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에 스민 클래식

조회 952025. 2. 25.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선율. 친숙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클래식을 샘플링한 K-팝을 소개한다.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 파블로 피카소
ⓒSM엔터테인먼트

희망을 노래한 시대의 찬가
빛(Hope)
(H.O.T., 1998)

1998년에 발매된 H.O.T.의 '빛'은 멤버 강타의 자작곡으로, 당시 외환위기 사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이들에게 서로 힘을 합쳐 시련을 이겨내자는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를 샘플링하였는데, 이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가사로 삽입한 곡이다. “다 함께 모여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라는 시구에서 알 수 있듯 이 시는 인류애를 주제로 한다. 즉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샘플링한 것은 단순한 멜로디 차용을 넘어 희망이라는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SBS 인기가요 무대 영상에서는 앳된 얼굴의 멤버들이 귀여운 안무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떼창하는 팬들의 목소리에서는 밝고 힘찬 에너지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SM엔터테인먼트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T.O.P.(Twinkling Of Paradise)
(신화, 1999)

K-팝에서 클래식을 샘플링하는 시도는 최근 일만이 아니다. 1998년 ‘해결사’라는 곡으로 데뷔한 신화는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신화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곡은 바로 정규 2집 타이틀곡 ‘T.O.P.’로,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중 제1곡 ‘정경’을 샘플링한 곡이다. 신화는 이 곡으로 음악 방송에서 첫 1위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가요계에서 입지를 다져 나갔다.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아온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를 도입부에 활용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MBC 의 ‘T.O.P.’ 무대는 비록 해상도는 떨어지지만, 26년이 지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 여전히 세련된 무대로 회자된다. 순백의 의상을 입은 여섯 멤버가 마치 ‘백조의 호수’ 속 발레리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몸짓을 선보인다.

ⓒYG엔터테인먼트

가사와 어우러지는 서정적 멜로디
오랜 날 오랜 밤
(AKMU, 2017)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 영화 OST로 친숙한 ‘캐논’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대표적인 클래식곡 중 하나다. AKMU의 ‘오랜 날 오랜 밤’은 요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샘플링한 발라드로,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로 시작한다.멤버 이찬혁의 실제 이별 이야기를 담은 시적인 가사가 감성적 멜로디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오랜 날 오랜 밤’ 외에도 god의 ‘어머님께’,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등 ‘캐논’은 K-팝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왔다. 같은 클래식곡을 어떻게 다르게 풀어냈는지 비교해 보며 듣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
‘오랜 날 오랜 밤’ 뮤직비디오는 별이 쏟아지는 깊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모닥불 앞에서 이찬혁이 기타를 연주하고 이수현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곡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며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SM엔터테인먼트

바흐를 위한 헌정곡
Feel My Rhythm
(레드벨벳, 2022)

노래를 재생하는 동시에 익숙한 현악기 선율이 흐른다. 인트로뿐 아니라 후렴구와 브리지 등 곡 전반에 걸쳐 바흐의 ‘선상의 아리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우아하면서도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흐의 탄생일인 3월 21일에 맞춰 발매되었으며, 뮤직비디오 역시 ‘선상의 아리아’에서 영감을 받아 명화를 오마주한 오페라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곡이 발매된 해에 블랙핑크의 ‘Shut Down’, (여자)아이들의 ‘Nxde’ 등 클래식을 샘플링한 K-팝 곡이 잇따라 발매된 만큼 ‘Feel My Rhythm’은 최근 K-팝 신에서의 클래식 샘플링 열풍을 이끈 곡으로 평가받는다.
SM Classics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협업으로 탄생한 ‘Feel My Rhythm’ 오케스트라 버전 뮤직비디오는 클래식을 샘플링한 K-팝을 다시 클래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다채로운 악기들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마치 환상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WM엔터테인먼트

뮤지컬을 보는 듯한 웅장함
Bye My Monster
(온앤오프, 2024)

슬프고 잔잔한 분위기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이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프로듀서 황현을 만나 강렬하고 웅장한 곡으로 재탄생했다. 원곡의 서정적 선율에 힘 있는 밴드 사운드가 더해져 후반부에서는 곡의 극적이면서도 처절한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다. 사운드의 풍성함에만 치중하지 않고 기승전결의 서사까지 섬세하게 쌓아올렸다. 독특한 훅을 앞세운 이지 리스닝 스타일의 곡이 주류가 된 가요계에서 기승전결의 서사를 품은 ‘Bye My Monster’의 등장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음악 방송 <엠 카운트다운>에서 최초 공개된 ‘Bye My Monster’ 컴백 무대는 파워풀한 퍼포먼스와 폭발적인 라이브가 어우러지며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하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장막이 내려가며 등장한 100인조 오케스트라의 실제 연주는 웅장함을 극대화하며 감동을 더한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3월호
에디터 조윤주(yunjj@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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