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th BIFF] 부산, 영화의 바다가 열렸다…서른 돌 앞두고 변화의 바람
[SBS 연예뉴스 | 부산=김지혜 기자] 부산에 또 한번 영화의 바다가 열렸다.
2일 오후 7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배우 안재홍, 박보영의 사회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렸다.
첫 순서는 올해 신설된 카멜리아상 시상이었다. 까멜리아상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샤넬과 함께 영화 산업에서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 이들의 문화적, 예술적 기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정했다. 상의 명칭에는 부산의 시화이자 가브리엘 샤넬 여사가 가장 좋아했던 꽃인 동백꽃의 의미가 담겼다.
카멜리아상 초대 수상자는 류성희 미술감독이었다. 류 감독은 홍익대 도예과를 졸업한 뒤 아메리칸영화연구소(AFI)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이후 영화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괴물', '박쥐', '고지전', '국제시장', '암살', '헤어질 결심' 등 여러 작품으로 독보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특히 2019년 '아가씨'로 2016년 칸 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벌칸상(미술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섬세한 감각과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한 축을 담당해 왔으며 프로덕션 디자인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와 상징성을 만든 장인이라 할 수 있다.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과 박형준 부산 시장의 개회 선언이 이어졌고, 뉴커런츠 심사위원 소개가 있었다.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작전을 열게 된 포르투갈의 젊은 거장 미겔 고메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고메스는 무대에 올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러분을 만나 뵐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제 전작을 상영한다고 해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영화관에서 만나게 될 관객들, 저에게 인사해 주세요"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 영화를 전 세계 알린 사람에게 수여하는 한국 영화 공로상 순서가 이어졌다. 수상자는 故 이선균이었다. 스크린에는 이선균을 기리는 영상과 함께 그의 주요작들의 영상이 나왔다. 이정재, 송중기, 이희준, 김의성 등 객석에 자리한 수많은 배우들은 먹먹함에 고개를 숙였다.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은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돌아갔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오랜 팬으로 알려진 봉준호 감독과 그의 제자이자 일본 영화의 새로운 거장으로 떠오른 하마구치 류스케는 영상으로 축전을 남겼다.
수상 후 구로사와는 "이렇게 훌륭한 상을 받게 돼 놀랍습니다.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시작한 지 올해 40년이 됐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참가한 것이 20년 전이니 제 영화인생의 반을 부국제가 지켜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그 20년 간의 경력을 평가받아 이 명예로운 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감격스럽습니다. 여기까지가 과거의 이야기이고, 이제 현재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저는 올해도 두 편의 영화를 완성했는데 두 편 모두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부국제 관객들은 어떤 팬들보다 수준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 영화의 팬들도, 제 영화를 처음 보는 팬들도 많이 즐겨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따스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영화제의 포문은 강동원 주연의 영화 '전,란'으로 열었다. 개막작인 '전,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적이 돼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강동원과 박정민, 차승원이 주연을 맡았다. 넷플릭스가 투자, 배급하는 영화로 OTT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됐다.
내년 서른 돌을 앞둔 부산국제영화제는 변화의 바람을 예고하며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대표적인 파격은 OTT 영화를 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대중적 재미'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침체의 늪에 빠졌던 부산국제영화제는 대중성을 내세워 관객과 영화제의 간격을 줄이는 노력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 상영 편수 8% 증가→다채로운 특별기획 프로그램
올해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는 224편으로 지난해 209편에 8%가량 늘었다. 커뮤니티비프 상영작 55편을 합하면 전체 상영작은 총 279편이다. 영화제 측은 "국고보조금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었지만 자체 재원 조달을 늘려 아시아 최고 영화제다운 규모를 지키고자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상영 편수 증가에 맞춰 영화진흥위원회 시사실을 상영관을 추가로 확보했다.
특별기획 프로그램의 다채로움이 눈길을 끈다. 올해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은 3개다. 가장 먼저 포르투갈 거장 미겔 고메스의 전작전이 마련돼 있다. '그랜드 투어'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미겔 고메스는 '타부'(2012)를 발표하며 21세기 젊은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그의 장편 전작(총 8편)을 상영하고 그의 작품세계와 영화관을 조명한다.
또 하나의 특별기획 프로그램은 '10대의 마음, 10대의 영화'다. 아시아 10대 청소년의 이야기가 담긴 특별 기획 프로그램이다.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 '호랑이 소녀'(2023),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남자배우상 '바람의 도시'(2023),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마이 선샤인',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해피엔드'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10대 성장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특별기획 프로그램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故 이선균의 특별전이다. '고운 사람, 이선균'이라는 제목의 특별기획 프로그램에서는 이선균의 대표작 '파주', '우리 선희', '끝까지 간다', '기생충', 드라마 '나의 아저씨' 그리고 유작인 '행복의 나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세계, 집중 조명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두 편도 만나볼 수 있다.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영화 '큐어'(1997), '회로'(2001), '밝은 미래'(2002), '스파이의 아내'(2020) 등의 작품으로 영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감독이다. 감독의 대표작 '큐어'는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로, 뛰어난 미장센과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스파이의 아내'는 2020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 감독상을 받았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신작 두 편 '뱀의 길', '클라우드'을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다. 양조위, 주윤발까지 최근 2년간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모두 홍콩 배우가 받았지만 올해는 일본의 거장이 수상의 영예를 안아 그의 40년 영화 인생을 망라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 다큐멘터리 집중적으로 키운다…초대 관객상 수상자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다큐멘터리 관객상이 신설됐다. '다큐멘터리 관객상'은 와이드앵글-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선정작을 대상으로 관객 투표를 통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 1편을 선정하여 수상작에 1천만원의 상금을 지원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영화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 섹션과 비아시아권 신인감독의 영화를 소개하는 플래시 포워드 섹션에 각각 관객상을 수여하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관객상'은 다큐멘터리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첫 번째 관객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 포럼과 담론의 장 열린다
영화제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토론과 담론의 장'도 강화한다. 올해는 영화계의 대표적인 업체들과 국내외 전문가를 초청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영화인, 관객, 전문가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을 마련했다. CJ ENM, NETFLEX, THE E&M, DMP Studio, 영화인 연대가 참여할 예정이며 대표적인 패널로는 글렌 S, 게이너(아마존 스튜디오 영화부문 총괄 최고 책임자), TJ폴스(루카스 필름 VFX부사장) 등이 참여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해 칸영화제 마켓에서 "창작자는 AI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라는 메시지로 주목받은 데 이어 이번엔 부산국제영화제와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에 아시아 최초로 부스를 개설한다. 영화의 전당 비프힐에서는 관객들이 AI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라운지를 운영하고, ACFM 부스에서는 영화 전문가들에게 코파일럿 시연을 선보여 테크와 콘텐츠의 융합을 보여줄 예정이다.
◆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프로듀서허브 신설
올해 ACFM은 글로벌 프로듀서들이 영화 투자, 제작, 촬영, 지원사업 등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네트워킹 플랫폼, '프로듀서허브'를 신설했다. 국제공동제작스터티, 프로듀서토크와 세미나, 네트워킹 등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되고 첫 '올해의 국가'로 한국이 선정됐다. 또한 자체 기획 콘퍼런스를 강화하며 AI콘퍼런스 및 OTT 콘퍼런스를 통해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아시아의 IP 및 영화산업이 AI와 어떻게 결합하고 변화를 주도할지, 그리고 아시아 OTT 플랫폼의 생존전략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의 장도 마련될 예정이다.
◆ 아시아콘텐츠어워즈&글로벌 OTT어워즈 개최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하는 2024 아시아콘텐츠어워즈&글로벌 OTT어워즈가 오는 6일 오후 6시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개최된다. 2019년에 아시아 콘텐츠를 대상으로 시작된 이 시상식은 2023년부터 글로벌 영역으로 그 범위를 확장해 전 세계 TV, OTT, 온라인 영상 콘텐츠의 우수성을 기리고 있다. 올해는 16개국 201편의 출품작에서 12명의 국제 예심 심사위원이 11개 부문, 10개국 41편의 후보작을 선정했다. 7명의 국제 본심 심사위원이 최종 수상작을 결정한다.
◆ 배우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스타들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는 행사가 있다는 건 부산국제영화제의 큰 강점이다. 올해도 한국 영화 흥행작과 개봉 예정작, OTT 시리즈 등의 주역들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오픈 토크와 야외무대인사에 참여해 관객과 직접 만난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자랑인 액터스 하우스의 경우 설경구, 박보영, 황정민, 천우희가 주인공으로 나서 자신들의 연기 인생과 철학을 들려줄 예정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1일까지 영화의전당, CGV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등 7개 극장 28개 스크린에서 총 279편을 상영한다
ebada@sbs.co.kr
<사진 = 백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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