으로 정신질환자 치료 사각지대가 드러날 때마다 논의가 급물살이 타는 듯했으나, 판사 증원 한계 등 현실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됐다. 이번에도 TF 결과 보고선엔 10월 중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전문위)를 구성해 TF 결과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10월이 다 가도록 전문위는 구성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사법입원제 도입을 반기면서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자에 대한 ‘가족의 보호의무’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보호의무자의 의무)에 따르면,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 및 요양과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법은 가족에게 환자의 치료 필요성을 인지하고 병원에 데려갈 책임을 넘어, 환자가 타인에게 가하는 물리적, 재산적 피해에 대한 책임까지 부여한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국가는 정신질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의무자 제도’를 뒀겠지만, 한편으론 가족을 옥죄는 하나의 쇠사슬이 됐다”고 꼬집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신질환자의 치료 및 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보호의무자의 책임을 경감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공감한다”며 “향후 입원제도 개선 등 국가책임 강화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1회> 아무도 몰랐던 시그널
[단독] “父 사망보험금 내놔!” 망치 들고 달려든 아들… 그 전까진 병인 줄 몰랐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27508839
[단독] 중증 정신질환 치료 중요성 몰랐던 가족… 약 끊는 순간 참극 시작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27508862
[단독] 중증 정신질환 자식 못 돌봤다는 죄책감에… 피해자 64% ‘선처’ 탄원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27508859
<2회> 치료 없이 돌아온 가해자
[단독] ‘정신질환 치료감호’ 별따기… 대부분 방치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28514086
[단독] 정신질환자 보호관찰 유명무실… 출소 후 관리 가족 몫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28514072
<3회> 가정파괴 부르는 '보호의무'
[단독] “강제로 끌려가” “살리려 입원”… 가족 간 비수 꽂는 ‘보호의무’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29515462
정신질환자 돌봄 가족 38% 우울장애… “일도 여가도 사치”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29515395
<4회> 입원하고 싶어도 병상이 없다
[단독] 장기입원자 ‘집’이 된 정신병원… 급성기 환자는 갈 곳 없어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30515492
[단독] 퇴원환자 재입원 않게 전문가가 점검… ‘사례관리’ 확대를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30515489
<5회>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단독] 100명 중 1명 중증 정신질환… 우린 이웃이 될 수 있을까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31517061
“병원 아닌 선택지”… 정신질환 회복을 돕는 동료지원쉼터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031519180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가족·전문가 25인이 당신께 보내는 편지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101509734
김나현·조희연·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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